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기업 CSR 트렌드를 말하다… 토시오 아리마 UNGC 일본협회장
투명한 경영·책임 투자
정부가 규제 만들어 압력
기업에 강력한 효과 있을 것
“지난여름 일본엔 이상(異常)고온 현상이 지속됐다. 태풍은 동시다발적으로 일본을 찾아왔고, 지금은 이상 한파(寒波)를 겪고 있다. 기후변화를 비롯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미래 세대의 문제일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란 점을 기업이 깨달아야 한다.”
토시오 아리마(Toshio Arima·사진) 유엔글로벌콤팩트(이하 UNGC) 일본협회장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무관심한 기업들을 향해 경고했다. 토시오 아리마 회장은 후지제록스 전(前) 회장(現 고문)이자 CSR위원회 위원장으로 후지제록스의 CSR 전반을 지휘했고, UNGC일본협회장으로서 일본 기업 CEO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알리는 네트워크를 조성, 200개 기업을 UNGC일본협회에 가입시켰다. 그는 또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난민 등을 지원하는 국제구호단체 ‘재팬플랫폼(JPF)’의 회장이기도 하다. 지난달 29일, 유엔글로벌콤팩트(이하 UNGC) 한·중·일 각 협회가 주최하는 라운드테이블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토시오 아리마 회장에게 일본 CSR의 트렌드와 전망을 물었다.
―최근 한국은 대기업의 지배구조와 윤리경영 이슈가 화두인 반면, 환경 및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편이다. 일본은 어떤가.
“올해 초 1조5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도시바(Toshiba)’를 비롯, 일본 대기업 역시 윤리경영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1956년 공장 폐수에 포함된 수은 중독으로 나타난 미나마타병 이후 일본 기업들은 환경 및 기후변화 이슈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기업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축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 비용 절감과 수익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돼 있다. 일례로 1995년 후지제록스는 제품 생산 라인부터 고객이 사용하는 모든 과정에 이산화탄소 및 에너지를 절감하는 공급망(밸류체인·Value Chain)을 새롭게 개발했고, 카트리지 등 기계 재활용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초반엔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8년간 200개 특허를 획득할 정도로 노력한 결과, 2003년부터 수익성이 높아졌다. 2004년부터는 태국, 중국 등에도 이를 적용했다. 또한 CSR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각 공장에서 관련 교육 및 훈련을 받도록 했다. 그 결과 고객 만족도는 물론 수익성, 경쟁력, 지역 정부로부터 신뢰도 얻었다. 11년 연속 일본 통산성(MITI)으로부터 에너지 절약상도 받았다.”
―한국 CEO는 CSR의 개념은 알지만 이를 기업 경영 전반에 적용하는데 있어서는 소극적이다. 일본 기업 CEO는 CSR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지난해 일본 최고경영자연합회(도유카이) 설문조사 결과, CEO의 75%가 ‘CSR은 비즈니스의 핵심’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답변은 2006년 50%에서 2010년 75%로 껑충 뛰었고, CSR을 기업 경영에 내재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높아졌다. 정부의 압력도 강해졌다. 지난해 일본 재무성은 투자자들이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투자해야 한다는 ‘청지기(Stewardship)’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세계 최대 규모인 일본 연기금(GPFI)이 유엔책임투자원칙(UN PRI)에 가입하는 등 책임투자가 강조되는 분위기다. 올해는 재무성에서 일본 상장기업들에 ‘이사진 안에 외부인을 최소 2명 이상 두어야 한다’는 등 투명성을 강조한 ‘거버넌스 코드(DCR)’를 발표했다. 지배구조와 관련된 정보들을 모두 공개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거버너스 코드’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일본 재무성이 직접 만든 규제이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에 강력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 지속가능발전목표(이하 SDGs)가 발표된 만큼, 향후 SDGs를 위한 기업의 역할이 화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한국 기업의 관심은 매우 낮다. 향후 기업들은 SDGs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일본 기업 역시 SDGs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편이다. 최근 설문조사에서 ‘SDGs를 알고 있다’고 답한 기업은 85%로 나타났다. SDGs를 알고 있다고 답한 이 중 61%가 CSR 담당자들이었고, 최고경영진은 전체의 17%에 불과했다. 예전부터 CSR에 대해 적극적이었던 후지제록스나 스미토모 케미컬(Sumitomo Chemical) 2곳만, 9월 26일 유엔 총회에 참석해 SDGs와 관련한 각 기업의 공약을 발표했다. SDGs는 기업에 사회의 니즈(needs)가 무엇인지 알려줄 뿐만 아니라, 중요한 비즈니스 기회로 연결시키는 핵심 어젠다다. 내가 만약 한국 기업의 CEO 또는 CSR 부서의 리더라면 SDGs의 17개 목표 중에서 가장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부터 찾아 빠르게 움직일 것이다. 정부,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PPP(민관협력) 모델을 만들어 혁신적인 해결방안을 만들 것이다.”
정유진 기자
장혜승 청년기자(청세담 4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