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도움만 받는다?… 그 편견, 도전정신으로 깨어 드릴게요”

도전하는 장애청년 3인방 김미나·문영민·이제욱씨각 전공분야 살려 봉사 “장애인이라 잘한다?장애인이라 못한다?그런 것 없어요중요한 건 열정이죠” 김미나씨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지체1급의 장애인이다. 대학생 봉사동아리로 활동하면서 유치원에 다니는 아동들을 위해 성폭력 예방에 대한 인형극을 공연했고, 방과 후 학교에서 학습공부와 예체능, 미술을 지도했고 학습지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다. 가끔 전공을 살려 포스터 디자인을 제공하는 재능기부도 했다. 한마디로 봉사 마니아다. 한국에서만 봉사활동을 한 것이 아니다. 몽골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종이접기와 데칼코마니를 가르쳤고 홍콩에서는 홍콩의 사회적 기업들을 돌아보며 장애인들의 자립생활과 장애인 요양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다. 가끔 ‘장애인은 봉사와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에 봉사활동을 거절당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개척해나가고 싶었다. 몽골에 해외봉사를 신청했을 때는 장애인은 위험해서 안 된다고 하는 걸 학교에 찾아가 추천서를 받고 각서까지 써주곤 갈 수 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문영민씨가 처음 만난 사이지만 아주 오래 알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활짝 웃었다. “동생뻘이지만 참 대단하네요.” 지체2급 장애인인 영민 씨는 대학원에서 과학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학부에서는 화학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장애를 생물학적으로 연구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보통 진화론의 입장에선 장애라고 하는 걸 열등한 요소라고 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특정 민족을 유전학적으로 열등한 존재라고 규정했던 우생학 같은 과오를 범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생학은 인종 학살과 같은 끔직한 범죄에 악용되었잖아요.” 영민씨는 이런 부담을 안고 연구를 하고 있다. “이런 이론이 힘을 얻으면 장애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들이 오히려 힘이 빠지게

“사회의 혈관인 금융… 금융이 따뜻해야 세상에 따뜻한 피가 돌겠지요”

한동우 신한금융그룹 회장 “사회 속에서 이룬 이익 약자와 나눠야 건강한 성장 이룰 수 있죠” “워크아웃 바람 불던 IMF 우리는 기업 살리려 애썼죠 기업의 돈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나도 힘겨운 유년 보내 젊은이여 희망 잃지말라 고생 끝에 낙 진짜 온다 우리 사회공헌 원칙은 공존·공감·공생” 다음 달이면 신한금융지주가 설립된 지 10년이 된다. 그리고 내년이면 신한금융그룹의 모태인 신한은행의 설립 30주년이다. 1982년 자본금 250억원과 4개의 영업점으로 출발했던 신한은행은 이제 자산 300조원 규모의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지난 19일 신한금융그룹 한동우 회장(63)을 만나 금융의 미래와 신한금융그룹의 사회책임에 대해 물었다. 한 회장은 취임 이후 사소한 행보 하나하나에 대해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며 그가 돌아본 것은 초심(初心)이었다. “신한의 지난 30년을 돌아봤습니다. 그동안 참 잘해왔지만, 2%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따뜻함’이었습니다.” 신한은행 설립 당시의 행훈(行訓)은 ‘새롭게, 알차게, 따뜻하게’였다. 한동우 회장이 신한은행의 기획부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사내 공모를 통해 만든 행훈이다. “신한은 짧은 시간 동안 경영실적이나 수익성 면에서 탁월하게 성장했습니다. 새롭고 알찼습니다. 이젠 따뜻함에 대해 고민할 때입니다.” 한 회장이 생각하는 따뜻한 금융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고객과 한번 맺은 인연을 끝까지 소중하게 여기면서 동반자 관계로 가꾸어 가는 것이 따뜻함의 본질입니다.” 한 회장은 얼마 전 전체 계열사에 따뜻한 금융을 실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라고 제안했다. “신한금융그룹의 철학은 ‘금융의 힘으로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Cover story] 지구촌 희망편지쓰기 대회 수상 학생들, 편지 보낸 주인공 락스미를 만나다

