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5일(금)

아프리카 분쟁지역 광물 쓰지 말자 미국發 규제, 한 달 앞으로 내 기업도 대책 분주

포스코·한전 등 8개 기업 사용여부 보고 위반 땐 상장 폐지
삼성전자·LG전자도 해외서 사용 규제 요청 거세 대비 중

미국발(發) 분쟁광물 규제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2012년 8월 미국증권거래위원회(이하 SEC)가 ‘미국의 모든 상장사는 분쟁광물 사용 여부를 보고해야 한다’는 세부 시행령을 공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SEC에 상장된 한국기업들도 오는 5월 31일까지 의무적으로 ‘분쟁광물 사용 여부’를 보고해야 한다. 대상은 LG디스플레이, 포스코, 한국전력, SK텔레콤, KT, KB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등 총 8개사다. 대기업은 2년, 중소기업은 4년의 유예기간을 거치며 이를 위반하면 상장폐지까지 가능하다. 한편 미국 상장사는 아니지만, 삼성전자·LG전자와 같은 제조업 기반의 대미수출업체들도 해외 클라이언트의 요청이 강해지면서 분쟁광물에 대한 대비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1 탄자니아의 두 노동자가 폐기물 암석으로부터 금을 채굴하는 모습 2 잠비아에 위치한 한 광산의 모습 3 DR콩고의 광부들이 탄탈륨, 콜탄 등 광물을 채굴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
1 탄자니아의 두 노동자가 폐기물 암석으로부터 금을 채굴하는 모습 2 잠비아에 위치한 한 광산의 모습 3 DR콩고의 광부들이 탄탈륨, 콜탄 등 광물을 채굴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

◇분쟁 국가 불법 채취 광물 사용 금지

이번 시행령에 따르면, DR콩고·수단·르완다 등 아프리카 10개 분쟁 국가에서 불법적으로 생산되는 주석·탄탈룸·텅스텐·금 등 4개 광물 사용이 규제된다. 이 중 탄탈룸은 휴대폰, PC 등 전자기기의 축전지에 사용되는 광물로, 아프리카 10개 국가의 매장량이 20%에 달한다. 이 같은 움직임은 콩고민주공화국 등 아프리카 분쟁지역의 무장단체나 군벌이 전자부품 공급업체들이 분쟁광물을 팔아 돈을 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미 해외에선 이 같은 규제 움직임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 ‘CES 2014’에서 브라이언 크라자니크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노동 착취나 유혈 분쟁에 연루된 소재는 쓰지 않겠다”고 공언한 데 이어, 지난 2월에는 애플이 ‘공급자 책임 보고서’에 아이폰·아이패드 등 제품에 쓰이는 주요 광물을 채굴한 광산과 제련소 명단을 공개하며 “앞으로 분쟁광물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네덜란드의 사회적기업 ‘페어폰(fairphone)’이 공정무역 운동의 일환으로 자신이 구매한 스마트폰의 제조과정은 물론 부품에 사용된 광물의 생산지까지 확인할 수 있는 공정폰을 개발했다. 이 폰은 지난해 초기 물량 2만5000대가 매진됐고, 올해에 2차 구매가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해 11월, KPMG 인터내셔널이 18~30세 미국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67%가 넘는 소비자가 기업의 CSR 이슈가 구매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한국무역협회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_그래픽_CSR_미국규제4대분쟁광물_2014

