[Cover Story] ‘빨리’ 대신 ‘함께’… 올해 이들이 세상을 달렸습니다

cover story 더나은미래가 만난 사람들, 그 후 올 한 해 더나은미래팀은 국내외 수많은 현장을 누볐다. ‘빨리’ 달리기보단 ‘함께’ 달리는 트랙 위에서 만난 사람들. 연말을 맞아 2013년 더나은미래가 만난 사람들, 그 후 이야기를 들어봤다. ◇커진 무대, 확산되는 가치 ‘마이크로크레딧’으로 재기에 성공한 창업자로 소개됐던 김윤상(49·스시생)씨<3월 26일자 D1면>는 지난 8월, 점포 확장 공사를 통해 좌석 수를 두 배(현재 30석)까지 늘렸다. 일본 방사능 등으로 초밥 업계가 고전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꾸준한 매출 증가세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투자할 테니 같은 모델로 점포를 늘려보자”는 제안도 심심찮게 받고 있다. 최근에는 소자본 부부 창업자들에게 전수할 메뉴 개발에 한창이다. 탈북 청소년을 돕는 탈북자 부부, 겨레얼 대안학교의 최동현·순영옥 부부<6월 11일자 D8면>는 기사 이후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최동현 대표는 “기존 아동 수가 28명이었는데, 기사 후 입소하고 싶다는 아이들이 대거 몰렸다”며 “현재 42명의 아이가 들어와 있고, 여건상 함께 할 수 없는 대기자들도 많은 상황”이라고 했다. 장애인 수영 선수 이인국(17·안산 단원고2·9월 24일자 E1면)군에겐 낭보가 잇따랐다. 기사 게재 이후, 생애 처음으로 출전했던 국제대회인 ‘2013 쿠알라룸푸르 아시아 장애청소년 경기대회’에서 2관왕을 차지하며 국제적인 선수로 거듭났고, 지난 18일에는 ‘2013 대한민국 인재상’까지 받았다. 손연재(2011 수상), 양학선(2012 수상) 등 국내를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작년 연말 ‘솔로대첩’에 맞서 ‘나눔대첩’을 기획했던 송주현(26)씨<2월 26일자 E7면>는 기사가 나간 이후 “강의 기회가 배로 늘고, 후원을 원하는 분들도 많아져 이를 나눔

“글로벌 기업 되려 이익 1% 무조건 환원”

인도 마힌드라&마힌드라 그룹 베로즈 부회장이 말하는 사회공헌 2011년 쌍용차를 인수한 마힌드라&마힌드라 그룹은 인도 재계 10위권에 드는 대기업이다. 세계 1위인 농기계를 비롯하여 65년 된 자동차 제조업은 마힌드라의 주력 산업이다. IT, 우주선, 선박과 호텔업, 부동산 등 사업 분야만도 18개다. 지난해 매출은 총 162억달러(약 18조3000억원), 순이익은 7억5000달러(약 8527억원)에 달한다. 마힌드라는 2005년부터 세후 이익의 1%를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업비로 써오고 있다. 2007년, 마힌드라 그룹은 그룹 내 ‘CSR위원회’를 설치하고 모든 계열사에 ‘지속 가능성에 기반을 둔 CSR’을 적용하는 데 앞장서왔다. 마힌드라 그룹의 사회적책임활동을 총괄하는 베로즈 가즈다르<사진> 마힌드라 그룹지속가능팀 부사장을 지난달 29일 고려대 경영대학 아시아경영센터(센터장 이재혁 교수)와 국제지속가능성학회(ABIS)에서 주최한 제2회 글로벌 CSR 콘퍼런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CEO의 의지가 있다고 해도 18개나 되는 계열사에 CSR을 녹아들게 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룹 차원에서 CSR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글로벌 그룹’으로 거듭나려면 전 세계적인 CSR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계열사 각각에서 알아서 적용하도록 하기엔 한계가 있다. 계열사별로 사업의 종류나 성숙도도, CSR에 대한 인지도·민감도도 다르다. 가령 자동차 생산업은 글로벌 산업이고 65년이나 되어 CSR이 자연스럽지만, 부동산 사업은 이제야 5년 정도 됐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가는지’ 확인하는 게 꼭 필요했다.” ―각 분야 계열사들을 어떻게 설득했나.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시키기는 쉬웠다. 문제는 ‘어떻게’다. 우리는 사회적 이슈와 경제적 이슈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CSV(Creating Shared Value·공유 가치 창출)를 강조한다. 각 계열사 비즈니스에 왜 좋고