도우러 갔는데, 친구가 되었습니다… “락스미의 긍정적 생각 도리어 배웠어요” 오리 사육으로 생계 잇는 캄보디아 소년 락스미 도우러 간 아이들도 처음엔 서먹서먹했어요 함께 뛴 축구 한판에 도움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아닌 그저 ‘친구’가 됐습니다 우렁이 잡기·지붕 수리… 락스미와 함께한 시간 갑자기 방문한 외국인에 웃음으로 대해준 락스미 열대몬순의 소나기 스콜(squall) 속에서 바람 빠진 낡은 공을 주고받으며 흙 위에 뒹굴었다. 뛰고 있는 주인공은 갈색 피부의 캄보디아 현지 아이들과 자원봉사를 떠난 우리나라 어린이들이었다. 동네에서 외따로 떨어져 있는 락스미 형제의 집 앞 벌판은 평소의 황량함을 지우고 아이들의 즐거운 소리로 채워졌다. 계획된 프로그램도, 누가 먼저 시작하자고 제안한 놀이도 아니었다. 자원봉사를 하던 중 잠시 틈이 난 사이, 한 아이가 용기를 내어 캄보디아 친구에게 슬며시 한편에 있던 공을 차 본 게 그 시작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쩔쩔매며 첫 만남 이후 내내 어색해하던 아이들이 공을 찬 지 30분도 안 돼 한데 어우러져 신이 났다. 흐려 있던 하늘에서 쏟아 붓듯 비가 내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공 차기에 더욱 열중했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부모님들도 빗속으로 함께 뛰어들었다. 도움을 주러 간 사람이 아닌,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닌 그저 친구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장면이었다. 지난 7월 25일 굿네이버스 지구촌 희망편지 쓰기 대회 수상 어린이들과 가족 등 총 12명이, 편지 쓰기의 대상이었던 락스미(10)와 락스마이(14) 형제가 살고 있는 캄보디아 쩡아엑(Cheung Ek) 지역의

[사회공헌 특집] [GS그룹] 회장님도 계열사도 우린 나눔 마니아

허창수 회장 250억원 규모 주식 기부 GS칼텍스 여수문화예술공원 조성 GS리테일 재난재해 구호 펼쳐 2006년 3만5800주, 2007년 8만6310주, 2008년 2만8660주, 2009년 3만2470주, 2010년 4만9020주 그리고 올해 3만1500주까지 6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총 250억원 규모에 달하는 개인 보유의 GS건설 주식을 기부한 사람이 있다. 바로 허창수 GS그룹 회장이다. 허 회장은 지난 2006년 소외층의 자립 기반 조성 지원을 목적으로 사재를 출연해 남촌재단을 설립했다. 그 후 매년 추가 출연을 해 왔으며, 향후 남촌재단의 규모가 500억원 이상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기부할 예정이라고 한다. 개인 재산을 지속적으로 기부하는 점 등을 인정받아 허 회장은 지난 2008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로부터 ‘아시아 이타주의자 48인’에 선정된 바 있다. GS그룹측에 따르면 “책임감을 갖고 정도(正道)를 걸어감으로써 사회로부터 자랑스러운 기업을 만들자”는 게 허 회장의 평소 신념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GS그룹은 각 계열사별 특성을 살려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석유 에너지의 30% 이상을 공급하고, 생산제품의 50% 이상을 수출하고 있는 GS칼텍스는 ‘에너지로 나누는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슬로건 아래 사회공헌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전문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을 위해 2005년 사회공헌 전담부서를 발족시켰고, 2006년 8월에는 GS칼텍스재단을 설립했다. GS칼텍스재단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100억원을 출연해 총 1000억원 규모의 공익사업을 시행한다는 계획에 따라 해당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더불어 GS칼텍스는 자사의 생산기지가 자리잡고 있는 전남 여수 지역의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총 1000억원 규모의 여수문화예술공원 ‘예울마루’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09년 기공식을

