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4일(수)

국제구호도 전략적으로… “인도주의 솔루션을 개발합니다”

[인터뷰] 이은영 국제구조위원회 한국사무소 대표

새해를 전후로 각 분야에서 보고서가 쏟아진다. 국제구호단체나 국제기구, 금융기관 등에서 지난 한 해를 분석하고 미래를 진단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목적은 분석을 통한 예측. 국제구조위원회(IRC·International Rescue Committee)는 10년 넘게 ‘세계 위기국가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IRC 보고서의 예측률은 85~95% 수준이다. 이 때문에 유엔이나 다른 국제기구에서도 지원 근거로 삼는다.

4일 국제구조위원회 한국사무소에서 만난 이은영 대표는 "단순히 위기에 반응하는 것을 넘어서 위기를 예방하고 감소시키기 위한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며 "인도주의의 미래는 우리 모두의 협력과 지속적인 혁신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4일 국제구조위원회 한국사무소에서 만난 이은영 대표는 “단순히 위기에 반응하는 것을 넘어서 위기를 예방하고 감소시키기 위한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며 “인도주의의 미래는 우리 모두의 협력과 지속적인 혁신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최근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인도적 위기가 악화할 위험이 가장 높은 국가는 수단이다. 지난해 4월에 발생한 대규모 무력 분쟁으로 국가 붕괴 위기라는 분석이다. 이어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OPT), 남수단, 부르키나파소 등이 뒤따랐다.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IRC 사무실에서 만난 이은영(47) 대표는 “내부 문서로 시작한 보고서인데 예측률이 높아지면서 여러 기관에서 긴급 대응을 위한 노력을 어디에 집중돼야 하는지 판단하는 자료로 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작년 보고서에서 10위권 밖에 있던 수단이 올해 1위에 오른 것처럼 위기국가 순위는 매년 큰 변동을 보이는데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다”라고 했다.

-90년 역사에 비해 국내에는 잘 알려진 단체는 아니다.

“국제구조위원회는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도움으로 설립된 세계적인 인도주의 기구다. 1930년대 나치 치하에서 핍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아인슈타인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시작됐다. 분쟁과 재난, 기후위기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돕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아시아 첫 오피스가 한국이다.

“한국은 20세기에 일제 식민지와 한국 전쟁 등의 인도적 위기를 경험한 나라다. 또한 인도적 위기에서 생존과 회복, 그리고 재건을 모두 경험했다. 후원국으로서뿐만 아니라 위기국가에 불굴의 의지, 독창성, 희망적 태도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인도주의 분야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뭔가.

“데이터를 보면 가난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전 세계의 극심한 빈곤율은 최근 30년간 64% 정도 줄었다. 이 섹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다. 다만 새로운 위기에 처한 국가들의 극심한 빈곤율은 같은 기간 42%나 증가했다. 전체적으로는 빈곤 문제가 개선되고 있지만, 분쟁이나 기후위기로 빈곤에 빠져드는 일은 증가하는 추세다.”

-새로운 지원 수요에 대응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

“강제 이주민 수를 1억1000만명으로 보고 있다. 이 가운데 3290만명을 대상으로 지원 활동을 했다. 수치로 보면 상당한 수인데 증가하는 속도에 맞추려면 더 효과적이고 임팩트가 있는 솔루션 개발이 필요하다. IRC의 연구·혁신(Research&Innovation) 조직인 ‘에어벨임팩트랩(Airbel Impact Lab)’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은영 국제구조위원회 한국사무소 대표는 한국컴패션에서 14년 근무한 NGO 전문가다. 2022년초 국제구조위원회에 합류해 한국사무소 설치를 위한 준비 과정부터 힘을 보탰다.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이은영 국제구조위원회 한국사무소 대표는 한국컴패션에서 14년 근무한 NGO 전문가다. 2022년초 국제구조위원회에 합류해 한국사무소 설치를 위한 준비 과정부터 힘을 보탰다.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연구소에서는 어떤 걸 개발하나.

“목표는 솔루션 도출이다. 한 예로 영양실조 문제를 들면, 연간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이 4500만~5000만명 된다. 국제사회가 손 놓고 있는 문제도 아닌데 그중 200만명은 사망한다. 영양실조를 진단하고 적당량의 영양식을 보급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 못하고 있는 거다. 에어벨임팩트랩에서 2015년부터 4년간 연구 결과로 간소화된 치료법을 내놨다. 영양실조 판별 키트는 문맹이어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고, 진단 결과에 따라 필요한 영양식을 보급한다. 정량을 진공 포장해 낭비가 없고, 조리할 필요도 없다. 실온에 보관해도 잘 상하지 않는다. 치료율은 92%, 비용은 20% 줄일 수 있는 솔루션이다.”

-아무리 좋은 솔루션이라도 널리 확산해야 하는데.

“검증된 결과는 국제기구나 글로벌 NGO가 사용할 수 있도록 협조한다. 간소화된 영양실조 치료법의 경우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공식적으로 권고하기 시작했다. 이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에 잘 견디는 고품질의 종자를 보급하고, 이동 의료팀을 통해 의료사각지대를 줄이고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한다. 모바일을 활용해 확장성 높은 어린이 교육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튀르키예 지진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 위기 상황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면 다른 지역은 쉽게 잊힌다. 물론 언론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인도주의 위기 상황을 보도할 수 없지만, NGO는 균형을 잡고 지원해야 한다. 파키스탄과 아프간에 지진이 두 차례나 있었고 거의 보도되지 않았지만, NGO들은 긴급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거다. 넬슨 만델라가 말했듯 “우리 모두를 위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고 행동하는 것”이 인도주의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문일요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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