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4일(화)

[미래 Talk !]비현실적 시설 규정에 아이들은 보금자리 잃을 판

“답답합니다…”

손정수(가명·52·서울시 구로구)씨가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아들 진우(가명·8) 때문입니다. 손씨는 5년 전 공사현장 사고로 온종일 누워 지냅니다. 아내는 일터에서 밤늦게나 돌아옵니다. 다행히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집 근처 구로파랑새지역아동센터(이하 파랑새지역아동센터)가 작년부터 진우를 돌봤습니다. 손씨는 “센터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저녁까지 먹인 후 보내주니 마음이 놓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우의 보금자리가 위태로워졌습니다. 파랑새지역아동센터가 6월 30일까지 이전을 해야 하는데, 옮겨갈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파랑새지역아동센터는 지난 3년간 지역의 교회 공간을 무상으로 사용해 왔지만, 이젠 자리를 비워줘야 합니다. 성태숙 원장은 올해 초부터 마땅한 장소를 물색해 왔습니다. 서울시를 통해 전세자금 8000만원을 지원받으면서 이주 비용도 마련됐습니다. 발목을 잡은 것은 보건복지부의 시설 기준이었습니다.

2012년 8월 개정된 ‘지역아동센터 시설기준’에 따르면, ▲지역아동센터 반경 50m 주위에 ‘청소년보호법 제2조 제5호’에 따른 청소년유해업소가 없는 곳 ▲전용면적 82.5㎡(25평) 이상, 아동 1명당 전용 면적 3.3㎡(1평) 이상 등을 충족해야 합니다. 박영숙 지역아동센터 중앙지원단장은 “좁은 곳에 많은 아이가 몰리는 등의 문제가 있었고, 전문가들도 지속적으로 명확한 시설 기준을 강조해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개정 이후 신설 및 이전하는 지역아동센터들은 이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매년 300개 가까이 늘던 지역아동센터는 이 규정이 생긴 이후 (4000개에서) 더 이상 늘지 않았습니다.

성 원장은 “상가 지역에선 50m 안에 유해업소 없는 곳이 없더라”고 했습니다. 청소년보호법에서 말하는 유해업소는 PC방, 비디오방, 노래방, 호프집 등입니다. 구로구의 특성상 큰 주택이 많지 않아 주택가도 사정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이에 성 원장은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 시설 기준의 재량을 인정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복지부 지침을 따르는 서울시·지자체의 입장에선 손 쓸 도리가 없습니다. 윤석환 서울시 아동권리팀장은 “최대한 협조하려 하지만 복지부 지침에 대해 융통성을 발휘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구로구청의 한 관계자는 “한번 예외 규정을 두기 시작하면 다른 곳도 문제가 될 것”이라며 “기존의 시설 주변만 고려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현장에선 “지역아동센터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의심스럽다”는 반응입니다. 성 원장은 “당장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버리고, 새로운 곳에서 아이들을 모으라는 식은 센터 운영을 돈벌이로밖에 여기지 않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성 원장은 현재 장소를 찾는 동시에, 만약을 대비해 아이들을 맡아줄 곳도 물색 중입니다. 센터 인근 초등학교를 찾아 ‘방과 후 돌봄’ 자리를 부탁하기도 했지만, “자리가 없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3년째 이 센터에 다니는 김현수(가명·12)군은 “선생님들은 물론, 봉사활동 오는 형·누나들과도 친해져서 계속 여기 있고 싶다”고 합니다. 성 원장은 “아이들이 ‘떠나지 말라’며 불안해 할 때 가장 속상하다”며 “취지는 공감하지만 이렇게 지원 없이 규제만 내세우면 당장 아이들은 갈 곳을 잃는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을 위한 합리적인 해결책은 없을까요. 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기간이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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