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시 ‘나무고아원’ 르포
퇴출 위기 가로수용 버즘나무 700그루 옮겨온 게 계기
개원 후 전국서 기증 이어져… 2만 2000그루 공원으로
체험 학습, 가족 단위 방문객 증가… 시민 쉼터로 거듭
“살아난 게 기적인 녀석입니다.”
염규진 팀장(50·하남시 공원녹지과 공원관리팀)이 어른 키 두 배가 훌쩍 넘는 ‘수양버들’을 보며 말했다. 육중한 체구와 흐드러지게 풍성한 이파리로 공원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는 나무다.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흩날리는 버들잎이 마치 방문객을 환영하는 손길 같다. 하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고사(枯死) 직전의 상태였다고 한다. 염 팀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원래 하남시의 한 가로수였어요. 그런데 도로 확장 공사를 하며 상처 입고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죠. 줄기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껍질은 새까맣게 변해 있더라고요.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파인 공간에 인공 수피(樹皮)를 붙여 치료하고…. 새 생명을 얻기까지 여러 차례 큰 수술을 거쳤죠.”
지난 15일 방문한 ‘나무고아원’. 경기 하남시 망월동에 있는 이곳은 나무들엔 ‘힐링’의 명소다. 토목공사, 건물 신축 등으로 버려질 위기에 처했거나 죽어가는 나무들을 모아 돌본다. 그래서인지 작고 비쩍 마른 나무나 지지대에 몸을 맡긴 나무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공원 관계자는 “옮긴 지 얼마 안 된 나무가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배려”라면서 “저기 보이는 배나무, 뽕나무, 자두나무들도 처음에는 다 비슷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제법 탐스러운 열매까지 주렁주렁 매단 건강한 나무들이 꼿꼿이 서 있었다.
“처음엔 허허벌판이었어요.”
나무고아원의 시작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기 하남시 창우동과 신장동 일대 가로수로 활약했던 ‘버즘나무’ 700여 그루가 한꺼번에 퇴출될 위기에 놓였다. ‘꽃가루가 많이 날린다’는 민원 때문이었다.
“그냥 베어버릴 수도 있었죠. 하지만 우리 고장에서 자란 나무를 우리가 소중하게 돌보자는 의지로 그들을 한데 모은 거예요.” 염규진 팀장이 웃으며 말했다. 버즘나무를 옮겨와 심은 것은 나무고아원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2001년 나무고아원이 정식 개원하고 소문이 퍼지자, 나무를 기증하겠다는 전화가 빗발쳤다. 서울시 마포구, 인천 강화군, 심지어 청와대 출신의 사연 있는 나무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현재는 8만9000㎡ 규모의 부지에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향나무, 단풍나무, 배나무, 뽕나무 등 2만2000그루가 넘는 나무가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그중 절반이 타 지역 출신이다.
하나 둘, 갈 곳 없는 나무들의 쉼터 역할을 묵묵히 해 온 나무고아원은 이제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 됐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의 자연 체험학습 장소로 이용하기도 하고, 주말엔 텐트를 치고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거나 애완동물을 데리고 오는 가족 단위의 방문객도 많다.
이날 만난 김희준(50·서울 강동구)씨는 “나무고아원과 이어지는 자전거 길을 따라 매일 자전거를 타러 온다”며 “공기 좋고, 조용한 자연공원이 집 근처에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류한길(60·경기 남양주시)씨는 지인들과 우연히 방문했다가 취지에 감탄했다고 한다.
“어디에 있든 이로운 게 나무잖아요. 폐기 처분 위기에 몰려 갈 곳 없었던 나무들에 새 생명을 준 장소에 왔다고 생각하니 특별함이 더하는 것 같아요. 맑은 공기와 탁 트인 경치는 사람이 누리는 덤이고요. 이곳이 나무들, 그리고 시민들의 쉼터로 영원히 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