이일하·박종삼·김노보… 개발원조의 산증인들

2010년 세상을 떠난 어린이재단 고(故) 김석산 회장에 이어 정정섭 기아대책 회장이 최근 별세하면서, 한국 NGO를 이끈 1세대들의 ‘큰 별’들이 하나둘씩 지고 있다. 이에 늦기 전에 현존하는 NGO 1세대들의 역사와 발자취를 기록하고, ‘우리나라 해외원조의 산증인’인 이들의 삶을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존하는 NGO 1세대로는 이일하 굿네이버스 회장, 박종삼 월드비전 전 회장, 김노보 세이브더칠드런 회장, 박동은 유니세프 부회장, 강문규 지구촌나눔운동 이사장 등을 들 수 있다. 1991년 7명의 지인과 함께 굿네이버스를 창립한 이일하(66) 회장은 ‘토종’ NGO로서는 기적에 가까운 성장을 일궈냈다. 설립 당시 2억원에 불과했던 모금액은 518배인 1035억여원으로 증가했고, 128명에 불과했던 정기 후원자도 26만여명으로 늘었다. 대형 NGO로 성장한 굿네이버스는 전 국민 나눔 교육, 기부 전문 포털 ‘기부스타트’ 론칭, 적정기술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기부 문화를 확대하고 있다. 박종삼(76) 전 월드비전 회장은 50년간 사회복지 현장에 있었다. 서울대 치과대학을 나와 진료 봉사에 나섰고, 무의탁 청소년들을 위한 마을을 세웠다. 20년 넘게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2003년 월드비전 회장에 올랐고, 9년 동안 월드비전을 39만명의 후원자와 1000억원대 모금을 하는 NGO로 키워냈다. 아동결연사업도 미국, 캐나다, 호주에 이어 4번째로 큰 규모로 확대됐다. 김노보(68)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은 30년 동안 한국네슬레에서 일하다 2004년 직원 수 10명에 불과했던 세이브더칠드런에 합류했다. 그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길거리 모금은 이후 ‘모자 뜨기’ ‘빨간 염소’ 등 전 국민이 참여하는 모금 캠페인으로 발전했다. 체계적인 후원자 관리 시스템과 직원 역량 강화

해외원조의 문을 연 남자 세상 끝에 희망을 남기다

故 정정섭 기아대책 회장 발자취 기아대책 창립멤버로 24년 작년 모금액 1500억 이끌어 “2030년까지 봉사단원 10만명 파견하고 싶어… 청년들 꿈꿀 기회 열어야” 모금보다 사람의 힘 강조 “돈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소명 의식’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전력투구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며, 가장 성공한 사람 아닐까요?” 지난달 28일, 미국 보스턴의 한 병원에서 치료 도중 세상을 떠난 고(故) 정정섭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이하 기아대책) 회장. ‘우리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긍지와 자신감을 심기 위해 일생을 전력투구했던 정정섭 회장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편집자 주 “대학 시절부터 멘토였던 윤남중 목사님에게 찾아가 ‘선교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목사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교사가 되면 한 사람 몫밖에 못 하니, 선교사가 되기보단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는 일을 하라’는 것이었죠. 한국기아대책을 세우라는 말씀도 함께였습니다. 왜 그때 일제강점기, 6·25 동란을 거치면서 겪었던 굶주림의 기억, 가난한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을까요? 나도 모르게 결단의 말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겠습니다!’라고요.”(정정섭 저서, ‘복떡방 이야기’ 중에서) 기아대책은 1971년 설립된 국제 NGO단체다. 1년에 2000만명이 굶어 죽을 정도로 심각한 지구촌 기아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고, 굶주린 이들에게 식량과 사랑을 전하는 것을 미션으로 한다. 정정섭 회장은 1989년 설립된 한국기아대책의 창립멤버로 24년을 함께했다. 어느 무역회사의 자투리 공간에서 간사 한명과 시작했던 기아대책은 그새 후원회원 43만5207명, 자원봉사자 5만6900명, 기아봉사단 582명(누계 1322명)으로 불어났다. 2005년부터 그는 회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기아대책의 발전을 이끌었다.

