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일(금)

콘서트 가고 싶은데…인터넷 예매하다 그냥 포기하죠

장애인 위한 기업 홈페이지 웹 접근성의 수준은…

평등한 인터넷 사용 위해
‘웹 접근성’ 의무됐지만
기업들 준비 아직 부족

음성으로 화면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 오류 많고
보안 높이는 금융사이트
장애인에 맞추기 어려워

“십삼조 이천오백구십팔억 링크, 비티뉴티제이씨엘(btnewtjcl) 링크, 오만육천칠백구십만 삼백사십 엠큐와이(mqy) 링크….”

콘서트를 보기 위해 국내 최대 티켓 예매사이트에 들어간 조현영(33·시각장애 1급)씨는 혼란에 빠졌다. 컴퓨터 화면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프로그램인 ‘스크린 리더’가 계속 엉뚱한 숫자와 영문자를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웹사이트에 이미지 파일 많은가 봐요?” 탭(Tab)키로 화면 커서를 움직이던 조씨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홈페이지 소스코드에 이미지 파일을 대체하는 텍스트를 넣지 않으면, 스크린 리더가 이상한 파일명을 읽어버려요. 이런 식으로 시각장애인이 접근할 수 없는 정보가 너무 많습니다.” 기자의 도움으로 간신히 티켓 예매창에 들어갔지만, 첩첩산중이었다. 화면에 빈 좌석은 파란색으로, 예매 완료된 좌석은 빨간색으로 표시돼 있지만, 스크린 리더는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예매완료된 좌석까지 구분없이 모든 좌석번호를 차례대로 읽었다. 엔터키를 눌러 ‘A석 1열 3번’ 좌석을 선택해봤다. 소리 알림이 없어서, 시각장애인은 좌석이 선택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화면에는 ‘티켓 1매’, ‘결제금액 5만원’으로 표시됐지만, 스크린 리더는 매수와 금액을 인지하지 못하고 “티켓”, “결제금액”이라고만 읽었다. 예매 사이트에는 이처럼 스크린 리더가 인지할 수 없는 정보들이 대부분이었다. 30분간 컴퓨터와 씨름하던 조씨는 결국 콘서트 예매를 포기해야만 했다.

국내 유명 소셜커머스 사이트에 들어가 일반인과 시각장애인이 인지할 수 있는 정보를 비교해봤다. 모니터 왼쪽이 일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정보 내용이고, 오른쪽 화면은 화면낭독 프로그램(스크린 리더)을 사용해 시각장애인이 인지할 수 있는 정보다.
국내 유명 소셜커머스 사이트에 들어가 일반인과 시각장애인이 인지할 수 있는 정보를 비교해봤다. 모니터 왼쪽이 일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정보 내용이고, 오른쪽 화면은 화면낭독 프로그램(스크린 리더)을 사용해 시각장애인이 인지할 수 있는 정보다.

◇갈 길 먼 기업의 웹 접근성…”우리도 네티즌이고 싶다”

지난 4월 11일,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확대 시행되면서 모든 법인에 ‘웹 접근성’ 의무가 생겼다. 장애인이 일반인과 차별 없이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아직 기업들의 웹 접근성은 ‘걸음마’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난 17일, 김현아(가명·시각장애 1급)씨는 신한은행이 최근 웹 접근성 인증마크를 받았다는 뉴스를 접하고, 은행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메인 화면에는 “오픈뱅킹에는 웹 접근성이 적용되어 장애인 고객님도 편리하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오픈뱅킹 사이트는 1회용 비밀번호 생성기(OTP·One Time Password) 없이는 계좌이체 및 거래가 불가능했다. 은행에 문의해보니 “장애인용 OTP는 보안 문제 때문에 아직 발급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른 은행들의 인터넷 뱅킹 사이트에서도 계좌이체가 불가능하긴 마찬가지였다. 계좌이체를 하려면 보안카드 번호를 입력해야 하는데, 스크린리더가 시각장애인이 누른 숫자를 읽어주지 못했다. 심지어 로그인조차 불가능한 은행사이트도 있었다. 김씨는 “11일부터 웹접근성이 의무화됐다길래 기대하고 들어왔는데, 변한 게 없다”며 아쉬워했다. 그동안 시각장애인들은 은행 창구나 현금입출금기(ATM) 사용을 꺼려왔다. 혼자서는 서비스 이용이 불가능해, 공개된 장소에서 도움을 주는 타인에게 자신의 비밀번호 등 개인금융정보를 노출해야 했기 때문. 이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은 인터넷 뱅킹이 가능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김씨는 “접근조차 안 되는 사이트들이 많아서 소외감과 벽을 느낄 때가 많다”며 씁쓸해했다.

