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4일(화)

“마을 사람들 행복 위해 ‘문화 사랑방’ 계속 운영할 겁니다”

전북 김제 삼화서점 정봉남 대표 인터뷰
무료 독서실 열어 학생 후원활동 하고 ‘책 보내기 운동’해 김제 시민과 소통
“인터넷 서점으로 동네 서점 어렵지만 지역 주민과 함께 명소로 거듭날 것”

기울어가는 지역 서점을 ‘문화 사랑방’으로 만든 이가 있다. 전북 김제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삼화서점’에서 4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주인장 정봉남(67)씨다. 그는 서점 안에 원목 탁자를 놓고 누구든 앉아서 책을 보고 쉬어갈 수 있는 북카페를 만들었다. “서점은 꼭 책을 사기 위해 오는 곳이라기보다 마을 주민들과 수다 떨고, 같이 책을 보면서 친해질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정씨의 생각이다.

지난 1월엔 문화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으로부터 800만원을 지원받아 저자 초청 강연회, 동화 인형극을 진행했다. 이를 위해 서점 내 책장을 모두 이동식으로 바꿔, 언제든지 문화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공간을 재활용했다. 지난 5월엔 주민들과 함께 채만식 작가의 장편소설 ‘탁류’의 내용을 짚어가는 근대역사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서점에서 직접 문학 기행을 기획하고 진행한다는 점이 신선하다” “앞으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김제시에서 가장 오래된 삼화서점 정봉남 대표는 40년간 지역 주민들을 위한 나눔과 독서문화 운동을 전개해왔다.
김제시에서 가장 오래된 삼화서점 정봉남<사진> 대표는 40년간 지역 주민들을 위한 나눔과 독서문화 운동을 전개해왔다.

사실 김제 지역 또한 7개 서점 중 5곳이 문을 닫을 정도로 사정이 어렵다. 하지만 정씨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지역 서점의 의미 자체를 바꿔가고 있는 건, 그동안 끊임없이 나누는 삶을 살아온 덕분이다. 스물여덟에 서점 주인이 된 1970년대 초, 정씨는 김제시 청년 20명과 함께 지역봉사단체 ‘청진회’를 만들었다. 화원(花園) 주인, 의사, 가축업, 서점 주인 등 모두 김제에서 태어나 자란 20~30대 청년들이었다. 자신이 회장이던 1984년 정씨는 김제시에 처음으로 무료 독서실을 만들었다. 정씨는 “당시 김제엔 전깃불도 없는 집이 많아서, 학생들이 공부할 여건이 아니었다”면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독서실 장소 마련부터 시설·장비까지 회비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에 그는 김제 출신 작가 벽천 나상목(1924~1999), 강암 송성용(1913~1999) 선생을 직접 찾아가 작품 20여점을 기증받고, 5일 동안 기금 마련 전시회를 열었다. 지역 방송국과 협력해 홍보를 하고 각 기관장, 독지가들을 불러모았다. 한 작품당 최대 1000만원까지 팔릴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수익금으로 건물 2층에 무료 독서실을 마련하고, 책상·칸막이도 들여놓았다. 늦은 밤까지 밝혀놓은 독서실 불빛 아래엔 매일같이 학생들이 몰려와 책을 폈다. 정씨는 “그 당시 독서실에 와서 공부하던 이들 중에서 법관, 기관장 등 훌륭한 인재가 많이 나왔다”면서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1987년엔 김제시 경찰서 유치장에 100여권의 도서와 책장을 기부, ‘교화문고’를 설치했다. 당시만 해도 유치장에 한번 들어가면 꽤 오랜 시간 대기해야 했기 때문에, 그동안 책을 볼 수 있다면 도움이 되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유치장 내의 달라진 분위기를 본 김제경찰서장이 정씨에게 감사장을 전해왔다.

미상_사진_나눔활동_삼화서점_2014

11년 동안 김제시 새마을문고지부장을 맡아 책 읽는 문화를 만든 것도 그가 이끌었다. 김제시내 마을끼리 서로 책을 주고받는 ‘책 보내기 운동’을 시작하고, 주민들과 추천 도서를 선정해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앞에서 무료로 책을 나눠주기도 했다. 물론 삼화서점의 책이 대량 제공됐다. “사람들에게 책을 나눠주면서 ‘책을 읽은 뒤엔 다른 사람들이 또 읽을 수 있도록, 서울역 안이든 다방이든 놓아주시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책은 여행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한곳에만 두면 그 가치가 감소돼버려요. 11년간 독서 운동을 하면서 김제시에 작은 도서관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정씨의 묵묵한 나눔을 지켜본 김제시 시민들은 1988년 그에게 공로상인 ‘김제 시민의 장(章)’을 수여했다.

40년간 주민들과 소통하며 명맥을 유지해온 삼화서점 역시 사정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정씨는 “30~4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학교 수가 절반, 학생 수는 십분의 일로 줄었고, 매출도 그에 비례하게 감소했다”면서 “인터넷 서점이 발달하면서 동네 서점이 설 곳이 없어졌다”는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김제시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지난 40년간 책과 삶을 나눈 정봉남씨. 그의 바람은 딱 한 가지다. 마을 사람들이 책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이다.

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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