수만명이 공감했습니다, 공익 위한 우리 블로그

공익 블로거 4인의 이야기 “공익적 가치 알리자”며 시작… 해외 공헌활동·제품 올리고 사회적기업 제품 후기 작성 문화예술 캠페인 홍보하기도 블로그의 홍수 시대다. 지난 4월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온라인 포털 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에 등록된 블로그 수는 약 3650만개에 달한다. 최근 공익 분야에서도 다양한 사례와 정보를 전하는 블로거의 활약이 눈에 띈다. 더나은미래는 공익 블로그 운영자 4인을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 주 “작년 4월에 미국의 사회적기업 ‘홀스티'(Holstee) 소개글을 블로그에 올렸어요. 인도의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로 재활용 지갑을 만든 곳이죠. 글을 보고 네티즌 몇 분이 ‘지갑을 사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홀스티에 직접 연락을 해 공동구매를 진행했습니다. 이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는데, 글을 올리자 순식간에 100개 가까이 신청 댓글이 달렸어요. 좋은 의미를 가진 상품에 대한 사회적 니즈(Needs)가 매우 강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사회혁신가와 해외의 공익활동 사례를 소개하는 블로그 ‘사람바이러스'(saramvirus.com) 공동 운영자 노승훈(28)씨의 말이다. 노씨는 목표로 했던 대학 진학에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 재수를 거쳐 2005년 건국대 영화예술학과에 입학했으나 1년 만에 중퇴하고 영상과 디자인 제작 등을 하는 개인사업을 시작했다. 노씨는 “나만의 방식으로 커리어를 쌓고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청년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공익근무 시절 만났던 김으뜸(27)씨도 뜻을 함께했다. 군 제대 이후 2010년부터 블로그를 운영하며, 매일 하루 2~3시간씩 60여개의 해외 사이트를 직접 찾아 자료를 읽고, 그중 흥미로운 사례를 올리기 시작했다. 블로그가 인기를 끌며 2012년부터 네이버 파워블로그로 선정됐다. 아름다운가게에서

[청년, 기업사회공헌을 만나다] ⑫ “30년 캠페인 유지비결? 사회공감 얻기 위해 꾸준히 설득했기 때문”

⑫ 유한킴벌리 홍보팀 손승우 팀장 “기업이 사회문제 해결할 때 수익까지 창출할 수 있다면 사회공헌 방법 발전하는 셈” “IMF 금융위기 이후 수백만명의 실직자가 발생했었죠. 이들이 사회로 복귀하도록 돕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나온 프로그램이 환경단체, 전문가들과 함께 추진했던 숲 가꾸기 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회의 비판도 만만치 않았어요. ‘이미 잘 자라고 있는 나무를 왜 베어야 하느냐’는 언론이나 환경단체의 비판이 많았죠.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프로그램에 동참하도록 하는 데 2년 정도 걸렸습니다.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의 역사는 숲과 환경보호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설득의 과정이었습니다.” “유한킴벌리가 30년 가까이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유지할 수 있던 원동력을 듣고 싶다”는 질문에 손승우 유한킴벌리 홍보팀장이 답한 내용이다. 지난 11월 28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위즈돔이 주최한 ‘청년, 기업 사회공헌을 만나다’ 12번째 강연이 열렸다. 손 팀장은 강연에서 지속적인 어젠다 발굴과 사회적 공감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30년 동안 나무심기 활동만 했다면 사회의 관심도 줄어들고, 회사 또한 반복된 업무로 지쳤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유한킴벌리는 ‘숲 조성’이라는 큰 틀은 유지하면서 다양한 사회적 어젠다를 계속 개발했다. 여고생이 참여하는 ‘그린캠프’도 그중 하나다. “25년 전만 하더라도 여고생이 캠프를 가는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21세기에는 여성과 환경, 청소년이 중요한 사회적 화두로 부상하고 있어, 여성과 환경을 결합해 글로벌 여성환경리더를 육성하기 위한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행사에 함께 참석한 안태건 사회협력팀장의 설명이다. 유한킴벌리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공유가치창출(CSV, Creating

“고액기부, 프러포즈하듯 이상대 충분히 알고 요청해야”