◇D-50 미국발 분쟁광물 규제, 일찌감치 예고됐다

삼성전자·LG전자가 분쟁광물 이슈를 처음 접한 것은 해외 NGO를 통해서였다. 삼성전자는 NGO로부터 분쟁광물 대응에 대한 요청을 받다가, 2008년 글로벌 전자기업의 사회적 책임연대인 ‘전자산업시민연대(이하 EICC)’에 가입하면서 제련소 현황을 조사하는 등 문제해결에 나섰다. 2009년 1월 전담조직을 만들었고, 상생협력센터가 분쟁광물 이슈에 대응하고 있다. 2009년 2월, LG전자는 전자산업과 관련된 노동권·환경 이슈를 다루는 유럽 NGO인 ‘메이크아이티페어(makeITfair)’로부터 분쟁광물 관련 질의서를 받았다. 초창기 대응은 CSR팀이 맡았지만, 미국에서 법규를 만드는 등 국제적인 이슈로 확대되자 법무·정보전략·미국법인·CSR팀 등 전사적인 태스크포스(이하 TF)를 꾸렸다. 이후 휴대폰·가전 등 사업부 중심으로 교육을 진행했고, 지금은 제품시험연구소 규제환경팀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의 대응은 규제법안과 맞물려 진행됐다. LG디스플레이는 2011년 10월 미국 주요 고객사로부터 분쟁광물 사용보고 질의서 요청을 받았고, 이듬해 SEC 시행령 발표 후 구매·회계·법무팀을 중심으로 TF팀을 조직하는 등 구체적인 대응을 준비했다. 포스코는 지난해부터 무역통상그룹·원료구매실·법무실·IR실·환경에너지 산하 사회공헌그룹의 팀리더와 실무자가 참여해 대응조직을 꾸렸고, 한국전력도 같은 해 국제금융부서에서 협력사에 대한 조사 및 법률검토를 진행했다.

기업들은 1차 협력사부터 많게는 10차까지 복잡한 공급망이 얽혀있어, 분쟁광물 관련 거래제련소 현황 파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어려움으로 지적했다. LG전자의 경우 217개 제련소 중 41곳이 EICC에서 인증한 ‘분쟁광물프리선언소’이며, 중국·러시아·독일 등지에 분쟁광물 관련 제련소가 있다고 밝혔다. 올해부터 삼성전자는 신규협력사 승인 과정에 분쟁광물 관련 조항도 포함시켜, ‘분쟁광물프리선언소’로 인증받은 제련소와의 거래를 권고하고 있다. LG전자는 협력사가 납품하는 과정에서, 분쟁광물 사용 여부를 등록할 수 있는 별도시스템을 마련해 공급망을 관리하고 있다. 포스코는 원료구매시점부터 분쟁광물 불사용 원칙을 명시해 원천적으로 분쟁 지역에서 채굴된 광물을 차단하고 있다.

◇대기업·정부 반응 엇갈리는 협력업체 이슈

분쟁광물 규제에서 핵심은 ‘협력업체’다. 대기업은 광물을 직접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가공 형태로 들여오는 것이 대부분이고, 협력업체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견·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규제대응에 대해 추가 역량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달갑지는 않은 상황이다. 김정식 삼정KPMG 이사는 “2,3,4차 협력사로 내려갈수록 분쟁광물 규제에 대해 이해도가 확연히 떨어진다”면서 “아래 단계 공급망에서부터 분쟁광물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추적시스템을 마련해야 제출하는 보고서의 신뢰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들은 “정부 차원에서 중소기업을 위한 분쟁광물 규제 대응 공통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우선은 협력사들 대상 분쟁광물 규제에 대한 홍보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2012년부터 분쟁광물프리협의회를 구성해 3차례 회의를 열어 대응방안을 공유했고, 앞으로는 관련 협회를 대상으로 세미나·포럼 등을 확대할 계획”이라면서 “정부 차원의 공급망 관리 시스템 구축에 대한 요구도 받고 있지만, 대기업 차원에서 협력사 구매정책에 분쟁광물 이슈를 반영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컨트롤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한편 EU의 분쟁광물 규제는 현재 입법 준비 중으로, 미국처럼 완제품을 납품하는 기업이 아닌 4대 광물을 수입하고 있는 수입업자·제련소·정제소를 대상으로 한다. 해당 업체는 EU 바이어로부터 원산지 증명서 제출 요구는 물론, 경우에 따라 실사 요청을 받을 수도 있고 증빙이 미비할 시 거래가 중단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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