[사회공헌 특집] “아이들의 꿈 키우는 것이 진짜 투자죠”

석호익 KT 부회장 “전국 KT 지사에 올레꿈품센터 만들어 지역아동센터에 공간기부 3만명의 아이 돕고 있죠” KT는 최근 짧은 시간에 극적인 변화를 보인 기업 중 하나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국내 도입을 계기로 기존의 ‘전화회사’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벗고 정보통신의 트렌드를 리드하는 기업으로 이미지를 구축했다. 지난 21일, KT의 사회공헌을 지휘하고 있는 석호익 부회장을 만났다. 석호익 부회장<사진>은 ‘메가트렌드’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1977년에 21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 체신부와 정보통신부의 현장에서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정책을 리드해왔다. 그런 석호익 부회장은 사회공헌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KT의 사회공헌 사업 중 하나인 IT서포터즈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직원 200명이 어르신, 장애인, 다문화가족 사람들을 만나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남들을 가르치는 게 사실은 가장 큰 공부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또 이런 휴먼네트워크에 접근하면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새로운 발견을 하기도 하죠.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IT기업 경쟁력의 핵심이죠.” 그러면서 최근 KT는 KT의 경쟁력을 넘어 국가 전체의 미래를 키울 수 있는 사회공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KT는 국민이 만들어준 민영화 기업입니다. 지금도 국민들에게 높은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이제 KT도 우리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며 사회공헌을 해야 할 겁니다. 평소 이석채 회장님의 지론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KT는 국내의 소외아동 지원사업에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있다. 2009년부터 지역아동센터 지원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며 임직원봉사단이 인근 지역아동센터와 결연하여 주기적인 봉사활동을 하더니, 최근엔 전국 KT 지사 내에 ‘olleh 꿈품센터’를 마련해 지역아동센터협의체에 공간기부를 해오고 있다. 이외에도 IT기업 특성에 맞게

[지구촌 희망편지쓰기] “나도 어려운 시절 겪어 함께 큰 꿈 키워 가자”

방글라데시에서 온 소녀 조안나양 교과부장관상 3년 전 한국으로 입양된 조안나가 캄보디아 소년에게보낸 편지 안타까움 이상의 공감 큰 울림 자아내 굿네이버스 나눔교육은 지구촌 현실과 빈곤아이들이 직접 이해해 가는 기회 지난 12일 서울시교육청 11층 강당 단상 위에 서울시 신상도초등학교 6학년 박조안나 학생이 올랐다. 박양은 올해 ‘굿네이버스 지구촌 희망편지 쓰기대회’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 수상자다. “락스미! 생활 속에서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는 네게 배울 것이 참 많은 것 같아. 다만, 네가 하루 종일 배고프게 일하는 것이 마음이 아팠어. 나도 어린 시절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보고 살았기 때문에 네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긴장한 듯,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침을 꼴깍 삼키며 박양이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수상식 끝 무렵 진행된 낭독식인 탓에 행사 시작 때와 달리 몇몇 자리들이 비어 있었지만, 강당 안은 박양의 목소리만으로도 꽉 찬 느낌이었다. 176만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최고의 영예를 안은 박양의 편지는 다른 때보다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박양은 2008년 방글라데시에서 우리나라로 입양돼, 올해 4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소녀다. 방글라데시는 작년 지구촌 희망편지 쓰기대회 대상이었던 ‘수존(9)’이 살았던 나라이기도 하다. 박양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방글라데시에 살았을 때,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10분 동안 지나야 하는 그 거리에서 굿네이버스 나눔 교육 영상에 나오는 친구들처럼 오리를 돌보는 가난한 아이들을 많이 많이 봤다”고 했다. 박양의 편지는 멀기만 한 다른 나라의 안타까운 사연에 대한 동정이 아닌, 그 이상의

