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언니가 되어 달라며 손 내민 레베카, 웃는 모습 천사 같죠?”

[초즌: 아이의 선택] 후원 아동 레베카가 선택한 최재희씨 이야기

새로운 습관이 생겼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갈 때면 아주 잠깐, 우편함에 시선이 머뭅니다. 기다리는 편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편함에 봉투 끝이 빠끔히 나와있는 날에는 마치 연애편지라도 받은 듯 가슴이 콩닥거립니다. 편지는 저 멀리 바다 건너에서 옵니다. 발신인은 레베카. 가나에 사는 나의 후원 아동입니다. 우리 인연은 조금 특별하게 시작됐습니다. 제가 레베카를 돕기로 한 게 아니라 레베카가 저를 선택했거든요.

취준생(취업준비생) 시절 다짐을 한 게 하나 있었습니다. 언젠가 내 힘으로 돈을 벌게 되면 월급의 10분의 1은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쓰겠다고요. 회사에 입사해 어느 정도 적응한 뒤 마침내 취준생 시절의 다짐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소셜미디어(SNS)에서 조금은 낯선 아동 후원 캠페인을 발견했습니다. 아동과 맺는 1대1 결연 후원인데, 후원자가 아이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후원자를 선택하는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선택의 기회가 많지 않았을 아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다는 얘기였죠. 이거다, 싶었습니다.

월드비전 제공

이력서를 쓰는 마음으로 ‘후원 지원용’ 사진부터 골랐습니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 수십 장을 훑으며 고민했습니다. 활짝 웃는 표정이 좋을까, 차분해 보이는 옅은 미소가 좋을까. 옷은 아무래도 밝은 색이 낫겠지? 한참을 고심한 끝에 푸른 숲길에서 흰 원피스를 입고 찍은 사진을 골랐습니다. 남은 건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아이가 나를 선택할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나를 지목했을지…. 소개팅이라도 앞둔 것처럼 퍽 긴장이 됐습니다.

“재희 언니 안녕! 미소가 너무 예뻐요. 제게 좋은 언니가 돼줄 것 같아서 선택했어요.” 레베카의 사진과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활짝 웃는 레베카 모습이 천사 같았습니다. 원래 그다지 다정한 성격이 아닌데 레베카를 보니 챙겨주고픈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떨어져 살던 동생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죠. 무엇보다도 레베카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오랜만에 예쁜 편지지를 사서 손 편지를 썼습니다.

“아침부터 잠들기까지 주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 좋아하는 음식은 뭐니? 제일 친한 친구 이름은 뭐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교에 가요! 낮 12시면 학교가 끝나요. 집에 돌아오면 숙제를 하고 친구들이랑 놀죠. 저는 ‘암페(ampe)’라는 뜀뛰기 놀이를 좋아해요.”

“나도 달리기를 좋아해! 내 사진도 한 장 같이 보낼게. 어제 하프마라톤에 처음 도전하고 결승점으로 달려오는 모습이야.”

스마트폰으로는 1초 만에 보낼 메시지인데 편지로 쓰니 오가는 데에만 몇 주가 걸려 답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긴 기다림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설렘이 보상처럼 주어집니다. 일상에서도 문득 레베카가 떠오르고는 합니다. 두 달 뒤면 크리스마스인데 뛰는 걸 좋아하는 레베카에게 신발을 한 켤레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보내는 작은 정성이 앞으로 레베카가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갖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지요?

※후원 아동과 후원자가 주고받은 편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정리=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월드비전의 ‘초즌(Chosen) 캠페인’은?

후원자가 아동을 선택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아동이 후원자의 사진을 보고 후원자를 고르는 해외 아동 후원 캠페인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월드비전 초즌 캠페인’을 입력한 뒤 홈페이지로 들어가 ‘후원하고 아이의 선택 받기’를 누르면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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