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메이크어위시재단 10년 파트너, 푸르덴셜생명 손병옥 대표
2002년 첫 위시키드 탄생 소원 이루고 난 아이들
건강 회복 등 긍정적 변화 가정도 다시 웃음 찾아푸르덴셜생명 임직원들 진정성에 공감대 형성
70%가 자발적으로 기부사회공헌 하다 보면, 직원들 자긍심 늘고
더 좋은 기업으로 변화 개인 삶도 풍요로워져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 중 CEO가 된 사례는 드물다. CSR(기업의 사회적책임)이나 사회공헌 업무가 한직(閑職)처럼 여겨지는 기업문화 때문이다. 지난 4월 ‘더나은미래’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사회공헌의 문제점 중 “CEO나 임원 등 관리자급이 좋은 성과모델을 갖고 있지 못해, 실무 담당자들도 체계없이 업무를 진행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하지만 보험업계 최초의 여성 CEO인 손병옥(60) 푸르덴셜생명 대표는 다르다. 10년 전 푸르덴셜생명의 사회공헌 담당자로서 ‘한국 메이크어위시재단(이하 MAW재단)’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지금은 한국 MAW재단 부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MAW재단은 난치병으로 투병하는 3~18세 아동과 청소년의 소원을 이뤄주는 세계 최대 소원성취 기관이다. 난치병 환아와 재능기부 봉사자로 이루어진 ‘메이크어위시합창단’ 공연이 있던 지난 22일, 손병옥 대표를 만나 기업과 NPO(비영리단체)의 10년 파트너십 비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 MAW재단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한국지부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2000년 한 어린이의 편지가 계기였다. 광주에서 비호즈킨림프종이란 난치병을 앓던 한 어린이가 미국 MAW재단에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다’는 소원을 요청했는데, 자국의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 소원이 홍콩 MAW재단에 넘겨졌는데 같은 이유로 거절돼 일본에 전달됐다. 당시 일본 MAW 이사장이 푸르덴셜생명에서 근무하던 분이었는데, 우리한테 ‘사정이 딱하니까 한국 푸르덴셜생명이 도와주면 좋겠다’고 요청해왔다. 그 아이와 가족을 미국에 보내줬다. 이후 만나봤더니 굉장히 자신감있게 변해있었다. 알아보니 필리핀, 인도, 대만, 싱가포르에도 MAW재단이 있는데, 우리나라엔 없었다. 우리 아이들 소원이 빙빙 도는 게 자존심 상했다. ‘우리도 이런 재단이 들어오면 좋겠다’고 회장님께 말씀드렸더니, ‘한번 해보라’고 하셨다. 2000년 가을쯤 미국 본부에 연락을 했는데 심사가 엄격해 승인받는 데 2년 걸렸다. 2002년 12월 푸르덴셜생명 임직원과 뜻을 같이하는 몇 분이 모여 발대식을 했는데, 그동안 2000명 이상의 아이들한테 소원을 이뤄주고 기적을 나눌 수 있었다. 광주의 그 아이가 ‘위시키드(Wish Kid)’ 0번인데, 병도 완치돼 지금은 기업의 인턴사원으로 근무한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과 푸르덴셜생명과의 협력을 통해 어떤 윈윈 효과가 있었나.
“10년 전만 해도 ‘난치병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 ‘그 돈으로 치료비를 지원하거나, 굶는 아이들 돕는 게 낫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해보면 알게 된다. 아이들 소원을 들어줌으로써 강렬한 기쁨을 맛보게 해서 병이 호전된다. 대개 부모들은 자녀의 난치병을 숨겨놓고 사는데, 세상에 드러내면서 그 가정에도 빛이 든다. 하지만 초기엔 후원받기가 쉽지 않다. 회사 사옥에 재단 사무실을 마련해주고, 매년 수억원의 운영비를 보탰다. 아이들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200명 안팎의 임직원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한다. 한국 MAW재단은 안정적으로 정착했고, 본부에서도 한국이 모델케이스다. 이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푸르덴셜생명도 도움받았다. 자원봉사로 참여한 임직원들은 아이들의 병이 호전되는 걸 보면서,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높아졌다. 급여에서 1만원 미만 우수리를 떼는 ‘푸르덴셜 소원별기금’도 모으는데, 임직원 70%가량인 2006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난치병 아이들의 소원을 이뤄줬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을 것 같다.
