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커피와 민주주의

“당신은 왜 커피를 마시나요?” 커피업에 몸담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 질문은 늘 어렵다. 마치, 물은 왜 마시나요? 밥은 왜 먹나요? 이런 질문처럼 느껴진다. 나에게 커피는 각성제다. 아침에 출근하면 사무실 책상에 앉아 한두 모금이라도 마셔야 무엇인가 시작하는 느낌을 받는다. 진정한 하루는 이때 출발하지 싶다. 집에서 휴식하는 주말 아침에도 눈뜨면 일단 커피를 내린다. 그 따듯한 기운에 다시 이부자리로 파고들어 간다 하더라도 커피는 출발이다. 먹을 거 다 먹고도, 당 떨어지는 느낌이 심하게 들 때는 커피믹스가 제격이다. 커피믹스 한잔의 칼로리는 40~50㎉다. 밥 한 그릇이 300㎉인 데 비하면 식사를 대신하기는 어렵지만, 달콤한 그 맛은 식간 급한 불 끄기엔 제격이다. 커피는 리프레시다.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커피는 빠질 수 없다. 어려운 미팅일수록 약간의 긴장감과 편안함을 동시에 주는 음료는 아마도 커피뿐일 것이다. 정신을 맑게 하면서도 차 한잔을 두고 커피 고르는 취향부터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커피는 중재자이기도 하다. 왜 커피를 마시냐는 질문이 무색하게도, 커피는 이미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커피는 수도승들이 밤새 기도하고 성서를 연구하기 위해 처음 마셨다. 그러나 높은 사람이 마시면 아랫사람도 마시고 싶고, 그 옆 사람도 마셔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계급과 돈으로 막혀 있어도 문화란 그렇게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다. 대항해 시대의 범선들이 이 수요를 맞추기 위해 무역 항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1497년 바스쿠다가마에 이어 콜럼버스도 항로 개척에 성공한다. 더 적극적인 공급을 위해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농업도 스타트업이 될까요?

“농업은 스타트업이 될 수 없습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날렵한 변신과 빠른 성장이 특징인 스타트업의 속성을 고려할 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 반기를 드는 창업가들이 나타났다. 청년들은 ‘농업에 왜 농사만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농축산물 부가가치는 30조원 수준에 멈춰 있지만, 그 농축산물을 둘러싼 전후방 가치사슬의 부가가치는 수백조원에 이를 수도 있다. 눈을 해외로 돌리면 이 규모는 수백 배 더 커진다. 2014년 월가의 투자가 짐 로저스가 서울대 경영대 강의에서 농업이 미래산업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을 때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우리나라 농가의 평균 경작면적은 1헥타르(1만㎡)를 조금 넘어가는 수준에 불과해 첨단기술에 대한 투자는 비용으로 인식됐다. 반면에 시장분석 전문기관들은 글로벌 농업시장은 연평균 6% 내외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아시아 태평양지역은 전 세계 농업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인구와 소득도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짐 로저스의 관점에서 아시아 농업에 대한 투자는 충분한 수익성을 보장되는 안전자산이었다. 2022년 해가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농업계에서는 작은 파문이 일었다. 창업한 지 불과 4년밖에 되지 않은 농업 스타트업이 17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마켓컬리, 오아시스 등 농식품 유통업에서 이 정도 규모의 투자는 더러 있었지만 농업 생산이 중심인 기업에서는 처음이었다. 이 소식은 기술산업 전문 뉴스인 테크크런치(TechCrunch)를 통해서 전 세계에 소개되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ICT 분야의 대기업과 선진국의 농식품 기업만 소개되던 글로벌 뉴스에 우리나라 스마트농업 스타트업인 그린랩스가 소개됐다.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2015년 농업 스타트업

