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최재호의 소셜 임팩트] 임윤찬 신드롬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열여덟 살 청년에게서 나오는 이 믿을 수 없는 고귀함에 큰 감명을 받았다. 연주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을 황홀한 상태로 베이스퍼포먼스홀(텍사스 포트워스)을 걸어나온 기억이 난다.”(장-에프랑 바부제)

“임윤찬은 18세 어린 나이에 세상이 주목하는 연주를 창조했고, 이 연주는 그와 함께 또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아주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앞으로 라흐마니노프는 임윤찬의 것이다.”(앤 마리 맥더모트)

지난달 미국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서 임윤찬이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뒤 나온 반응이다. 장-에프랑 바부제는 프랑스의 피아노 거장이며, 앤 마리 맥더모트는 미국의 피아니스트다. 콩쿠르 이후 인터뷰에서 임윤찬에 대한 감동과 놀라움을 표현한 두 사람은 이번 콩쿠르의 심사위원이었다. 두 사람의 인터뷰를 진행한 피아노 전문 평론가이자 유튜버인 벤 라우더는 “내 평생 콩쿠르에서 협주한 오케스트라가 솔리스트의 연주에 이렇게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임윤찬의 연주 직후에 모든 오케스트라가 악기를 손에서 놓고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것은 진심으로 솔리스트에 대한 존경을 넘어 경외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임윤찬은 전투에 나선 장수와 같이 오케스트라를 전투에서 승리하도록 이끌었고, 전장을 호령했다”고 그의 유튜브 방송에서 말했다.

1962년 미국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을 기념하기 위해 텍사스 주 포트워스에서 개최된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는 냉전 시대에 이념을 뛰어넘는 음악의 힘을 상징한다. 1958년대 미국과 구소련의 냉전이 극에 달하던 긴장 상황에서 구소련이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해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를 개최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24세인 미국의 피아니스트 클라이번이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다. 핵전쟁의 위협과 미국과 소련의 군비 경쟁으로 치닫던 냉전의 시대이지만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심사위원들은 이념을 넘어 젊은 피아니스트의 도전과 열정에 감동했다. 구소련의 피아니스트를 우승시킬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클라이번이 우승한 것은 이념을 뛰어넘는 음악의 힘을 전 세계에 보여주며 미-소 냉전 해소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렇듯, 이념과 차별을 넘어 젊은이의 꿈을 실현토록 한다는 것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헤리티지다. 수십년이 지났지만 인류의 냉전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라는 모습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냉전 시대 구소련으로 향한 젊은 미국 피아니스트의 모습이 신냉전의 시대에 음악으로 전 세계인을 감동시키고 있는 대한민국 임윤찬의 모습과 겹치면서 묘한 감동을 준다. 반 클라이번과 임윤찬은 이렇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임윤찬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현대차정몽구재단의 차세대 문화예술 리더 중의 한 명으로 2020년 예원학교 수석 졸업 후 홈스쿨링을 할 때 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이후, 2021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17세의 나이로 조기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재단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임윤찬을 처음 만난 것은 2021년 현대차 정몽구 스칼러십 장학증서 수여식이었다. 장학생들을 위한 축하 무대를 같은 또래의 문화예술 장학생들이 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담당자의 판단에 따라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첼리스트 한재민의 협연을 준비했다. 학생들의 공연이니만큼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공연을 보다가 두 친구의 연주 실력과 카리스마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음악적으로는 가요를 좋아하는 아버님의 영향을 받았고, 유재하와 김현식을 좋아하는 임윤찬. 7살에 동네 상가 피아노 학원에서 음악을 시작한 국내파 피아니스트가 세계적인 음악 평론가의 극찬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막 자랑스럽고 뿌듯함과 함께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재단이 지향하는 진정한 미래 인재의 모습이다.

재단은 2010년부터 문화예술 후원이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계층 간 문화격차 해소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사회 창의성과 혁신성 촉진의 원동력이 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클래식, 무용, 국악 등 K-컬쳐 전반의 저변확대와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성과로 지난 5월 워싱턴 국제 콩쿠르에서 1위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위재원, 작년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첼리스트 한재민, 헝가리 무용가협회가 선정한 최고 신인 무용수 발레리나 이유림, 한국인으로는 세 번째로 파리 발레단에 입단한 윤서후, 올해 코즐로바 국제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받은 강서연 등 수많은 청년이 세계무대에서 K-컬쳐의 선두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임윤찬 신드롬은 가히 폭발적이고 그 열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아마도 그동안 축적된 K-클래식의 응축된 힘이 임계치에 다다라 동시다발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된다. K-클래식 세계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다만 우리가 보고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임윤찬을 시작으로 앞으로 클래식뿐만 아니라 발레, 현대무용, 국악 등 K-컬쳐 전반으로 한류의 열풍이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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