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목)

[르포] 민주콩고 아이들 “난민촌 바깥 세상 보고 싶어요”

‘자원의 저주’ 민주콩고, 수십년째 내전 중
난민 700만명,우간다·탄자니아 국경으로
냐루구수 난민촌에만 1만3000명 정착

“집에 갑자기 들이닥친 정부 반군의 공격으로 할머니를 잃었습니다. 저 또한 한 팔을 잃고 불구가 됐어요. 국경을 넘는 과정에 군인에게 강간도 당했습니다. 저의 삶은 끔찍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지난 2월17일 탄자니아 카술루 지역의 냐루구수(Nyarugusu) 난민촌을 방문한 기자에게 콩고민주공화국(DRC·이하 민주콩고) 북키부(North Kivu) 지역 출신의 무브와 나미가베 노엘라(18)씨는 말했다. 그는 지난 2021년 12월 27일 크리스마스 시즌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정부 반군의 가택 습격으로 유일한 보호자였던 할머니를 잃었다. 이듬해 8월 정부군과 반군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마을은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노엘라씨는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월 17일(현지 시각) 탄자니아 카술루 지역의 냐루구수 난민촌에서 난민들이 생필품을 배급받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탄자니아=김소희 해외통신원
지난 2월 17일(현지 시각) 탄자니아 카술루 지역의 냐루구수 난민촌에서 난민들이 생필품을 배급받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탄자니아=김소희 해외통신원

피난길은 험난했고 고단했다. 길가에서 오토바이를 얻어타고 하루를 꼬박 걸려 우간다 국경에 도착했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군인들이었다. 군인들은 여성인 노엘라씨에게 국경을 넘는 조건으로 성관계를 요구했다. 남성 오토바이 운전수는 그 자리에서 사살됐다. 우여곡절 끝에 우간다에 이어 탄자니아 국경을 넘었고 지난해 이곳에서 난민으로 인정 받았다. 

노엘라씨는 “고향 사람들이 나를 계속해서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최대한 먼 곳으로 도망쳐오고 싶었다”면서 “난민촌에 가족도 없이 혼자 머무르고 있어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언젠가 고향 사람들이 이곳에 넘어와 해코지할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냐루구수 난민촌, 1996년 설립 이후 매년 난민 유입

더나은미래는 지난 2월 15일(현지 시각) 노엘라씨와 같은 민주콩고 내전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기 위해 세계적 인도주의 기구인 국제구조위원회(IRC)의 도움을 받아 냐루구수 난민촌을 찾았다. 2박3일간 머물며 민주콩고를 떠나온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냐루구수 난민촌은 1996년 설립 이후부터 꾸준히 민주콩고에서 난민이 유입되고 있는 전 세계 4위 규모의 난민촌이다. UNHCR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총 1만3000여명의 난민이 거주하고 있고, 이 중 절반은 민주콩고 출신이다. 규모는 1200만㎡로 축구장 1960개 규모에 달한다. 탄자니아 동쪽 끝에 위치한 도심 다르에스살람에서 4시간을 걸려 1240km 비행 이후 키고마 지역에 내려 차로 4시간 비포장 도로를 내달려야 겨우 도착한다.

탄자니아 카술루 지역에 마련된 냐루구수 난민촌. 수년에 걸쳐 정착한 난민들이 직접 지은 통나무집들이 보인다. /탄자니아=김소희 해외통신원
탄자니아 카술루 지역에 마련된 냐루구수 난민촌. 수년에 걸쳐 정착한 난민들이 직접 지은 통나무집들이 보인다. /탄자니아=김소희 해외통신원

이곳에는 최근 발생한 난민뿐만 아니라 30년 가까이 장기간 체류한 난민들도 존재한다. 사실상 난민촌은 임시 거주지인 흰색 천막보다, 난민들이 직접 지어올린 통나무집이 대다수 면적을 차지한다. 통나무집을 지을 만큼의 세월이 지나도 민주콩고의 정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장기체류자 대부분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이어진 ‘제2차 콩고전쟁’의 피해자다. 8개국이 연합군을 구성해 참전한 전쟁으로 ‘아프리카판 세계대전’이라고도 불린다. IRC에 따르면, 종전 이후 여파까지 고려해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추산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준인 540만명이 사망했다. 당시 삶의 터전을 떠나 난민촌에 온 사람들은 지금까지 배급받은 음식과 생필품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정부에서 난민의 본국 송환을 독려하기 때문에 이들의 공식적인 경제 활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건강상 문제로 병원에 들르는 것을 제외하면 난민촌밖으로 이동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

