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문제아’들이 뭘 하겠냐고요? 울타리 안서 의기투합하니 ‘싹’ 보이네요

“일자리도 주고, 기술도 가르쳤죠. 10년 넘게 정말 별짓 다 했는데도 모조리 실패했어요. 기존 방식으로는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패스메이커(pathmaker)’가 돼야 했습니다.”

위기 청소년 보호기관 ‘세상을 품은 아이들'(세품아)을 이끄는 명성진(51) 목사가 위기 청소년 자립을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열쇠말은 창업이다. ‘문제아’로 낙인이 찍힌 청소년들이 협동조합을 운영하면서 사회에 안착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세품아 그룹홈에 사는 17~19세 청소년 7명 전원은 두 팀으로 나뉘어 내년 6월을 목표로 창업을 준비 중이다.

세품아 창업 멤버들은 지난 3월 스페인 빌바오 몬드라곤대학에서 일주일간 스페인·멕시코·한국 등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 팀을 이뤄 협동조합 창업 교육을 받았다. ⓒ세상을품은아이들

◇’물먹은 솜’ 같던 아이들이 “꼭 성공하고 싶어요”

“만날 알바만 했어요. 돈은 필요하니까 억지로요. 이제는 달라요. 일하는 게 진짜 재밌어요.”

지난달 31일 경기 부천 세품아 사무실에서 만난 A(18)군이 말했다. A군은 B(19)·C(18)·D(17)군과 함께 ‘앤뎁’이라는 협동조합을 만들고 있다. 너무 왜소하거나 너무 덩치가 커서 기성복을 입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맞춤 의류를 판매할 계획이다. 일할 기회가 적은 청년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E(19)·F(19)·G(17)군은 ‘캠프화이야’라는 사회적협동조합 설립 준비에 한창이다. ‘일회용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캠핑’을 내세운 캠핑 장비 대여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과거 6호 처분을 받고 세품아에 왔다. 우리나라 소년법은 ‘죄를 범한 소년’에 대한 10단계 처분을 명시한다. 1~5호 처분을 받으면 집으로 돌려 보내지만, 8~10호 처분을 받으면 소년원에 송치된다. 6호 처분은 소년원에 갈 만큼 죄가 무겁지는 않지만, 귀가해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위기 청소년들에게 내려진다. 부모에게서 버림받거나, 학대당하거나, 가정이 공중분해 돼 의지할 곳 없는 상황에서 ‘비행 청소년’ 딱지가 붙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명 목사는 지금까지 300명이 넘는 위기 청소년을 만났다. 본드에 중독되거나 폭력을 휘둘러 손가락질받던 청소년들의 울타리가 됐다. 사회적기업과 연계해 일자리도 주고, 바리스타·조리사 등 기술을 익히도록 지원했다. 하지만 이내 그만두고 일용직으로 연명하거나, 다시 비행에 빠지는 일이 허다했다.

위기 청소년들은 일종의 ‘사회적 자폐’ 증상을 보인다. 명 목사는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채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꺼리는 아이들이 일어서려면 보호막이 돼 줄 건강한 공동체가 필요했다”면서 “협동조합이 적절한 모델이었다”고 말했다.

7명의 청소년은 지난해 9월부터 8개월간 교육·실습을 받고 지난달부터 본격적인 창업 준비에 돌입했다. 아이템 선정부터 고객사 관리, 제품 개발, 홍보·마케팅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맡아서 한다. G군은 “선생님들이 도와주면 1시간이면 끝날 일인데 안 도와주시니 섭섭하다”면서도 “사업계획서를 완성하고, 직접 피칭(pitching)도 하면서 하나씩 일을 끝낼 때가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표’ ‘커뮤니케이션 리더’ 등 직책으로 서로를 부른다.

캠프화이야는 지난달 캠핑 장비 수요 조사를 마치고 이달 중 장비 구매에 나선다. 앤뎁은 오는 7월 샘플 의류를 제작하고 디자이너들과의 협력 과정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할 예정이다.

세품아 창업 멤버들이 직접 기획·실행한 ‘감자 프로젝트’에 참여한 몬드라곤대학 학생들. ⓒ세상을품은아이들

◇스페인 몬드라곤대학에서 얻은 자신감… “당당한 사회 일원 될 것”

세품아는 창업 멤버 교육에 스페인 몬드라곤대학의 협동조합교육프로그램인 ‘몬드라곤 팀 아카데미(MTA)’를 활용했다. ‘러닝 바이 두잉(learning by doing)’이 모토인 실습 위주 프로그램이다. 아쇼카 펠로로도 활동 중인 명 목사는 2016년 한국을 찾은 호세 마리 루자라가 몬드라곤대학 교수를 만나 MTA 모델을 들여오기로 했다. 루자라가 교수는 MTA 프로그램의 창시자다.

명 목사는 “MTA는 개인 역량 강화에 집중하는 ‘앙터프레너십(Enterpreneurship)’보다 협동을 우선하는 ‘팀프레너십(Teampreneurship)’에 방점이 찍혔다”며 “개개인은 사회의 기준에 못 미치는 세품아 아이들도 협력으로 비범해질 수 있다”고 했다.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다. 창업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 나온 반응은 “그걸 우리가 왜 해요”였다. MTA 첫 미션으로 ‘밖에 나가 돈 벌어오기’ 과제를 내줬을 때는 “버려 두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한겨울에 만원 한 장 주고서 밖에 나가 돈을 벌어 오라는 거예요. 어묵 사다가 버너로 끓여서 팔았어요. 2만원 벌었나. 다른 친구는 버스킹해서 7000원인가 벌고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죠.”(C군)

변화는 창업 멤버들이 직접 몬드라곤대학을 방문해 ‘감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찾아왔다. 스페인·멕시코·한국 등 다국적 학생들과 팀을 이뤄 일주일을 보내면서 희망을 봤다. 캠퍼스 곳곳에 알파벳을 새긴 감자를 숨겨두고, 이를 모두 찾아 사진을 찍어온 참가자에게 상품을 주는 프로젝트를 세품아 창업 멤버들이 직접 기획했다. 30여 명의 몬드라곤대 학생들이 기꺼이 참가비 1유로(약 1300원)를 내고 ‘깜짝 이벤트’를 즐기는 모습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처음 이틀은 한마디도 안 했어요. 그런데 자꾸 ‘네 생각은 어때?’하고 물어오고 더듬더듬 대답해도 ‘멋지다’고 손뼉 쳐 주니까 용기가 났어요.” (G군)

“어떤 형이 ‘네 첫 프로젝트는 뭐였어’하고 물었어요. 어묵 팔았던 일이 부끄러웠는데 그 형이 ‘나도 지하철에서 껌 팔았다’며 웃었어요. 그 형이 지금은 유럽 전역에 전기 오토바이를 판대요.” (A군)

명 목사의 목표는 위기 청소년들이 창업을 통해 사회에 안착하는 모델을 확립하는 것이다. 수백개 협동조합이 모여 시너지를 내는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처럼 세품아 출신 협동조합들이 한데 뭉쳐 살아가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얘들 가지고 되겠느냐’고요. 되고 말고요. 학교 밖 청소년들도 사회의 일원으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 아이들이 증명할 겁니다.”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jangpr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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