안지훈 소셜혁신연구소장
[안지훈의 생활정책] 아산의 100원 택시를 아시나요?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대흥리에는 ‘마중택시’가 온다. 10년 전 아산시가 어르신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조례를 만들고 택시 이용료 100원인 교통 시스템을 구축한 게 마중택시의 시작이었다. 아산에서 시작된 마중택시는 전라남도, 충청북도, 경상남도로 퍼졌고 ‘100원 택시’ ‘따복택시’ ‘섬김택시’ ‘행복택시’ ‘희망택시’ ‘브라보택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전국 곳곳을 누비고 있다. 전라북도 부안군은 ‘치매 환자 의료지원비’ 조례를 제정했다. 부안군 거주 60세 이상 어르신은 보건소와 의료기관에서 치매 진단을 받으면 본인 부담금 중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받는다. 이뿐 아니라 치매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전문 교육도 진행한다. 보건복지부도 2017년 9월에 치매안심센터 전국 설치, 장기 요양 서비스 확대, 의료지원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치매국가책임제 추진계획’을 발표했지만 부안군보다 10년이나 늦었다. 부안군의 조례가 정부의 정책을 촉진했다고도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아산의 100원 택시’나 ‘부안의 치매 지원조례’에 대해 대중은 잘 알지 못한다. 시골 사는 어르신의 발이 되어 새로운 일상을 선물한 100원 택시의 가치, 치매 진단을 받은 어르신과 가족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자 했던 지방정부의 노력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언론과 방송에 이런 이야기가 가끔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아이디어 넘치는 행정가의 치적(治績) 정도로 소개될 뿐이다. 정책의 필요성과 효용성, 그 정책이 만들어낸 생활의 변화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는다. 우리는 중앙에 집중해왔고 중앙에서 벌어지는 큰일에만 주목해왔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가 논의하는 거대 담론은 실제로 국회의사당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을 위한 정책이다’ ‘시민 체감형 사업이다’ 화려하게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창업가의 부채질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서 빼놓지 않고 확인하는 요소 중 하나가 회사의 부채(負債)다. 회계적으로 부채는 자본과 함께 자산을 구성한다. 흔히 부채는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오늘날의 경제는 부채를 질 수 있는 것도 능력으로 본다. 부동산이나 자동차 구입 같은 큰 소비를 할 때는 물론이고 몇만원, 심지어 몇천원짜리 물건도 할부로 구매하는 마당에 부채는 그 자체로 문제라기보단 적절히 관리한다면 경제 활동에 활력을 부여한다. 또 하나, 창업자가 어떤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는지도 묻곤 한다. 특히 친하게 지내는 창업자들이 있는지, 사업상의 멘토가 있는지를 묻는다. 흔히 네트워크라는 말로 이야기되는 이 관계들을 나는 다른 말로 관계적 부채라 부른다. 자본적 부채를 조달하는 것이 재무전략에 있어서 중요하듯이 관계적 부채를 얼마나 어떻게 쌓을 것인지는 정보나 기회를 양과 질을 좌우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성에 집중하는 네트워크 이론에서는 이를 약한 연결 이론(Weak Tie Theory)이라 부른다. 약한 연결 이론에 의하면 나에게 사회생활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가족, 연인, 절친한 친구 등 가까운 관계(strong ties)의 사람들보다 적당히 알고 지내는(weak ties) 사람들이다. 약하게 연결된 사람들은 내 주변과는 다른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이미 가진 것이 아닌 필요한 기회를 제공해주는 경우가 많다는 이론적 설명이다. 창업가들도 마찬가지다. 작은 부탁도 어려워하고, 모든 문제를 스스로 풀어내려는 창업자와 그렇지 않은 창업자. 어떤 성향이 사업에 더 유리할까? 나의 결론은 빚지는 것, 즉 부채감을 두려워하지 않는 쪽이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모금하는 사람들] 2022년 모금 전망

매년 1월은 한 해의 사업 계획과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시기다. 비영리 단체에도 모금목표와 전략을 짜는 일은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가 되었다. 전년도 실적을 기초로 연초에 전략을 잘 짜두어야 헤매지 않고 결승점에 다다를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모금 성과를 측정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공론화하기 어려웠다. 대부분 모금 목표가 없거나 전년도 성과에 단순히 5~10%를 할증하는 방식으로 목표를 정했는데, 이제 목표 대비 성과 관리는 필수가 되었다. 경기침체와 코로나 사태는 비영리 단체들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에 경각심을 줬다. 과거에 부동산 임대수익으로 안정을 도모했던 법인들은 임대수익이 바닥을 치는 것을 목격했고, 모금과 기부자 소통에 다소 소홀했던 단체들은 현장이 멈추고 수입과 지출에 비정상적인 흐름이 나타나는 것을 경험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 일 나겠다는 위기의식도 생겼다. 몇몇 단체들은 코로나 이전부터 경제가 모바일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에 주목하고 디지털 마케팅과 기술을 도입하고 무대를 디지털로 옮겨갔지만, 대부분의 단체들은 이렇게 갑자기 비대면 세상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올해 모금을 위해서 무엇을 더 신경 쓰면 좋을까. 첫째, 디지털 전환과 데이터의 시대가 도래했다. 디지털 기반의 스마트워크 시스템 장착과 온라인 소통, 그리고 채널 다각화는 필수다. 효과적인 기부자 소통과 관계관리를 위해서 홈페이지와 이메일, 유튜브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의 통합적 활용은 기본이고 모바일 기반의 활용을 더욱 고민해야 한다. 또한 데이터 시스템이 정교해져야 적절한 분석을 통해 기부자를 더 잘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 임팩트] ‘온드림 소사이어티’ 탄생기