[Cover story] 돈만 드는 예술, 돈만 대는 기업? 후원에 대한 생각부터 바꾸세요

‘문화예술 모금전문가’ 英 메세나협의회 필립 스페딩 국제교류 본부장 “기업은 왜 굳이 돈을 줘야 하는 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끌려 다니고, 예술단체는 돈만을 목표로 해서 관계를 맺는 경우가 가장 나쁘다.” 영국 메세나협의회(Arts&Business) 필립 스페딩(Philip Spedding·48·사진) 국제교류 본부장이 문화예술경영 컨설턴트로서 본인의 경험 중 최악의 사례를 꼽았다. 일본 자동차 회사 D사의 고급 차 브랜드가 유럽 지역의 오페라 하우스와 제휴할 때의 예다. “개념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런 좋은 차를 모는 사람들이 오페라를 보러 가지 않겠는가? 그러나 문화예술 지원을 통해 유럽 전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기업 차원의 전략이 부재했다.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무조건 지원만 따내려 애썼고.” 비단 D사가 아니더라도 이런 기업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스페딩씨는 기업과 문화예술 단체가 서로 간의 파트너십에 대해 납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은 자신들이 그냥 돈만 쌓아 놓은 곳이 아니라 사람이 있고 기술력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문화예술 단체에 이해시켜야 하고, 문화예술단체는 자신들이 일정 정도의 성과 요소를 갖고 있다는 점을 기업에 설득해야 한다는 얘기다. 필립 스페딩씨는 캐나다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영국에서 문화예술분야 모금전문가로 활동했다. 영국 메세나협의회에서 일한 지는 12년째로 모금, 기업 컨설팅, 국제교류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기업 중에는 삼성에 기업문화경영과 관련한 자문을 한 바 있다. 그와의 만남은 지난 14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의 ‘예술의 사회적 가치 창출’ 좌담회가 있기 2시간 전,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예술가의 집’에서 이뤄졌다. 좌담회에는 김장실 예술의전당 사장,

“사회공헌 활발한 기업이 성장 속도 빨라”

파루크 아리그헨켈코리아 대표이사 “장수기업의 요건? 정당한 일을 하는 것 환경과 소비자 위할 때지속가능 성장 이뤄져” 국내기업들은 짧은 시간에 빠르게 성장했다. 이제는 장수(長壽) 기업이 되기 위해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할 때다. 135년 장수기업의 DNA는 무엇인지, 지난 6일 헨켈코리아의 파루크 아리그(Faruk Arig·사진) 대표이사에게 물었다. ―장수기업의 요건은 한마디로 무엇일까? “정당한 일을 하는 것이다(Doing the right thing!). 헨켈이 135년 동안 장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속가능성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헨켈의 창립자인 프릿츠 헨켈(Fritz Henkel)이 회사를 설립할 때부터 지속가능성장에 대한 가치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지속가능성장은 지금의 헨켈을 있게끔 한 헨켈의 DNA가 되었다.” ―헨켈은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이 있나? “헨켈은 2007년에 2012년까지 달성하고자 하는 지속가능성의 5대 영역을 선정하고 영역별 목표치를 구체적으로 설정했었다. 하지만 이미 벌써 작년인 2010년, 그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다. 이제 우리는 더 혁신적이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 당면 과제를 수행할 때, 반드시 지속가능 성장 영역의 목표 중 한 가지를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헨켈 제품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헨켈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자연스럽게 동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소비자들의 변화를 느끼나? “헨켈은 세제, 가정용 살충제와 같은 소비자 제품과 함께 접착제, 실런트, 표면처리제와 같은 산업용 제품도 보유하고 있다. 소비자와 접점에 있는 기업이다. 최근 소비자들은 갈수록 스마트해지며, 자신이 쓰는 제품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염두에 둔다. 사회공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예전의 소비자들이 제품의 질과 가격에만

[날아라 희망아] “심장병으로 고통받는 내 동생 훌륭한 기술자 돼서 고쳐줄 거예요”

