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상담원 1인이 79건 맡아… 기관·전문인력 확충 시급

‘아동보호’ 10년 성과와 과제

지난 13일 경기도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은 도움을 청하려고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아동 방임 사례로 관리 중이던 어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전학 관련 정보가 필요했다. 그러나 교감은 “아이들 보호자인 어머니께 동의를 얻은 후에야 협조할 수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학대 행위자보다 보호자라는 지위가 우선이었다. 김경희(33) 상담팀장은 “물론 모든 학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경우가 정말 많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미상_사진_아동_아동보호1_2010“선생님들은 법에서 신고 의무자로 규정되어 있지만 신고를 안 한다고 처벌을 받거나 신고와 관련된 교육을 받는 것도 아니어서, 자신이 신고 의무자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아직도 많아요.” 협력체계의 부재(不在)를 절감하는 순간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아동학대 관련 보호는 온전히 민간에 맡겨져 있다. 민간 기관이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위탁운영하며 신고접수부터 사후관리까지 전 과정을 담당한다. 가장 많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위탁운영하는 곳은 1996년부터 아동학대 예방사업을 적극적으로 해 온 ‘굿네이버스’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을 포함해 21개소를 위탁운영하고 있다. 전 과정을 민간에서 맡아 하니, 적극적으로 사례에 개입하기도, 충분한 예산으로 사업을 운영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정부, 사법기관, 민간 등이 긴밀하게 연계되는 아동보호체계 구축을 강조한다. 중앙대학교 김상용(42) 교수는 “현재로서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이 아무런 권한도 없고 협조도 못 받아 학대 사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힘들다”며 “정부·경찰·가정법원 등 공적 기관과의 협력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미상_사진_아동_아동보호2_2010대부분의 선진국은 정부·사법기관·민간 등 다양한 주체가 연계되어 아동보호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미국은 학대 사례의 신고접수 및 현장조사는 주 정부의 공공기관에서, 상담 및 치료 등의 서비스는 전문민간기관 및 이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지역협의체에서 담당한다. 시설·가정위탁 등 아동에 대한 보호조치의 결정, 보호기간 중 모니터링 및 원(原) 가정 복귀에 대한 결정 등은 법원이 담당한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장화정(46) 관장 역시 “정부와 민간이 긴밀하게 연계되는 보호체계 마련이 가장 중요한데, 아직 이 부분에 대한 합의가 정부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또 하나 주요한 과제가 바로 인프라 확충이다. 현재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을 제외한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은 44개소다. 2000년 당시 17개소에 불과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그러나 아직 만족하기는 이르다.

지난 4월 전라도의 한 산골 소년에 대한 방임 사례가 신고 접수됐다. 관할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아이의 집까지는 차로 꼬박 2시간. 오가는 데만 4시간이 걸리니, 현장조사를 시작으로 정기적으로 아동을 만나고 상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버리고 떠난 엄마와 줄곧 방치해둔 할머니에 대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지속적인 심리 검사와 치료가 필요했다. 그러나 아이에게 왕복 4시간의 거리는 무리였다.

어느 한 지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인구 24만명당 1개소가 설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시·군에 해당하는 카운티마다 아동보호서비스기관이 있는 미국과 크게 대조된다. 당연히 1개 기관이 맡는 권역이 넓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순천에 있는 전남아동보호전문기관은 구례군에서 완도군에 이르기까지 4개 시와 11개 군을 관할하고 있다. 전남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완도군까지는 자동차로 3시간이 넘게 걸린다. 당연히 신속한 현장조사도,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상담, 치료 등의 서비스 제공과 모니터링에도 어려움이 많다.

2009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_그래픽_아동_아동학대_2010기관뿐 아니라 전문인력 확충도 시급한 문제다. 2009년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1인이 관리하고 있는 평균 아동학대사례 수는 79.8건이다. 이전에 개입하여 관리하고 있는 사례에 매년 새로이 발생하는 사례가 더해지니 상담원 1인당 관리하는 사례 수는 계속 증가한다. 사례마다 상담·치료·교육 등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을 고려하면 상담원의 역량개발 및 질 높은 사례 개입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미국은 상담원 1인이 전담하는 사례를 연간 12건 이하로 제한한다.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서비스 강화도 주요 과제다. 작년 한 해, 학대 신고 사례에 대한 대응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 피해아동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학대 행위자에게 제공된 교육이나 상담 등은 피해아동 대상 서비스의 17.3%, 비(非)가해 부모 및 가족에게 제공된 교육 등은 피해아동 대상 서비스의 13%에 불과했다. 학대 행위자에 대한 교육이나 상담 서비스 강제 권한이 없는 것, 지역 내 자원연계 및 협력체계 등이 부족한 것이 큰 이유다. 아이가 받은 몸과 마음의 상처에 대한 치료만 이루어질 뿐,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힘들다 보니 재학대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2009년에만 총 581건의 재학대가 발견됐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김병익(34) 교육홍보팀장은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와 가족, 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지원 서비스가 있어야 학대가 근절될 수 있다”며 “학대 행위자에게 교육·상담 등의 서비스를 강제하는 법적 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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