조 색스턴 nfp시너지 대표 작은 단체들, 기부자 모으려면 타깃·브랜드 가치 명확히 정해야 “모금시장이 포화됐다는 생각을 버려라. 기부를 끌어낼 방법은 언제나 있다.” NPO를 위한 연구컨설팅기업인 nfp시너지 조 색스턴(Joe Saxton·사진) 대표의 조언이다. 조 색스턴 대표는 영국 모금 컨설팅분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힌다. 지난 2~3일 한국NPO공동회의가 주최한 ‘2013 나눔문화선진화 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그를 만났다. 고액·유산기부에 대한 비영리단체의 높아진 관심을 반영하듯, 첫날 콘퍼런스에만 500명이 참석했다. ―영국에서의 모금 트렌드는 어떻게 변해왔는가. “20~25년 전에는 다이렉트TV를 통해 광고했고, 15년 전에는 길거리모금을 통해 매년 60만명이 정기 기부를 하게 됐다. 길거리모금이 흔해지자, 이후엔 방문모금이 등장했다. 전화모금을 거쳐 최근에는 SNS나 문자모금이 많아지고 있다. TV나 인터넷보다 문자모금이 훨씬 더 쉽다. 최근 필리핀 하이옌 태풍피해 모금에서 문자모금으로만 150만파운드(약 26억원)가 모였다.” ―영국 자선단체들은 모금활동을 위한 마케팅·운영비에 몇 % 정도를 사용하는가.(우리나라는 기부금품 모집법상 모금액 대비 최고 15%까지만 쓸 수 있다) “제한이 없다. 99%를 행정비로 써도 된다는 뜻이다. 물론 모든 기부자는 내가 낸 돈의 100%가 프로그램 사업비로 쓰이기를 원한다. 하지만 행정비가 없는 단체가 정말 좋은 단체인가. 사무실도 없고, 기금을 잘 썼는지 관리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특히 막 시작한 자선단체에 15%만 행정비로 쓰라는 건 너무 어려운 구조다. 정부가 ‘15% 룰’ 규제를 하게 되면, 자선단체의 성장을 막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기부자들이 자선단체를 잘 감시하라’고 얘기한다. 최근 영국에서는 컵트러스트(cup trust) 스캔들이 일어났다. 2000만파운드(350억)의 수입 중

“산지 직거래 발달된 한국 생협 운동 폭발 예상했다”

구리모토 日생협총합연구소 이사 “한국에서 생협 운동의 대폭발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구리모토 아키라 일본생협총합연구소 이사(전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조사연구위원장·사진)는 1990년부터 국내 ‘두레한살림”여성민우회생협’ 등과 교류해온 ‘지한파’이자, 동경대학생협을 시작으로 40여년을 일본 생협 운동에 앞장서온 일본 협동조합의 대가다. “일본 생협 운동의 시초는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10엔 우유 운동’이에요. 아이들에게 깨끗한 우유를 주고 싶다는 주부들의 염원으로부터 출발한 거죠. 이후 일본생협연합회를 통해 ‘산직 운동'(일종의 직거래운동)으로 퍼져갔습니다. ‘구례 클러스터’는 이런 직거래 운동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형태라고 봅니다. 전국 조합원들의 결집된 힘에 여러 생산자가 함께 움직여주는 형태는 굉장히 실험적인 시도로, 향후 사회·경제적 효과가 매우 궁금합니다.” 구리모토 이사는 농가 생산성에 대한 고민을 세계적인 흐름으로 봤다. 구례 클러스터가 ‘한국형 생협 모델’이라는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도 그래서다. 그는 “직거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의 생협만이 갖는 독창적인 특징으로, 유럽이나 미국에는 이런 개념이 별로 없다”며 “일본은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정책이 뿌리깊게 박혀 있어 소비자의 권리를 홀대한 측면이 있었지만, 지속적인 소비자 생협 운동으로 소비자들이 스스로의 권리와 영향력을 키워나갔다”고 했다. 식품안전법(2003), 소비자기본법(2004) 등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 제정도 20년간 이어오던 생협 운동의 결과다. 현재 일본의 생협은 ‘이온(AEON)그룹”이토 요카도(itoyokado)’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유통 조직이다. 전체 조합원만 2700만명(전체 세대수의 40%)에 이른다.