방글라데시 11살 소년 코림 방글라데시 다카의 한 철공소, 매캐한 냄새와 쇳소리가 끊이지 않는 그곳에서 하루 12시간 일하고 있는 소년 코림을 만났다. 5년 전,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후 코림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일해오고 있다. “내 이름은 코림이고, 열한 살입니다. 배를 만들기 위한 부품을 다듬고 붙이는 일을 합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하는 코림에게, 철공소에서 얼마나 일했냐는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는 1년쯤 됐어요. 가끔씩 다치기도 합니다.” 옆에 있던 어른 동료가 “1년 동안 지켜봐 왔는데 아주 열심히 한다”며 “아주 성실한 아이”라고 말을 거든다. 일곱 살이 됐을 때, 코림도 다른 아이들처럼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 적이 있다. 잠시였다.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는 일을 할 수 없었고, 두 누나가 온종일 바느질 일을 했지만 그것으로는 가족이 먹고살 수 없었다. 결국 남자인 코림이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해야만 했다. 코림의 누나는 “코림이 정말 학교에 가고 싶어했다”며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어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현재 코림의 꿈은 ‘기술자’다. 가족의 생계를 든든하게 책임지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코림의 노동은 아침 8시에 시작된다. 철공소로 출근하기 전, 집에서 코림은 늘 열 살 남동생을 꼭 챙기며 인사말을 잊지 않는다. “로힘, 네가 힘들지 않도록 형이 널 위해서 열심히 일할게. 사랑해.” 한 살 아래 동생 로힘은 3년 전 심장판막의 문제가 발견됐다. 지금은 숨이 차오르며 찌르는 듯한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증상을 보이는 게, 거의 매일이다. 코림은 “내가 고생을 하더라도 동생이

일주일 두번의 방문치료 세상에 한걸음 더 나아가는 힘

밀알복지재단 ‘중증장애아동 방문물리치료’ 지난 7월 5일 오후 안산의 한 가정을 찾아갔다. 아이들이 여름방학으로 들뜬 요즘, 중증의 장애아동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영민(가명)이는 6개월만에 태어났다. 인큐베이터에서 산소호흡기와 주삿바늘 몇 개를 꽂은 채 3개월을 보내고 세상에 나왔다. 열한 살이지만 뇌병변 1급 판정을 받은 중증장애인이다. 인지능력으로 치면 5세나 6세에 해당한다. 영민이는 깨끗한 옷을 입고 물리치료사 한향완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도 시선도 천천히 움직여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많지만 향완씨나 영민이의 할머니는 영민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재빨리 이해했다. 향완씨에게 영민이는 소중한 존재다. 물리치료를 받은 지 4개월 만에 영민이가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원래 영민이는 2006년에 수술을 한 번 해서 철심을 박고 있을 땐 어느 정도 걸을 수 있었는데 수술 후 물리치료와 운동을 꾸준히 하지 못해 철심을 빼자 경직이 다시 왔다”고 한다. 영민이 할머니에 따르면 지금 영민이는 “무릎쪽 성장판만 자라고 종아리쪽 성장판이 자라지 않는 상태”다. 그래서 다리가 휘어졌고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다. 향완씨는 영민이를 거실에 눕히고 다리를 주무르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주로 학교 생활에 대한 것이었다. 영민이는 가끔 고개를 돌리거나 표정을 바꿔 향완씨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잠시 후 향완씨는 영민이의 발바닥을 자기 어깨에 놓고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영민이의 얼굴에서 땀이 났고 가끔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땀이 나지만 선풍기를 틀 수는 없다. 얼마 전 감기에 걸렸는데 찬 바람을 맞으면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몇

“컵케이크처럼 달콤한 자립의 희망 안겨줘요”

