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7일(화)

“고령화, 새로운 비즈니스와 투자 기회 될 수 있어”

[대담] HGI 남보현 대표·트리플라잇 이은화 대표

시니어 1000만 명 시대에 들어섰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가 1000만 62명으로 전체 주민등록인구(5126만 9012명)의 19.51%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빠르면 올해 연말,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초고령사회란 65세 이상 인구가 총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사회를 말한다.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임팩트 투자사 에이치지이니셔티브(이하 HGI)와 임팩트 전략·측정 전문 솔루션 기업 트리플라잇은 최근 ‘투자사를 위한 사회문제와 산업 분석 : 고령화’ 리포트를 발간하며, 초고령사회가 야기할 실버산업의 변화가 새로운 비즈니스와 투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특히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지속가능한 투자 전략을 통해 고령화 문제 해결의 임팩트를 높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달 23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에서 이번 리포트 발간을 기획하고 발간한 HGI 남보현 대표와 트리플라잇의 이은화 대표를 만나 ‘투자사 관점에서 바라본 고령사회의 해법’을 물었다.

이은화 트리플라잇 대표(좌)와 남보현 HGI 대표(우). /주민욱 C영상미디어 기자

―투자사를 위한 사회문제 심층 분석 리포트를 발간한 계기와 첫 번째 주제로 ‘고령화’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남보현=사회문제의 불확실성과 변화는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첫 번째 주제를 고민하다가 사회이슈와 자본시장의 기회가 맞물릴 수 있는 영역이 ‘인구구조의 변화’라고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는 고령 인구의 급격한 변화부터 심층적으로 분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은화=기후 위기 못지않게 한국의 인구구조 변화, 그중에서도 고령화에 대해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남 대표가 고령화와 관련된 사회문제를 분석해 스타트업과 투자자에 제시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해왔다. 너무 공감되고 반가운 기회였다(웃음).

HGI와 트리플라잇이 고령화 관련 중요 이슈를 분석한 결과, ‘사회관계 축소 및 고립’이 가장 시급한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리포트 갈무리

HGI와 트리플라잇은 한국의 시니어들이 겪는 주요 문제를 식별하기 위해 고령화 관련 미디어 빅데이터 약 29만 건과 OECD 국가의 고령화 관련 통계 지표 38개를 분석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중요 이슈를 도출했다. 그 결과, 실버세대의 ‘사회관계 축소 및 고립(3.94점)’ 문제에 가장 집중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정보 격차(3.42점)’, ‘정신적 스트레스 및 유병률 증가(3.36)’이 근소한 차이로 뒤를 이었다.

―중점 이슈 도출 결과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나.

남보현=의외였던 부분은 물질적 불안함보다도 사회적 활동 축소로 오는 소외감 경험과 같은 정신적 측면이 더 시급한 문제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회문제 해결책은 물질적 시스템을 중심으로 제시되는데, 정신적 풍요로움을 위한 대책 마련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였다. 

이은화=디지털 격차이슈가 컸던 점이 눈에 띄었다. 요즘 디지털이 안 들어간 곳이 없다. 키오스크도 그렇고, 핸드폰으로 하는 모든 서비스가 다 디지털화되어 있는데, 이에 익숙한 시니어와 그렇지 않은 시니어의 격차가 앞으로는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졌다.

HGI와 트리플라잇 조사 결과, 벤처투자 전문가들이 평가한 가장 매력있는 실버산업 분야는 ‘헬스케어’였다. /리포트 갈무리

사실, 두 대표는 여성 리더라는 것 외에 ‘여성 임팩트 투자자’라는 것도 공통 분모다. 남보현 대표는 SK커뮤니케이션즈와 LG전자에서 정보기술(IT) 프로젝트를 담당하다가 2011년부터 소셜벤처를 돕기 위해 행복나눔재단으로 커리어를 전환했고, 2016년에는 투자팀장으로 HGI에 합류했다. 공인회계사인 이은화 대표는 삼정KPMG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 2014년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에서 투자심사역을 맡으면서 임팩트 생태계에 발을 디뎠다. ‘투자자’로서의 관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리포트에서는 벤처투자 전문가 12명(소풍벤처스, 본앤젤스,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인비저닝파트너스, 크릿벤처스, 프리미어 파트너스, DSC 인베스트먼트, HGI, MYSC)을 대상으로 실버산업의 특징과 매력도도 평가했다. 이들은 19개 실버산업의 매력도를 ▲미래 성장성 ▲경제적 파급 효과 ▲정책 연계성 ▲벤처 투자를 통한 문제 해결 가능성 등 4가지 평가 기준으로 순위를 매겼다.