2021년 1월 3일 현대차정몽구재단 첫 출근 후 벌써 일년이 지났다. 재단에서 맡은 첫 번째 프로젝트는 재단 최초의 브랜드 커뮤니티 스페이스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비영리 영역에서는 아쇼카 코리아가 운영하는 사회 혁신 뮤지엄 ‘아쇼카 스페이스’, 루트임팩트가 운영하는 체인지메이커들의 코워킹 커뮤니티 ‘헤이그라운드’, 아산나눔재단이 운영하는 창업지원센터 ‘마루 180′과 ‘마루 360′ 등이 브랜드 커뮤니티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런 공간들을 벤치마킹하며 현대차정몽구재단이 만들고자 하는 공간의 방향성을 수립해나갔다. 미래 세대와 함께 환경 관련 사회문제를 창의적, 혁신적으로 해결하는 커뮤니티 기반의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이태원, 성수동, 한남동 등 임대 가능한 빌딩을 보러 다녔지만 마음에 드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예전에 청년 사회적기업 인큐베이팅 센터인 ‘서초창의허브’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어서 공간 입지와 커뮤니티 형성의 중요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섣불리 선택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이후에도, 부동산 중개 사무소에서 소개하는 건물들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 휑한 공간을 무언가로 채울 자신도 없었다. 우연히 웹서핑을 하다가 ‘페이지 명동’이라는 커뮤니티 스페이스가 명동에 있는데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페이지명동은 사회혁신 기업 더함이 YWCA로부터 회관 건물을 마스터리스 방식으로 위탁 운영하는 곳인데 1층부터 6층까지 공간 콘셉트가 마음에 들었다. 다음 날 직접 방문해보니 마침 1층, 3층, 6층이 공실로 비어 있었다. 더함은 이 공간을 사회 혁신과 가능성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이것은 사회 변화와 혁신을 추구한다는 재단의 방향성과도 일치하였다. 명동성당과 남산타워가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입지도 매력적이었다.

[진실의 방] 누가 봉사활동을 모욕하는가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가 군부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학생들에게 위문편지를 쓰게 한 일로 온라인상에서 한바탕 전쟁이 났다. 일부 학생들이 장병들을 조롱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게 알려지면서다. 학교는 편지를 쓴 학생들에게 1시간의 ‘봉사활동’ 점수를 인정해줬다고 한다. 미성년자인 여학생들에게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성인 남성을 위로하는 편지를 보내게 했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나왔고, 결국 여혐·남혐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원론적으로 따지면 위문편지는 훌륭한 봉사활동이다. 코로나 이후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면서 ‘심리 케어’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에 따르면 투병 중인 동료를 정기적으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 온라인 응원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도 봉사활동에 해당한다. 하지만 위문편지를 쓰게 한 그 학교는 애초부터 군장병의 심리 케어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봉사활동을 해서 점수를 얻는 건 괜찮지만, 점수를 얻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건 ‘공익성’과 ‘자발성’이라는 봉사의 기본 원칙과 너무 멀어진다. 시대착오적인 봉사활동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매년 겨울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기업 임직원들의 ‘김장 나눔’과 ‘연탄 배달’ 봉사가 대표적이다. 이걸 한국 기업이 버려야 할 ‘적(赤)과 흑(黑)’이라고 표현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김치라곤 담가본 적 없는 임직원들이 모여서 만든 김치를 누구 먹으라고 준다는 것인가. 맛있는 김치를 사주는 게 백 배 낫다. 연탄 배달 봉사도 마찬가지다. 임직원들이 일렬로 연탄을 나르며 구슬땀을 흘렸다는 구태의연한 스토리에 감동하는 사람은 없다. 봉사활동이 아니라 홍보활동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개발국 아동·청소년에게 티셔츠와 운동화를 보내주는 캠페인이 유행한 적 있었다. 하얀 티셔츠와 운동화에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쌀의 변신은 무죄? 8조원 시장 온다