이샘컵케이크 ‘미스맘 컵케이크 스쿨’ 하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달콤한 향이 가득하다. 한창 수업 중인 테이블 위는 수강생들의 웃음소리와 손놀림, 예쁜 케이크와 장식들로 더 달콤하다. 이날은 컵케이크 전문점인 이샘컵케이크(www.cupcake.co.kr)에서 ‘미스맘 컵케이크 스쿨’이 열리는 날이다. ‘미스맘 컵케이크 스쿨’은 이샘컵케이크가 서울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와의 협약을 통해, 홀로 자녀를 양육하는 미혼모들을 대상으로 컵케이크, 슈가크래프트, 초콜릿, 브라우니 등을 교육하는 미혼모 자립 지원 사업이다. 이샘컵케이크의 이샘 대표(30)를 비롯해 서주희(37), 김혜원(33), 이보미(28) 등 제과제빵 전문가들이 미혼모들을 응원하고자 재능과 힘을 모았다. 이 대표가 ‘미스맘 컵케이크 스쿨’을 처음 구상한 것은 작년 초 한 여성에게서 이메일을 받은 것이 시작이다. 세 살짜리 딸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다는 그녀의 당시 나이는 고작 스물 여섯. 어린 나이에 결혼과 출산, 이혼을 모두 겪은 그녀는 “컵케이크라는 전문기술을 익히면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에도 도움이 되고, 아이에게도 좀 더 정서적으로 안정적이고 따뜻한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가르침을 부탁했다. 그리고 3개월간 서울로 올라와 이 대표에게 모든 컵케이크 기술을 익히고 내려갔다. “그분에게 컵케이크를 가르쳐 드리면서 한부모 가정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자연히 미혼모 이슈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요. 오히려 6·25 한국전쟁 때보다 지금이 더 해외입양이 많은 거 아세요? 그중 90% 이상이 미혼모 여성의 아이들이에요. 입양이 잘못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씻어내자는 얘기입니다.” 미혼모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현재의 제도와 정책, 실태 등을

[Cover story] 소녀도 엄마도 네팔의 희망을 읽습니다

네팔 ‘서비스포피스 여성文解학교’ “돈만 주면 나눔? 그건 진짜 나눔이 아니다” 수도 카트만두서 12시간 14년 내전의 땅 ‘살라히 ‘아동센터·문해학교 건립 작은 도서관에선 아이부터 노인까지 공부 희망을 밝히는 건 ‘교육’ “UN이 설정한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힘을 써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 7월 4일 오전 11시 30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한적한 주택가에서 혼 람 하리 조시(Hon. Ram Hari Joshi)씨를 만나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84세의 나이에 하얗게 센 머리의 하리씨는 어렸을 때 간디를 만나 사회활동에 눈을 떴다. 네팔의 교육부 장관과 관광부 장관을 역임했고 지금은 국제 봉사NGO인 서비스포피스(Service For Peace) 네팔의 회장을 맡고 있다. 기자가 네팔에서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라는 얘기에 하리씨는 부드럽게 웃으며 한 단어로 답했다. “그야 교육(Education)이지.” 그리고 말을 이었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이 좋아지지 않는 법이거든.” 순간 기자가 일주일간 네팔에서 만났던 여성들의 얼굴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모우따리의 서비스포피스 여성문해학교(Women’s Literacy School)에서 만난 강가 마야(46)씨는 46초를 들여 자신의 이름을 영어로 쓰곤 활짝 웃었다. 종이에 꾹꾹 눌러쓴 글씨는 마치 종이에 새긴 듯 쉽게 지워질 것 같지 않았다. 자나끼나가리 2구역 문해학교의 최연장자 드로나 쿠마리(62)씨는 4주 전에 문해학교를 찾아왔다고 했다. “아들과 딸 네 명을 기르고 모두 가르치고 결혼을 시킬 때까지” 60평생을 부엌과 밭, 외양간을 오갔던 드로나씨는 지금 네팔어 알파벳의 기초를 배우고 있다. 우리 말로 치면 ‘ㄱ·ㄴ·ㄷ’을 배우고 있는 셈이다. 두 여성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