◇기업들 발등에 불…’콘텐츠 양’과 ‘보안 문제’ 걸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확대 시행으로 기업들도 분주해졌다. 웹 접근성을 준수하지 않아 고발을 당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권고를 불이행할 경우에는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도 부과된다.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차별을 느낀 장애인에게 권리구제의 길이 열린 것. 기업들은 “법은 이미 시행됐는데,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특히 금융권은 “최근 은행들이 인증 절차를 강화하는 추세인데, 그 모든 절차를 장애인용으로 최적화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보안 문제 때문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국가인권위에서도 장애인의 ‘사용성’과 ‘보안성’이 상충될 경우 ‘보안성’을 우선하라고 한다”면서 “장애인용 OTP가 발급되는 게 가장 좋지만 아직은 여의치 않고, 4월 말에 점자 보안카드로 오픈뱅킹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했다.

포털 사이트나 온라인 쇼핑몰의 경우 방대한 콘텐츠 양이 걱정이다. G마켓 등 온라인 쇼핑몰엔 대부분의 상품 정보를 이미지 파일로 소개하고 있다. 상품명을 제외하면, 스크린 리더로 읽을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다. 상품 상세 정보를 알 수 없으니 인터넷 주문은 불가능한 실정. G마켓 관계자는 “판매자들이 직접 상품 정보를 올리기 때문에 모든 콘텐츠의 웹 접근성을 지키기 어렵다”면서 “웹 접근성 관련 기관에 컨설팅받으며 점차적으로 개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2006년부터 웹표준화팀을 꾸린 NHN은 시각장애인 3명을 고용해 웹 접근성을 보완하는 중이다. NHN 관계자는 “워낙 공유되는 콘텐츠 양이 많고, 콘텐츠를 올리는 외부 업체에까지 웹 접근성을 강제하기 어렵다”면서 “자체적으로 웹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공유하고, 교육하고 있다”고 밝혔다.

팔을 사용하지 못하는 지체 장애인이 머리에 헤드스틱을 끼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습. 이들은 마우스 사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키보드만으로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제공
팔을 사용하지 못하는 지체 장애인이 머리에 헤드스틱을 끼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습. 이들은 마우스 사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키보드만으로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제공

◇’인증 마크’ 발급보다 ‘사용자’ 중심의 접근 필요

아무리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홈페이지를 개선해도, 정작 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불편함을 느끼면 고발 및 진정을 피할 수 없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많은 기업이 웹접근성 ‘인증 마크’를 받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문제는 검증 안 된 ‘인증 마크’를 발급하는 민간기관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공인된 인증 마크’와 이를 발급하는 기관 선정에 대한 내용이 담긴 국가정보화기본법이 1년 넘게 법사위에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가정보화기본법이 시행되면, 인증마크 난립 문제가 잠잠해질 것”으로 분석하면서, “인증 마크보다는 기업들이 장애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게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안동한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팀장은 “최근 센터를 방문한 온라인쇼핑몰 개발자들이 시각장애인 평가단이 쇼핑 사이트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고 돌아갔다”면서 “‘우리 사이트가 이렇게 불편할지 몰랐다’면서 ‘다시 원점에서 출발하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단 30분만이라도 스크린 리더로 자사의 홈페이지를 이용해보라”면서 “그때 느낀 불편함을 장애인은 매일, 평생 느끼며 살아간다”고 덧붙였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청각장애인, 손 떨림 등이 있는 상지장애인, 노인 등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손가락을 사용하기 어려운 지체장애인의 경우, 키보드 만으로 홈페이지 사용이 가능해야 한다.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영상에 자막을 달고, 볼륨 크기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홍경순 한국정보화진흥원 정보접근지원부 부장은 “장애인의 입장이 돼서 어떻게 하면 귀로 화면을 보고, 눈으로 들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웹 접근성이 좋을수록 장애인이라는 잠재적 고객을 확보하게 되므로, 웹 접근성 준수는 비용이 아닌 투자”라고 강조했다.

지금 웹 접근성 컨설팅 받아보세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웹 접근성이 미흡한 소규모 기관을 대상으로 접근성 진단 및 컨설팅을 무료로 실시할 계획이다. 올 한 해 동안 소규모 기관의 웹사이트 총 2000개를 선정, 상·하반기 1회씩 총 2회에 걸쳐 ‘한국형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 2.0’ 준수 여부를 진단한다. 공공기관 회의실 등을 활용해 ‘찾아가는 순회 컨설팅’도 기획했다. 이를 위해 웹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춘 대학생, 미취업자 100명을 선발, 웹 접근성 전문 교육을 실시해 ‘웹 접근성 지킴이’도 양성할 계획이다.

오는 5월 6일까지 진단 및 컨설팅을 원하는 기관들의 신청 접수를 받는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운영하는 ‘웹 접근성연구소’ 홈페이지(www.wah.or.kr)에서 신청하면 된다. 선정된 기관은 5~6월, 9~10월에 걸쳐 웹접근성 진단을 받게 된다. 순회 컨설팅은 7월과 11월에 실시된다.(관련 문의:02-3660-2566, 한국정보화진흥원 정보접근지원부)

정유진 기자

김경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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