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목)

우크라에 폭격 시작된 날, NGO는 전선으로 향했다

전장으로 간 NGO

재난을 기다리지 않는다. 발생 가능성을 따져 가며 미리 대응 계획을 수립하고 해제하기를 반복한다. 재난 상황이 일어난 뒤 대응에 나서면 한발 늦기 때문이다. 또 단독 활동을 자제하고 파트너 기관과 협력한다. 비효율을 줄이려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원칙을 지키는 것은 제1 원칙인 ‘인명 구조(life saving)’ 때문이다.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이러한 재난 대응 시스템은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다. 글로벌 재난 대응에 나서는 이른바 ‘메가(Mega) NGO’가 일하는 방식이다. 유엔 산하 국제기구와 맞먹을 정도로 규모가 큰 조직들이다. 이들은 자연 재난이나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즉시 현장으로 달려간다. 미리 비축된 구호 물자를 준비하고, 물류 기지를 구축하고, 구호 물자를 조달한다.

더나은미래는 지난달 24일(이하 현지 시각)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장으로 달려간 NGO들을 추적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 등을 통해 그들이 일하는 방식을 직접 들었다. 각 단체에서 국제 구호를 담당하는 전문가들은 “현장 분위기가 어수선한데도 질서 있게 구호활동이 이뤄지는 건 사전에 정교하게 구축된 시스템과 발 빠른 NGO들 덕분”이라고 했다.

루마니아월드비전 직원들이 러시아 공습을 피해 본국을 탈출한 우크라이나 아동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루마니아월드비전 직원들이 러시아 공습을 피해 본국을 탈출한 우크라이나 아동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골든타임 ‘72시간’

긴급구호에는 정답이 없다. 상황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처럼 국가 간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 당사국 내 이재민만큼이나 국경을 넘는 난민이 발생하게 된다. 8일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UNHCR) 대표는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한 난민이 200만명을 넘어섰다”면서 “유럽에서 이처럼 빠른 속도로 난민 수가 증가하는 건 2차 대전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발한 24일, 전 세계 주요 NGO는 긴급구호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두 나라 간 교전이 일어나면서 국경은 안전 문제로 일시 봉쇄됐다. 이 때문에 NGO들은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 루마니아, 몰도바 등 접경 지대로 파견됐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재난 대응 골든타임을 72시간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공습 이튿날 재난 대응 단계 중 둘째로 높은 ‘카테고리2(CAT2)’를 선포하고,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로 직원들을 파견했다.

이재광 세이브더칠드런 인도적지원팀장은 “10일 기준으로 폴란드에 약 14명, 루마니아에 29명의 직원을 보냈고 현지 자원봉사자는 40여 명 수준”이라며 “우크라이나 내에도 직원 2명이 있는데,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현지 상황을 외부로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호 작전 시작과 동시에 세이브더칠드런은 1900만 달러(약 230억원) 규모의 긴급구호를 결정했다. 세계 각 사무소에서 모금 업무도 개시했다. 구호금은 현장으로 직접 송금하지 않는다. 전황이 악화해 은행 업무가 마비되거나 위험이 돌발하는 상황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런던 사무소로 송금한 뒤 구호활동 진행 속도에 맞춰 나눠 보낸다.

재난 발생 사흘째인 27일에는 피란민 물자 수요를 조사했다. 본격 구호활동에 나서기 전 현장에 있는 유엔 기구와 여러 NGO 간의 업무 조정 회의도 진행됐다. 이재광 팀장은 “제한된 자원을 중복으로 지원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각 단체가 주도적으로 맡을 일을 조정하는 작업을 거친다”면서 “지원 물품 종류나 배분 지역을 단체별로 미리 조율하지 않으면 신속한 지원이 이뤄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난민은 대부분 여성과 아동이다. 유엔에 따르면, 난민 200만명 가운데 절반이 아동으로 추정된다. NGO들은 아동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28일 폴란드 국경 검문소 인근에 별도의 아동친화공간을 마련했고, 지난 1일에는 루마니아 국경 지대에도 추가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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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해야 대응할 수 있다”

