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올해 해외로 떠나는 의료 봉사단체 49곳… 정보 공유로 시너지 높인다

해외 의료 봉사민관협의체 SOGA출범 이후 과제는?
해외 떠나는 단체 느는데 정보 공유 이뤄지지 않아
한 지역에 중복 지원해 문제 막으려 ‘SOGA’ 출범
美 약품뱅크 ‘MAP’처럼 공동으로 약품 지원 받고
사후 관리 시스템 마련해 의료 봉사의 효과 높여야

“1994년 르완다 난민 사태 때만 해도 ‘왜 우리가 해외 주민을 치료해야 하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2004년 스리랑카 쓰나미 현장에는 국내 의료봉사단체를 비롯한 대학병원, 기생충박멸협회, 가족협회 등 수많은 기관이 도움을 주기 위해 모였다. 10년 만에 인식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해외 의료봉사를 떠나는 단체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부작용이 발생했다. 한 단체가 응급치료 후 약을 주고 돌아서는데, 뒤따라 다른 단체가 의약품을 나눠주는 등 ‘중복 지원’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글로벌케어 박용준 회장)

필리핀에서 아픈 아동을 치료하고 있는 선한봉사센터 의사들의 모습. /선한봉사센터·서울대학교병원 보건의료사업단 제공
필리핀에서 아픈 아동을 치료하고 있는 선한봉사센터 의사들의 모습. /선한봉사센터·서울대학교병원 보건의료사업단 제공

“같은 지역 주민들을 치료하고 돌아왔는데도, 단체들끼리 서로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정보 공유가 안 되기 때문이다. 여러 단체의 중복 활동은 현지 국가의 의료 전달 체계에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아프리카미래재단 김억 사무총장)

지난 20년간 보건의료 분야의 해외 원조는 급격히 성장했다. 지난해 국제구호개발 시민 단체들의 사업비가 가장 많이 투자된 분야는 보건·의료 사업으로, 전체의 26%인 240억원을 차지했다(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CSO 편람 2012). 교육(21.3%)이나 지역사회개발(15.4%)보다 많았다. 개도국에서 의료봉사를 하거나 보건의료 지원사업을 진행하는 국내 단체들의 수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총 49개 단체가 해외 의료봉사를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캄보디아로 의료봉사를 계획하는 단체가 15곳으로 가장 많았고, 몽골(11곳), 필리핀(10곳), 베트남(9곳), 라오스(8곳), 에티오피아(5곳)가 뒤를 이었다. 올해 총 38개 국가에서 의료봉사가 진행되는데, 대륙별로는 아시아(83곳·중복 단체 포함)가 가장 많았다.

◇민관협의체로 글로벌 의료 봉사 업그레이드 한다

하지만 최근 국내 단체들의 해외 의료봉사활동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각자 흩어져 주민들을 치료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등 네트워크 구축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11일, ‘글로벌 의료봉사 민관협의체(Shared One Global Alliance(이하 SOGA)’가 출범했다. 기존의 비영리 민간단체뿐만 아니라 국내 병원 17곳, 종교기관 14곳이 포함됐다. 복지부 산하 보건의료지원 전문기관인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도 SOGA 발족에 함께했다. 총 80개 기관이 가입한 대규모 ‘민관’ 협의체가 결성된 것이다. 정경희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대외협력부장은 “항공권, 의약품, 교육 자료 등을 공동 구매하고, 복지부 차원의 다양한 협력 방안도 모색 중”이라면서 “단체들의 의료봉사 일정을 연간 캘린더에 공유했고, 단체들과 워크숍도 개최했다”고 설명했다.

80개 기관의 의료봉사 일정이 공유되자 대학과 민간단체 간의 협력도 수월해졌다. 김억 아프리카미래재단 사무총장은 “소가(SOGA)가 공유한 의료봉사 일정을 보고 고신대에서 ‘동일한 지역으로 의료봉사를 계획 중이니, 날짜를 조정해서 같이 가겠다’고 연락이 왔다”면서 “전문 인력도 보강되고, 의료장비나 의약품 등 구매 비용도 절감할 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민관 협력’의 시너지를 기대하는 단체들도 많다. 특히 “의약품 통관, 진료 허가 등 행정 절차상 어려움이 해결되길 바란다”는 의견이 많다. 베트남·라오스 등 사회주의 국가는 진료 허가를 받기까지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통관 절차 때 의약품을 통째로 뺏기거나 분실되는 경우가 많아, 현장에서 의약품을 다시 구매하는 상황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소가(SOGA)는 6월 말, 총회를 통해 세부 운영 프로그램을 기획할 예정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수술 및 치료를 하고 있는 서울대병원 보건의료사업단 의사들의 모습. /선한봉사센터·서울대학교병원 보건의료사 업단 제공
우즈베키스탄에서 수술 및 치료를 하고 있는 서울대병원 보건의료사업단 의사들의 모습. /선한봉사센터·서울대학교병원 보건의료사 업단 제공

◇단순 네트워킹 넘어 사후 평가 고려한 시스템 필요

의료봉사단체들의 네트워크 구축은 시작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소가(SOGA)에 속하지 않은 기관, 정부 부처, 기업들과의 협력이 관건”이라면서 “업그레이드된 의료봉사 모델을 만들려면 약품 공급 체계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의료봉사단체들이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는 것이 바로 ‘약품 수급’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의료봉사단체들은 의사들이 운영하거나 의료기관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제약회사로부터 직접 약을 구매하지 못한다. ‘리베이트’로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자체나 복지부가 제공하는 약품을 받거나, 제약협회를 통해 약을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억 아프리카미래재단 사무총장은 “미국에선 보건의료 관련 비영리단체를 대상으로 약을 제공하는 ‘맵(MAP)’이라는 약품 뱅크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국내 정부도 이러한 약품 뱅크 역할을 할 기관을 지정, 육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후 평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용준 글로벌케어 회장은 “대부분 의료봉사나 보건의료 지원사업 이후를 돌아보지 않는다”면서 “현지 지역 전문가, 의사, 보건의료 관련 교수 등 팀을 꾸려서 장기적으로 사후 평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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