“부모님이 너무 가난해서 결혼식을 못 올린 ‘위시키드’가 있었다. 우리 사옥 지하 2층 강당을 결혼식장으로 꾸미고, 예복을 맞춰주고, 푸르덴셜 임직원이 하객으로 참여해서 결혼식을 치러준 기억이 난다. 신체장애를 가진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국토대장정을 하고 싶어했다. 부자(父子)만 걷게 할 수는 없으니까, 임직원이 5명씩 릴레이로 조를 짜서 걸었다. 가장 가슴 아픈 건 ‘정표이야기’다. 초등학생인데, 자신의 이야기를 일기로 써왔는데 책을 펴내고 싶어했다. 작가가 꿈인 아이였다. 책이 완성되기 전 아이가 사망했다. 아이 영전에 책을 놓았다. 지금 정표 엄마는 영상촬영을 배워서, MAW재단에서 소원 성취를 하는 아이들의 영상촬영을 해주는 자원봉사로 일한다.” (이 대목을 이야기하며 손병옥 대표와 홍보팀장, 기자 셋은 눈시울이 빨개졌다. 홍보팀장은 ‘대표님이 아이들 사연에 많이 우신다’고 했고, 손 대표는 전임 사회공헌팀장이던 홍보팀장을 가리키며 ‘얘가 저보다 더 울보’라고 했다.)
―최근 기업의 CSR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푸르덴셜생명의 CSR 원칙은 무엇인가.
“업종이 보험업이고, 창업이념이 ‘가족사랑, 인간사랑’이다. 자원봉사나 CSR 활동을 순수하게 하자는 게 철칙이다. 직원들이 200시간 이상 봉사하면 ‘아름다운 푸르인’이라는 명칭을 명함에 새겨준다. 상금도 준다. 아직은 없는데, 1000시간이 되면 회사 ‘명예의 전당’에 올리려고 한다. 말이 1000시간이지,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사실 진정성이 없으면, 직원들의 공감대를 끌어내기 어렵다. 푸르덴셜사회공헌재단에서 전국 중고생자원봉사대회를 개최하는데, 비슷비슷한 행사가 많다 보니 DM으로 발송된 행사안내장을 선생님들이 받자마자 버린다. 우리는 매년 전국 5000여개의 중고등학교를 방문한다. 모교인 경기여고, 제 딸 학교인 은광여고를 저도 방문한다. 임원과 라이프플래너들도 모교를 방문해 행사를 알린다. 푸르덴셜생명 입사 초기 전 세계의 임직원들이 함께 봉사하는 날인 ‘글로벌 발런티어 데이'(10월 첫째 토요일)를 맞았는데, 고아원에서 도배와 빨래, 시설수리를 하는데 참 열심히 하더라. 흔들리는 밥상 나사를 풀었는데, 바퀴벌레가 우글대는 걸 다 잡아내는 걸 봤다. 진정성이 없으면 봉사하러 가서도 대충 하게 된다.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
―기업의 전략적 사회공헌이 대두되면서, 기업과 NPO가 파트너이기보다 갑을 관계가 되는 부작용도 있다. 10년 동안 좋은 파트너십을 맺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기업과 NPO는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집단이니, 존경하고 이해하는 건 기본이다. 처음 재단을 만들면서 ‘MAW재단이 푸르덴셜생명의 소유물이 되면 안 된다’고 결심했다. 11명 이사 중 푸르덴셜생명 사람은 3명뿐이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많은 기업과 일반인들이 후원하는 것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GS, 하이트 등 많은 기업이 MAW재단에 후원을 한다. 우리는 사업비 대신 MAW재단 운영비를 댄다. 사회공헌은 단기적인 성공이 꼭 좋은 것 같지는 않다. 푸르덴셜생명만 반짝반짝 빛나느라고 MAW재단이 다른 기업 후원을 하나도 받지 못하면 결국 장기적으로는 실패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의 CSV (Creating Shared Valueㆍ공유가치 창출)가 국내에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자선의 영역이던 CSR에도 이윤창출이나 브랜드 이미지 제고 등의 역할이 추가됐다. 자선과 이윤창출, CSR이 어디 쪽에 더 가까워야 한다고 보는가.
“두 가지가 다르지 않다. CSR은 기업의 당연한 의무다. 푸르덴셜생명이 국내에서 영업을 해서 이윤창출을 하기 때문에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의무다. 근데 열심히 사회공헌을 하다 보면, 직원들이 자신감·자긍심·행복감이 생겨서 이 긍정적인 힘이 좋은 기업으로 만든다. 당연히 이윤창출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이윤창출을 위해서 CSR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CSR을 열심히 하면 자연스럽게 이윤창출이 되는 것이다. CSR은 더 나은 기업을 만들고, 개인적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만든다. 봉사하는 부모를 보고 자란 자녀는 절대 비뚤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