남보현 HGI 대표는 “이번 리포트에서 도출한 인사이트를 통해 많은 스타트업과 투자자들이 사회문제 해결에 도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민욱 C영상미디어 기자

―벤처투자 전문가들이 뽑은 매력있는 실버산업 분야는 무엇이었으며, 그중에서도 경제적·사회적 가치의 균형 있는 창출이 기대되는 영역은 어떤 분야로 나타났나.

이은화=전문가들은 헬스케어 산업을 가장 매력 있다고 봤다. 세분화하면 ‘의료기기 개발’과 ‘의료 및 건강관리서비스’가 공동 1위였고, ‘의약품 제조 및 유통’이 뒤를 이었다. 이외 ‘금융·자산관리 서비스’, ‘시설 및 재가 요양서비스’가 각각 4, 5위를 차지했다. 경제적·사회적 가치의 균형 있는 창출이 기대되는 영역은 시니어 건강과 관련된 헬스케어 분야와 시설 및 재가 요양서비스로 꼽혔다.

남보현=헬스케어가 가장 매력 있는 영역으로 꼽힌 이유는 최근 알츠하이머 등의 뇌질환, 당뇨와 같은 만성 질환의 유병률이 증가하면서 이를 위한 ‘치료제 및 의료기기 개발’이 창출하는 가치가 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의료비를 절감하거나 질병 예방, 진료 및 재활 접근성을 높이는 기술의 주목도가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HGI가 투자한 기업 중에는 이미 실버산업에 뛰어들어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곳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2019년에 설립된 ‘케어링’이 있다. 케어링은 시니어를 대상으로 방문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예비 사회적기업이다. 기존 재가요양센터는 대부분 요양보호사가 서류작업이나 데이터 관리 등을 직접 해야 했다면, 케어링은 이를 모두 전산·자동화하는 전사적자원관리(ERP) 솔루션을 개발해 요양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어냈다. 절감한 운영비를 요양보호사에게 돌려주는 구조를 구축함으로써 처우 개선에도 기여하고 있다. 올해 1월 기준 케어링 소속 요양보호사는 4만 2000명이며, 서비스 이용자는 누적 약 1만 2000명에 이른다.

HGI가 2018년에 처음으로 기관투자를 진행한 기업도 실버산업군인데, 헬스케어 분야의 메디픽셀이다. 2017년에 설립된 메디픽셀은 AI 기술을 활용해 심혈관질환의 진단과 치료를 위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기업이다. 대표 제품인 ‘MPXA-2000′은 심혈관 조영영상을 AI로 분석해 1~2초 만에 혈관 협착 부위를 자동으로 탐지하고, 정량화된 결과를 제공한다. 지난해 3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도 획득했다.

―리포트 발간 이후 주변에선 어떤 피드백들이 있었나.

이은화=스타트업과 벤처케피탈 쪽에서 반응이 좋았다. ‘시니어 문제와 관련한 산업을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 보고서가 나와서 공부가 많이 됐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남보현=기존에도 고령화, 시니어 산업 등 다양한 기관에서 연구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었지만, 기존에 파편화되어 있던 걸 모아서 ‘투자와 비즈니스 기회’의 관점으로 분석한 것에 의의가 있다는 평이 많았다.

―이번 리포트가 어떤 시사점을 주고, 어떻게 활용되길 바라는가.

이은화=리포트를 통해 스타트업과 벤처케피탈이 고령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을 바탕으로 한 해결책을 많이 제안했으면 좋겠다.

남보현=정부 정책 수립 단계에서 단순히 하드웨어에 집중된 예산 편성으로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고, 커뮤니티 조성과 같은 정신적 풍요로움의 측면도 논의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은화 트리플라잇 대표는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사각지대를 선명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주민욱 C영상미디어 기자

HGI가 트리플라잇과 이슈 리포트를 발간한 이유도 문제 해결을 위한 ‘증거 기반’ 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더 많은 자본이 사회문제 해결에 효과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이를 설득할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 속 기회를 꾸준히 읽어내고 더 많은 자본이 지속가능한 투자에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는 HGI와 지식을 기반으로 임팩트를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트리플라잇, 두 리더 모두 각 조직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이제는 문제 해결의 성과를 증명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진행 = 김경하 더나은미래 기자 noah@chosun.com
정리 =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oil_lin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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