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너무 많아서, 너무 적어서

“안에 들어가면 비 오는 소리가 쏴 하고 들릴 거예요.” 안내인의 설명과 함께 20평이 채 되지 않는 사육장에 들어섰다. 암실 안에서 서로 다른 조도 아래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는 데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들려오는 힘찬 빗소리. 식용으로 쓰이는 쌍별귀뚜라미 수백만 마리가 만들어내는 그 소리는 한여름 소나기같이 우렁차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청아했다. 곤충 수백만 마리를 한 방에서 마주하는 생경한 경험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바로 작년 여름, 곤충 스마트팜 설루션을 만드는 ‘반달소프트’라는 회사에 투자하면서다. 식용 곤충 산업은 새로운 단백질 영양원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 축산업 대비 토지와 물을 적게는 20배, 많게는 50배까지 절약할 수 있어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양질의 단백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성장세도 무섭다. 연평균 25% 이상 성장하고 있고, 만약 곤충 단백질을 축산(소·돼지·닭 등) 사료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된다면 더 큰 산업적 성장이 담보된다. 식용 곤충 산업이 환경적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는 우리 투자 회사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국내 임팩트투자를 이끌고 있는 성수동의 투자사들이 가장 집중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기후 위기’다. 태양광 등의 신재생에너지 산업이나 재활용 산업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투자처가 되었다. 원소재를 재활용품에서 뽑아내거나 심지어 연구실에서 배양해 패션 산업의 혁신을 꾀하는 기업들, 대체육·배양육 등을 통해 축산업이나 수산업의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푸드테크 기업들, 유통·판매 과정에서 버려지는 음식 폐기물을 줄이려는 기업들은 이미 임팩트투자사들의 포트폴리오에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후회 없는 실패

월요일 저녁이면 우리 집에서는 아이를 일찍 재우기 위한 작전이 진행된다. 그래야 저녁 10시 30분에 시작하는 음악 경연 프로그램의 본방을 사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매회 놀라곤 하는 것은 노래 잘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치열한 예선을 치르고 방송 출연의 기회를 얻은 분들이니 실력이야 검증받은 셈이지만 경이롭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 시청을 멈추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경연 과정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참가자들을 볼 때의 감동 때문이다. 매주 경쟁과 탈락이라는 긴장의 순간을 마주하면서도 기어이 더 발전한 모습을 선보이는 참가자들에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그간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실력자들이 탈락하는 때다. 노래를 잘하는 것만으로 유명한 가수가 될 수는 없다는 현실은 뼈아프다. 그래서일까,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든 순간에 보여주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유심히 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경연 프로그램에서 가장 멋진 순간이 아닌가 싶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며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하는 표정, 경쟁자를 축하하거나 고마움을 전하는 모습, 하염없이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 살면서 내가 하는 일들의 성적표를 바로바로 받아볼 기회는 적다. 그것도 한 번의 무대에서 운명이 판가름 나는 결과라니. 마치 매주 수능을 보는 기분이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괴로운 탈락의 순간에도 ‘후회 없는 무대’였다는 소감을 전하는 참가자들이 있다. ‘후회 없다’는 이 네 글자가 주는 울림은 상당히 크다. 다른 사람의 평가로 매겨진 결과에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임팩트투자사 공략법

코로나 때문에 정신없이 지나가버린 2020년이지만, 어쨌든 한 해의 마지막인 12월이 찾아왔다. 한 해를 돌아보며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봤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바로 ‘임팩트투자 유치 노하우’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투자 유치에 대한 이야기는 소풍과 같은 임팩트투자사뿐 아니라 일반 벤처나 투자 관련 기사, 스타트업 관련 글의 단골 주제다. 그럼에도 매년 이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 이유는 아마 임팩트투자사에 대한 또 다른 기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임팩트투자사들은 과연 어떤 벤처기업을 찾고 있을까? 임팩트투자를 고려하는 창업가들에게 추천하는 방법은 임팩트투자사를 ‘자금(Money)’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규모(Scale)’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라는 것이다. 첫째, 임팩트 자금(Impact Money)을 들여다봐야 한다. 임팩트투자사의 자금 성격과 철학부터 파악하고 접근하라는 뜻이다. 회사의 철학과 회사에서 운영하는 개별 투자 조합의 철학은 다를 수 있다. 투자사의 자금원과 자금의 목적·성격을 살펴봐야 한다. 정부 등 외부로부터 자금을 모아 투자를 하는 곳인지, 아니면 자기 자본을 갖고 투자를 하는 곳인지, 자선 성격의 자금을 제공하는지에 따라 투자 대상이나 기간이 다르다. 둘째, 임팩트 커뮤니케이션(Impact Communication)으로 임팩트 창출에 대한 의지와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어떤 임팩트를 창출할 것인지,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측정하고 평가하고 유지해 나갈 것인지를 명확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창출하는 임팩트가 적다고 해도 앞으로의 계획이나 지향점을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나아가 임팩트 리포트 발간 등을 통해 사회적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영감들과의 휴식