수백만 난민이 국경을 넘는 와중에도 신속한 구호활동이 이뤄질 수 있었던 건 미리 마련된 시스템 덕분이다. 재난 상황은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총괄한다. OCHA 주관하에 열리는 업무 조정 회의에서는 지원 분야를 총 11개로 나누고, 조정 기구의 지휘에 따라 NGO별 업무를 정한다. 구체적으로는 ▲긴급구호캠프 총괄(국제이주기구·유엔난민기구) ▲교육(유니세프·세이브더칠드런) ▲식량(유엔세계식량계획·유엔식량농업기구) ▲주거(국제적십자연맹·유엔난민기구) ▲물류(유엔세계식량계획) ▲보호(유엔난민기구) ▲식수·위생(유니세프) ▲조기복구(유엔개발계획) ▲긴급통신(유엔세계식량계획) ▲보건(세계보건기구) ▲영양(유니세프) 등으로 구조화돼 있다.

김동주 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은 “클러스터마다 전문성을 갖춘 국제기구가 이끌고 NGO들이 손발이 돼 함께 움직이는 구조”라며 “이를테면 유엔세계식량계획은 식량 조달과 물류를 지휘하고, 실제 현장 수요에 맞춰 지원 대상자와 우선 순위를 정하는 건 NGO 몫”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엔과 협력을 통해 구호활동을 하는 NGO도 있지만, 독자 지원 체계를 갖춘 메가 NGO는 미리 비축한 물자를 배분하는 식으로 자체 활동을 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루마니아 현지 사무소가 있는 월드비전은 자체 공급망과 자원으로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 역시 전문 훈련을 받은 인력이다. 이경주 KCOC HnD사업부장은 “메가 NGO에는 재난 발생 시 현장으로 바로 투입할 수 있는 베테랑 직원들을 꾸준히 교육하고 인증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면서 “단체마다 용어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재난대응팀(DRT)’이라는 인력이 대기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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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로컬 NGO의 힘

현지 상황을 잘 아는 로컬 NGO는 긴급구호의 완성도를 높이는 마지막 퍼즐이다. 유엔 산하 기구와 메가 NGO가 놓치는 빈 곳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글로벌 NGO들은 세계 각지에 현지 NGO를 발굴해 파트너십을 맺고 협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굿네이버스는 지난 10일부터 우크라이나 내부로 식량 트럭을 들여보내고 있다. 상황 발생 직후 굿네이버스는 제네바 사무소 직원과 한국 사무소 직원을 루마니아 국경 지역의 구호 캠프로 파견했고, 로컬 NGO인 ‘부크레데비아타(Bucre de Viata)’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김선 굿네이버스 국제사업본부장은 “초기에는 국경을 넘어온 난민 지원에 집중했지만, 최근 우크라이나 지방정부 요청으로 식량 지원으로 구호활동을 확장했다”면서 “이를 위해 루마니아에서 인력을 추가 고용했고 지방정부 협력하에 우크라이나 안에 머무는 주민들에게 식량을 배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으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우크라이나 현지 NGO들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현재 공동으로 구호활동을 벌이는 NGO ‘슬라빅하트(Slavic Heart)’ ‘돈바스디벨롭먼트센터(Donbas Development center)’ ‘아발리스트(Avalyst)’와도 이때 인연이 시작됐다. 로컬 NGO들의 주력 분야도 각각 다르다. 슬라빅하트는 아동을 대상으로 심리적·정신적 응급 처치를 제공한다. 트라우마를 겪는 아동들과 하루에 1~2번씩 온라인으로 상담도 진행한다. 돈바스디벨롭먼트센터는 현지에서 수요 조사를 하고 재난민들이 직접 필요한 물자를 구매할 수 있도록 다목적 현금을 지원한다. 아발리스트는 위생용품과 생리대 등이 담긴 존엄성 키트(Dignity kit)를 제공한다.

전문가들은 긴급구호 이후의 재건 사업에서도 로컬 NGO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선 본부장은 “재난 상황이 종료되고 개발 사업으로 전환될 때 현지 인프라와 정치적 지형을 이해하는 NGO와 협업해야 질서 있는 출구 전략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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