20년 넘게 냐루구수 난민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신주와 알론다(69)씨. 그는 2001년 마이마이 반군의 습격을 받아 이곳으로 도망쳤다. /탄자니아=김소희 해외통신원
20년 넘게 냐루구수 난민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신주와 알론다(69)씨. 그는 2001년 마이마이 반군의 습격을 받아 이곳으로 도망쳤다. /탄자니아=김소희 해외통신원

2001년에 난민촌으로 넘어와 아내와 함께 11명의 아이를 기르고 있는 아신주와 알론다(69)씨는 “나는 일평생 농부로 지냈는데 전쟁 이후 땅과 집을 모두 잃어서 돌아가도 일굴 터전이 없다”면서 “난민촌에선 아무것도 소유할 수가 없어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이 없고, 그렇다고 나가서 새로운 시작을 하자니 두려움부터 앞선다”고 말했다.

무장 반군의 습격에 부모와 오빠를 모두 잃고 1999년 이곳으로 피난 온 조세핀 에노시(49)씨도 난민촌에 계속 머물지도, 고국에 돌아가지도, 제3국에 정착하지도 못하는 처지다. 에노시씨는 “피난길에서 무장 단체들이 임산부까지 죽이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면서 “세월이 흘렀지만 가족이 모두 사살되는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고, 이로 인해 고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미래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현실적으로 계획을 세울 수가 없고 이곳에 계속 머물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면서 “안전한 곳이라면 어디든 재정착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냐루구수 난민촌에서 만난 조세핀 에노시(49)씨는 "무장 반군의 습격을 받아 가족을 모두 잃었다"고 말했다. /탄자니아=김소희 해외통신원
냐루구수 난민촌에서 만난 조세핀 에노시(49)씨는 “무장 반군의 습격을 받아 가족을 모두 잃었다”고 말했다. /탄자니아=김소희 해외통신원

지난 세월 동안 난민촌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급격히 늘어났다. 레오 은티네 부크웨(17)는 “부모님과 오빠, 두 언니가 1996년 마을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를 피해 이곳으로 왔다고 들었다”면서 “나는 난민촌에서 태어났지만 바깥 세상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끝나지 않는 내전, 실향민 700만명 육박

민주콩고는 수십년째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다. 1960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이후부터 내전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활동 무장 단체는 100여 개에 달한다. 영토가 넓고, 중앙정치가 불안정하며, 부족간 갈등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다이아몬드, 원유, 코발트, 금과 같은 수출 자원 매장량이 많은 것도 내전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인근 국가에서 자원을 탐내 정부 반군을 동원하는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자원의 저주’를 받은 국가라는 평도 나온다.

지난해 말부턴 민주콩고 북키부 지역에선 정부 반군 M23과 정부군간의 유혈사태가 격화되고 있다. 이번 내전은 2013년 소탕된 줄만 알았던 M23 반군이 10년 만인 2021년 11월부터 민주콩고의 동북부 지역에서 활동을 재개하면서 시작됐다. M23 반군은 민주콩고 정부군에서 파생된 투치족 중심의 활동 단체로, 인접 국가인 르완다 정부가 자원을 노리고 이들을 지원한다는 혐의를 받는다. 르완다 정부는 대외적으로 이를 부인하고 있다.

이외에 코데코와 ADF 등의 반군들도 같은 시기 교전을 벌이고 있다. 증언에 따르면 민주콩고 곳곳에서 발생하는 교전들은 민간인 학살과 강간을 대규모 양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북키부 지역의 키시셰 마을에서 300명 가량의 대규모 학살이 발생했고, 이달 3월에도 수십명 단위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 보고됐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북키부 지역에서 지난 2월에만 30만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고 추산하고 있다. 현재까지 민주콩고 내부 전체 실향민은 580만명에 달하고, 해외 피난민은 100만명을 육박하고 있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인근 우간다에 급조성된 난민촌으로 넘어가지만, 일부는 보다 나은 환경을 위해 남쪽에 위치한 탄자니아로 찾아온다.