사회를 바꾼다는 것. 참 무겁고 거창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혁신’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업(業)으로 삼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장작으로 삼아 불을 지펴 밝은 빛을 만드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가장 가까이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내는 밝은 빛 아래에 감춰진 고독의 그림자를 느낄 때가 있었다. 혼자 고군분투하는 듯한 고립감, 노력해도 안될 것 같은 무력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여러 감정으로 지쳐가는 혁신가들에게 필요한 게 있다면 한 인간으로서 갖는 재충전의 시간일 것이다. ‘인스파이어드’는 매년 전국 각지에 있는 100명의 사회혁신가들을 제주로 초청해 2박 3일 동안 영감과 휴식의 시공간을 제공하는 행사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친 사회혁신가들이 스스로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보고, 또 그런 서로 마주하며 연대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그 원동력이었다. 씨프로그램과 루트임팩트, 소풍, 씨닷이 함께하는 인스파이어드는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은 언컨퍼런스다. 언컨퍼런스란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연사가 청중에게 일방적으로 강연을 하는 기존의 콘퍼런스를 뒤집는다는 뜻의 단어다. 언컨퍼런스에서는 모두가 호스트이며 동시에 참가자다. 이 행사에서는 누구나 즉흥적으로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 인스파이어드에서는 서로를 ‘영감(靈感)’이라고 지칭한다. 혁신가로서 지고 있던 짐을 모두 벗어 던지고 온전히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하나의 영감으로서 서로를 마주하자는 약속이자 문화다. 2020년의 인스파이어드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최초로 온라인으로 진행됐고, 카카오임팩트재단이 처음으로 합류했다. 온라인으로 열리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시작되자마자 우려는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온라인 회의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임팩트 투자에 ‘마법 모자’가 필요할 때

얼마 전 ‘로컬 브루어리(지역 양조장)’에 대한 투자 건으로 구성원 간에 진지한 토론이 있었다. 한쪽에서는 술은 웰빙을 해치기 때문에 임팩트 투자 대상은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반대쪽은 전통주와 같이 지역 문화나 지역 공동체적 측면이 강조되는 경우에는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맞섰다. 쉬이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논의는 ‘건강 디저트’로 이어졌다. 더 건강하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디저트 제품이라면 사회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디저트는 영양 등 생존의 필수재도, 식량 문제와 연결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투자 우선순위에서는 떨어진다는 주장이 충돌했다. 임팩트 투자사 내부에서는 종종 사회적 가치 판단을 둘러싸고 열띤 논쟁이 펼쳐진다. 환경, 장애, 의료, 교육, 여성 분야의 경우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쉽게 끝나는 편이다. 하지만 모호한 지점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영역도 많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해야 ‘이것은 사회적 가치고, 이것은 아니다’라는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는 ‘마법의 분류 모자(sorting hat)’가 등장한다. 학생의 머리에 모자를 씌우면 기질과 성격을 읽어 특성에 맞는 기숙사를 배정해주는 마법 모자다. 투자 결정 건으로 토론이 격렬해지다 보면 우리에게도 그런 마법 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임팩트 투자계에 분류 모자 같은 역할을 하는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임팩트 투자 기관은 지난 2015년 UN에서 선정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사회적 가치의 판단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 투자 결정 과정에서 재무적 요소와 더불어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고려하는 ESG 역시 널리 활용되는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이번 정차할 곳은 성수동입니다

십수 년 전, 현장 연구를 위해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을 방문하고 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막 몸을 실었을 때다. 똑같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 한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림잡아 100여 명쯤 되어 보이는 그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명찰을 목에 걸고 노란색 서류 봉투를 품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들이 처음 비행기를 타보는 사람들임을 알아차리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무리 중 한 명인 40대 방글라데시 남성의 옆자리에 앉게 됐다. 세 아이의 아빠라는 그에게 비행기 좌석의 안전벨트 매는 법을 알려주다 대화가 이어졌다. 그가 두 손에 꼭 쥐고 있던 노란색 서류 봉투를 건넸다. 봉투 안의 서류를 확인하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들은 가족 품을 떠나 일자리가 있는 태국의 농장으로 향하던 방글라데시 농민이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 갑작스레 떠오른 것은 출근길 집을 나서기 전 마스크를 챙기면서였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것도 금기시된 요즘, 다른 나라로 떠나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그러다가 집을 떠나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로 생각이 이어졌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단절된 지금, 국경을 넘어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던 그들은 어떻게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활기찬 목소리로 가득하던 카페도, 식당도, 공장도 문을 닫고 있다. 일자리를 잃은 프리랜서들은 사회 안전망에서 벗어나 불안한 삶을 산다. 가정이나 사무실을 방문해 일하던 사람들이 휴업 상태에 놓인 것도 수개월째다. 코로나가 확산과 소강, 그리고 다시 확산을 반복하는 사이 그간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