즐겁고 재미있는 캠페인으로 자폐성 장애인 인식 바꾼다

앤디 쉬’오티즘 스픽스’부회장 “페루의 한 수퍼마켓에 하비에르(Javier)라는 자폐성 장애인 친구가 있었어요. 이 친구는 매장에 들어온 모든 물건을 강박적으로 똑같은 모습으로 진열했어요. 처음에는 매장 고객들이 그를 무작정 피해 다녔지만, 나중에는 그의 행동을 신기해하면서 자연스럽게 물건을 구입했다고 해요. 자폐성 장애인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앤디 쉬<사진> ‘오티즘 스픽스(Autism Speaks)’의약학술과 수석부회장의 말이다. 오티즘 스픽스는 미국 최대의 자폐성 장애 옹호단체로, 2006년 설립 이후 40여국과 협력해 의료, 제도개선, 권익증진 활동 등을 해오고 있다. 지난 13일 한국자폐인사랑협회에서 개최한 ‘자폐인 옹호를 위한 국제적 움직임, 공동의 노력’ 콘퍼런스 기조 강연을 위해 방한한 앤디 쉬 수석부회장을 인터뷰했다. ―오티즘 스픽스가 인식개선 캠페인에 힘을 쏟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에서 장애인을 위한 법을 마련해도 일상에서 차별이 남아 있으면 그 제도는 효력을 잃는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자폐성 장애인들이 인간 이하로 취급받은 채 숨어 지낸다. 심지어 ‘악마나 귀신에게 홀렸다’는 이유로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 인식개선 없이는 자폐성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할 수 없다.” ―미국의 자폐성 장애에 대한 인식 실태는 어떠한가. “미국에서도 인식개선 활동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지는 7~8년밖에 되지 않았다. 1960년대 자폐성 장애가 의학 용어로 등장한 것에 비하면 매우 늦었다. 그러다보니 잘못된 편견이 오랫동안 사회를 지배했다. 한 부모가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는데, 주치의가 부모를 따로 불러 ‘아이가 이렇게 된 것은 당신들의 잘못된 교육 때문’이라며 비난했다고 한다. 미국

윤리적 패션이 좀 어렵죠… 쉽게 하는 ‘플랫폼’ 있답니다

사라 디티 ‘소스 인텔리전스’ 편집장 윤리적 제품 인식 확대 위해 재활용, 공정무역 상품 관련 디자이너·소비자 등에게 자료 공개하고 연결해줘 한국의 사회적기업 5개도 이미 윤리적 네트워크 결성 소비자 인식 높일 활동 기대 세계적인 패션스쿨 런던예술대학교(London College of Fashion)는 2008년 ‘패션과 환경’이라는 석사과정을 설립했다. 또 영국 최대 패션 그룹인 마크스앤드스펜서(Marks and Spencer), 국제 구호 단체 옥스팜(Oxfam)과 함께 ‘지속 가능한 패션연구소’를 만들었다. 현재 영국 대부분의 대학은 ‘패션 윤리’ 관련 수업이나 학위 과정이 있다. 이를 만들어낸 건 ‘윤리적 패션 포럼(Ethical Fashion Forum)’이라는 온라인 기반 글로벌 플랫폼이다. 2005년 ‘윤리적 패션을 확산시키자’는 취지로 결성된 후 현재 130개국에서 1만5000명의 패션 전문가·업체, 100여곳의 윤리적 패션 단체, 대학 등과 네트워크를 맺고 있다. 윤리적 패션 포럼의 전략기획 이사이자 윤리적 패션 잡지 ‘소스 인텔리전스(SOURCE Intelligence)’ 편집장인 사라 디티(Sarah Ditty·사진)를 지난 6일 ‘국제사회적경제포럼 2013’ 행사에 앞서 서울시청에서 만났다. ―윤리적 패션 포럼(이하 EFF)은 무엇인가. “윤리적 패션을 위한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장이다. 디자이너, 소규모 생산자, 유통업자, 소비자 등이 쉽게 정보를 접하도록 장을 열어준다. 가령 윤리적 패션 포럼의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면 ‘오가닉’,’재활용’,’공정무역상품’과 같은 카테고리가 나뉘어 있다. 패션디자이너나 의류회사에서 자기가 원하는 생산방식을 하는 생산자를 찾을 수 있다. 영국에 있는 디자이너와 인도 여성 가내수공업자, 아르헨티나의 패션회사와 스리랑카의 환경 친화적 염색 생산자를 이어주기도 한다. 매년 10월에는 온라인 박람회를 개최, 재료 공급자를 한자리에 모은다. 2월에는 지속 가능한 의류 브랜드 패션쇼인