최근 난민촌에 도착한 북키부 출신 카쿨레 키고마(51)씨는 “최근 M23 사태로 북키부 지역에서 탄자니아로 넘어온 사람들은 우리끼리 아는 인원만 100명 가까이 된다”면서 “우리는 현재 가진 것이 없어 생활이 매우 어렵고 나의 10명의 아이들을 교육시키지 못하고 있어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IRC “민주콩고, 세계 긴급위기국가 4위”

IRC는 이곳에서 의료, 안전, 교육, 경제적 안정, 권리 증진 등 5개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 활동으로는 난민들의 향후 거취를 위한 자립을 돕고 있다. 탄자니아 정부가 허가한 선에서 난민들의 생활력과 기술력을 길러주는 소규모 생산·거래 활동을 지원한다. 난민촌 내부에서 배급되지 않는 가방이나 이불 등과 같은 생필품들을 유통하는 효과도 있다.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환경도 구축한 상황이다. 현재 난민촌에는 IRC가 지원하는 13개의 초등학교와 4개의 중고등학교가 있다. 고향에서 교사로 근무했던 난민들은 학교 운영을 위한 자원봉사를 제공한다. 

1997년 난민촌에 도착한 네스토리 음야(64)씨도 이곳에서 초등학교 교장을 맡고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는 고향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마을 단위 사회단체장 직위를 맡았는데, 갈등 관계의 두 부족 모두를 도왔다가 한 부족의 원한을 사서 아버지를 잃었다. 이후 난민촌에 와선 전직 교사들과 의기투합해 벽돌로 학교를 직접 지어 운영했고, 이후 2000년대부터 IRC의 지원을 받아 다른 학교 설립과 운영도 돕기 시작했다. 

지난 2월 17일(현지 시각) 탄자니아 냐루구수 난민캠프에서 만난 네스토리 음야(64)씨. 그가 1990년대에 직접 벽돌을 쌓아올려 지은 초등학교의 칠판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 /탄자니아=김소희 해외통신원
지난 2월 17일(현지 시각) 탄자니아 냐루구수 난민캠프에서 만난 네스토리 음야(64)씨. 그가 1990년대에 직접 벽돌을 쌓아올려 지은 초등학교의 칠판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 /탄자니아=김소희 해외통신원

음야씨는 “IRC가 교수법이나 학생 평가법과 같은 지식과 노하우를 우리에게 전수해주고 있다”면서 “마을 공동체의 더 많은 난민촌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지 않고 교육을 받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은 해외 대학교로 진학할 기회도 받는다. IRC는 독일 정부와 캐나다 정부와 각각 협력해 250명 가까운 학생을 각국 유학생으로 보냈다. 아립 키리아마 IRC 탄자니아 사무소  교육 프로그램 부대표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학생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아 자립할 능력을 키우도록 고등교육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캐나다 프로그램의 경우 학교를 졸업하고 시민권을 취득할 기회도 제공된다”고 말했다. 

탄자니아 냐루구수 난민촌에서 지난 2월 16일(현지 시각) 봉제 기술 교육을 받은 난민들이 시장에 판매할 이불을 만들고 있다. /탄자니아=김소희 해외통신원
탄자니아 냐루구수 난민촌에서 지난 2월 16일(현지 시각) 봉제 기술 교육을 받은 난민들이 시장에 판매할 이불을 만들고 있다. /탄자니아=김소희 해외통신원

이은영 IRC 한국 대표는 “IRC는 민주콩고에서도 직접 활동하며 동부 및 중부에 거주하는 수십만명에게 응급 의료, 위생 및 비상용품 제공 등의 긴급지원을 비롯 성폭행 생존자에게 상담, 의료 및 법적지원 등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민주콩고 사람들이 삶을 회복하고 재건할 수 있도록 끝까지 그들을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콩고는 IRC가 지정한 긴급위기국가목록에서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10위라는 점을 고려하면 심각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자가 기사를 쓰는 시점에도 난민촌에서 만난 카쿨레씨는 민간인 학살 현장이 담긴 영상을 메신저로 보내왔다. 민주콩고의 비극은 지금 이 순간도 ‘진행형’이다.

탄자니아=김소희 해외통신원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