쌀은 밥이 된다. 이 밥을 잘 먹기 위해서는 짠맛 나는 반찬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의 밥 문화는 그랬다. 그런데 약간만 눈을 돌려보면 전혀 다른 밥의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흰밥만 먹는 국가는 그리 많지 않다. 밥은 주식이지 요리 재료가 될 수는 없다는 우리의 믿음은 근거가 희박하다. 이탈리아의 리소토는 쌀로 만든 대표적인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스페인의 부리토에는 쌀 요리가 들어가고, 중국과 태국에서 볶음밥은 우리의 흰밥처럼 자연스럽다. 서아프리카의 대표적 쌀 요리인 졸로프는 국민 음식 대접을 받고 있다. 세네갈의 체부젠은 종교로까지 격상돼 이에 대해 부정적인 평을 했다가는 외교적 마찰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세계는 점점 더 많은 쌀을 먹고 있다. 1960년대 2억t 정도에 불과하던 쌀 소비량은 2020년에는 5억t까지 늘어났다. 특히 서아프리카 국가에서 쌀 소비량의 증가가 가파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1990년 120㎏이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0㎏ 아래로 떨어졌다. 반면 밀과 육류의 섭취는 크게 늘어났다. 쌀을 적게 먹게 된 건 소득이 높아지면서 식습관도 따라 변했기 때문이다. 1인 가구의 증가도 영향을 미쳤다. 밥과 여러 반찬을 곁들여 먹는 기존 방식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2020년 우리나라 식용밀 수입량은 250만t으로 그해 국내 쌀 생산량의 70%에 달하는 양이다. 점점 더 많은 청년이 밥보다 빵을 더 선호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선호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의 기후위기 대응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시작

벤처 투자자들이 최종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딱 한 가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무엇일까?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 산업의 시장성? 시장 내 경쟁상황? 물론 이 모든 다양한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검토하지만 결국 최종 결정을 앞두고서 가장 주의 깊게 살피고 또 고민하는 것은 뜻밖에도 창업자의 됨됨이다. 창업계에는 ‘될 사업도 안 될 창업자가 하면 망하고, 안 될 사업도 될 창업자가 하면 성공한다’는 류의 이야기가 흔히 떠돈다. 아주 희박한 성공 확률을 이겨내고 성과를 만드는 것은 역시나 사업을 이끌어가는 사람 자체에 전적으로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벤처 투자자로서 인터뷰나 강연 요청에 응할 때 ‘어떤 사람들이 창업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이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조금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창업자를 만나면서 확신하게 된 것은 자신을 더 새로운 경지로 이끌도록 자신을 사랑하는 것 또한 그 사람의 능력이라는 것이었다. 창업가들은 도무지 창업을 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기에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할 수 없는지, 궁극적으로 무엇을 해야 내가 행복한지를 아주 정확히 알아야만 창업에 뛰어들 수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창업했노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이내 자신이 이 일을 얼마나 지독히 사랑하는지를 깨닫는다. 그래서일까 창업가들이 자신을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모두의 칼럼] 멈춰버린 엘리베이터

이달 6일,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의 엘리베이터가 봉쇄되는 사건이 있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멀쩡히 작동되던 엘리베이터가 갑작스레 봉쇄된 까닭은 바로 장애인단체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 때문이었다. 장애인들이 시위를 진행해 역사를 혼란스럽게 만드니 아예 시위가 불가능하도록 장애인들의 필수 이동 수단인 엘리베이터를 막아버린 것이다. 이 사건을 접한 많은 이들이 봉쇄 조치에 대해 화를 내며 이의를 제기했다. 장애인 당사자인 나도 이 사건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려 한다. 먼저 엘리베이터 봉쇄의 의도가 악질적이며 노골적이라고 생각한다. 혜화역 측에선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봉쇄했다고 밝혔다. 그들이 말하는 시민의 범주에 이동권 보장을 주장하는 장애인들은 포함되지 않다는 것이 충격을 받았다. 시설물을 보호한다는 표현도 불쾌했다. 장애인들을 공공에 해를 입히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처럼 묘사했기 때문이다. 혜화역은 다른 역들보다 장애인들에게 각별하다. 혜화역 인근에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노들장애인야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이 있다. 특히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은 봉쇄당했던 혜화역 2번 출구 엘리베이터에서 도보 1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장애인이 다양한 목적으로 혜화역을 찾는다. 심지어 봉쇄 당일인 12월 6일에는 ‘무장애예술주간’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예술을 즐기기 위해, 공부를 하기 위해, 진료를 받기 위해 혜화역을 찾은 수많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강제로 빼앗아버린 그날의 봉쇄 조치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시위는 주로 유동 인구가 많은 출근 시간대나 주말에 이루어진다. 이에 대해 ‘왜 굳이 제일 바쁜 시간대에 시위하느냐?’ 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은 시간대에 시위를 진행하면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지킬 박사와 하이드, 그리고 보물섬

