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직접…” 참여형 캠페인 든든한 후원자 모집 비결이죠 적선하듯 돈 주던 사람들 정기후원자 한 명도 없어 길거리 캠페인 최초 시도 현재 15만명 270억 모금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 아내 잃은 남편이 뜨개질 해 보내는 등 감동적 사연 잇달아 한국NGO 해외원조 과제 한 지역 오래 지원해야 1919년 영국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에서 에글렌타인 젭이라는 여성이 전단지를 나눠주다 체포됐다. “굶주림을 물리치자”는 제목과 함께 기아에 시달리는 오스트리아 어린이의 사진을 담은 전단지 때문이었다. 적국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며칠 뒤 열린 재판에서 그녀는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그 취지에 공감한 재판장은 단지 벌금 5파운드만 선고했다. 검찰은 이 5파운드를 기부했고, 이것이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기금의 시작이다. 1953년 6·25전쟁 당시 한국지부를 세웠던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는 이제 원조를 주는 나라 30개 중 9위에 속한다. 지난해 12월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으로 취임한 김노보 이사장은 2004년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의 토대를 닦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30년간 기업에서 일하시다 한국네슬레 상무로 퇴직한 후 2004년 세이브더칠드런에 합류하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당시 저는 심장병 어린이 치료지원을 하던 한국어린이보호재단의 후원자였습니다. 2003년 정년퇴직하고 쉬고 있는데, 2004년 무렵 전임 이사장님께서 세이브더칠드런과 한국어린이보호재단의 합병작업을 도와달라고 하셔서, 감사로 활동했습니다. 직원 수 10여명인 작은 조직이었는데, 6개월 정도 지켜보니 너무 허술했어요. 직원들한테 10명씩 할당을 주면서 아는 사람을 통해 후원을 부탁하는 식이었어요. 기업체에 제안서를 써가는 것도, 구걸하는 형태였어요. ‘평생 할 일인데 전문성을 키워야겠다’ 싶어서, 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