[더나은미래·위즈돔 공동 캠페인] 청년, 기업 사회공헌을 만나다 ⑪ 두산그룹 CSR팀 권재범 차장

“CSR팀 없이 CSR 하는 경영문화 생기길” 지난 13일 서울 역삼동 ‘동그라미재단’에서 열린 ‘청년, 사회공헌을 만나다’의 열한 번째 강연. 권재범 두산그룹 CSR팀 차장<사진>과의 만남에는 유독 많은 학생이 참여했다. “사회공헌 활동을 많이 하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일까요?” 권재범 차장의 강연은 CSR과 사회공헌 활동을 구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사회공헌 활동은 CSR의 일부로, 사회공헌 자체를 CSR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는 설명이다. 권 차장이 2009년부터 몸담았던 그룹의 사회공헌팀이 올해 초 CSR팀으로 바뀐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CSR팀으로 바뀌고 나서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경영활동이나 재무·비재무 관리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쪽으로 역할이 크게 확대됐어요. CSR을 사회공헌 범위 밖에서 생각하게 된 것이죠. 저희의 목적은 CRS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CSR이 모든 경영전략과 맞닿아 있도록 하는 것이죠. 실제로 해외 사례를 보면 HR(인사)나 마케팅팀 등 개별 부서 안에서 전략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고려합니다. 사회공헌팀 혼자서는 할 수 없죠.” 두산의 CSR은 ‘사람’을 중시하는 철학에 기반을 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람에게 투자하는 ‘인재 육성’. 1978년 10월 ‘두산연강재단’이 설립되면서부터 이어져 온 기업 정신이다. 권 차장이 처음 일을 시작했던 곳 또한 연강재단이었다. “창업의 초석이 됐던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이 교육과 인재에 특히 관심이 많으셨어요. 교육을 중요시하는 게 집안 내력이기도 했는데, 그게 자연히 사내 인재 육성, 인화(人和) 같은 부분들로 이어졌죠. 당시 ‘장학금 한번 제대로 줘보자’고 만들어진 게 연강재단입니다. 사회공헌 활동 역시 성장과 자립이라는 테마 안에서 이뤄집니다.” ㈜두산의 ‘시간여행자’와 두산인프라코어의 ‘드림스쿨’

소아암이 죽을 병? 편견 이겨내고 꿈은 이렇게 커졌어요

제작비 전액 기부영화 ‘완전 소중한 사랑’ 실제 주인공들 레슬링 코치 김형수씨 병 때문에 각서 써가며 운동 이제는 어엿한 레슬링 코치 비보잉 사역전도사 조정한씨 소아암 환아들에 용기 주려 정기적으로 비보잉 공연 열어 퍼스널 트레이너 장영후씨 재활에 관심 갖고 직업 찾아 완치자로 구성된 밴드도 활동 영화를 통한 인식 개선을 위해 기업이 사회공헌 비용을 기부한다? 영화 ‘완전 소중한 사랑(감독 김진민)’ 이야기다. 다음(DAUM)이 제작비 전액을 기부했고, 수익금의 70%가 소아암 환아 및 문화예술 단체에 기부되는 ‘기부 영화’다. 소아암을 극복한 청년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말미엔 실제 주인공들의 미니 다큐가 등장한다. 영화 속 실제 모델이 된 주인공 세 명을 만났다.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넘게 백혈병과 싸워 이긴 후 현재 레슬링 코치, 퍼스널 트레이너(PT), 비보잉(B-boying) 사역전도사로 활동하는 이들이다. “몸에 무리가 가는 직업을 선택한 게 아니냐”고 묻자 이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아뇨. 어렵지 않았습니다. 죽음도 이겨냈는걸요.” 열다섯 살 때 백혈병 진단을 받고 꼬박 4년 동안 항암 치료를 받았던 장영후(24·퍼스널 트레이너)씨는 “치료보다 더 힘들었던 건 소아암 환자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과 편견이었다”고 말했다. 1년 만에 돌아간 학교. 장씨는 동급생이 된 후배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했다.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아예 가까이하지 않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통원 치료를 받는 중이라 머리카락 없이 모자를 쓰고 있었거든요. 면역력이 약해서 청소를 못 하는 건데, ‘나이 많다고 유세를 떠느냐’며 시비 거는 아이들도 있었고요.” 입원 기간 동안 책을 전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