어느 밤, 영국 런던 번화가의 어느 작은 도로에서 ‘하이드’라는 남자가 소녀를 무참히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하이드에게 “돈으로 소녀에게 배상하라”고 요구했고, 하이드는 지역 내 명망 높은 지킬 박사의 서명이 적힌 백지 수표를 건네주고 자리를 떠난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서막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자신의 자아에 내재하는 또 다른 자아에 쫓기는 한 인간의 이중성을 다룬 작품으로,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지킬 박사가 사실은 잔인하고 추악한 모습을 지닌 하이드였다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최근 한국의 어느 ESG(환경·사회·거버넌스) 평가기관이 ‘ESG 워치리스트’를 발표했다. ESG 리스크가 높은 요주의 기업 9곳을 선정해 공개한 것이다. 오염물질 배출 및 배출량 조작,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근로자 사망사건, 근로자 산업재해, 고객정보 유출 사고, 하도급업체 기술 유용, 총수일가 횡령, 뇌물공여, 계열사 부당지원, 정경유착을 통한 합병 등이 선정 이유였다. 그런데 이들 기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ESG 경영을 선언하고 ESG 활동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타 ESG 평가에서는 우수한 기업으로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ESG 우수기업으로 ESG 경영을 잘 실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셈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어떻게 해야 기업의 이러한 이중성을 막을 수 있을까? 이탈리아 사크로 쿠오레 가톨릭대학교의 알폰소 델 주디체 교수와 실비아 리가몬티 교수는 기업의 부정행위와 ESG 평가 결과와의 관계에 대해 연구했다.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ESG 평가는 복잡한 설문지와 기업이

210420-0012
[모두의 칼럼] 워킹(working)과 워싱(washing) 사이, 노플라스틱 캠페인

매월 22일에는 자동차를 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또 그날 저녁 8시에서 9시에는 전등을 끈다. 에너지를 적게 사용해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여보자는 것이다. 고기 없는 월요일(Green Monday)을 시도하는 공공기관과 기업도 많아졌다. 더 나아가 다양한 층위의 채식주의에 도전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메탄을 줄이는 방법이자 동물복지를 고려한 소비다. 상품 포장과 분리배출에 관한 정보 공유도 활발하다. 플라스틱을 사용한 물건과 포장재의 재활용은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발생과 관련이 있다. 플라스틱 생수병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다회용기를 쓰지만 어쩔 수 없을 경우에는 종이팩 생수와 같은 대안적인 물품을 찾는다. 환경에 관한 이슈만이 아니다. 매일 마시는 커피와 차에도 공정함을 담고 싶고 마스코바도로 요리를 하면서 멀리 필리핀의 노동자와 연대감을 느낀다. 장애인들이 만드는 쿠키와 콩나물을 구매하는 것도 소비에 사회적 가치를 더하고 싶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이렇게 자신들의 소비생활에 의미를 담으려는 시도들은 기업들이 이에 걸맞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기후위기 시대에 소비자들과 기업들의 이런 노력은 놀랍게도 항상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환경을 생각하고 공정무역에 관심이 많으면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의 상품을 소비하는 노력에 대해 ‘유별나다’는 말을 듣기 쉽다. 혹은 ‘너 혼자 그래 봐야 세상 안 변한다’라는 말이 덧붙는다. 완전한 비건이 아닌 경우, 특히 채식을 하되 상황에 따라 육식을 허용하는 아주 낮은 단계의 채식주의자들에게는 ‘선택적 비건이냐’하는 비아냥이 따르기도 한다. 기업의 경우는 더욱 엄격한 잣대가 있다. 그래서 생겨난 용어들이 이른바 ‘워싱(washing)’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