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장애인에 날개 달아주는 ‘기술’의 힘

시각 장애인은 일상생활에도 설명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온·오프라인 소통 플랫폼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쌍방향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환경을 만들려 합니다.(강내영 사운드플렉스 스튜디오 대표)
교통 약자 환승 지도는 장애인들이 사회로 나올 용기를 갖게 합니다.(홍윤희 무의협동조합 이사장)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디캠프 선릉센터에서 열린 ‘에이블테크 디파티(Able-tech D.PARTY)’ 현장. ‘기술’을 활용해 장애인의 일상 속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스타트업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에이블테크란 장애인이 직면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보조 공학 기술을 포함, 사용자 접근성을 고려한 기술을 말한다. 서울시NPO지원센터와 디캠프가 공동 주최한 이날 행사는 에이블테크 산업 내 스타트업과 지원 기관, 투자자 간의 네트워킹을 위해 마련됐다.

지난 12일, 에이블테크 디파티 현장에 참석한 홍윤희(왼쪽부터) 무의협동조합 이사장, 정성환 토도웍스 본부장, 박힘찬 설리번 대표, 강내영 사운드플렉스 스튜디오 대표, 송덕진 위에이블 대표, 박원진 AUD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패널 토크에 참여하고 있다. ⓒ디캠프
 

 

◇기술로 장애 장벽 낮추는 ‘에이블테크(Able-tech)’ 

 

참석한 에이블테크 기업 6곳은 AUD사회적협동조합, 토도웍스, 무의협동조합, 위에이블(we.able), 사운드플렉스 스튜디오, 설리번이다. AUD사회적협동조합 청각 장애인의 의사소통과 사회 참여를 위한 문자 통역 및 자막 서비스 앱 ‘쉐어타이핑’을 제공한다. 문자 통역은 소리 정보를 실시간 자막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박원진 AUD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내년 1월 즈음엔 인공지능 ‘에이브릴’을 활용해 문자 통역사가 필요 없는 인공지능 문자 통역 서비스도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토도웍스는 수동 휠체어에 장착해 사용하는 전동키트 ‘토도드라이브’를 개발, 수입 제품보다 저렴한 가격(176만원)에 보급하는 IT 소셜 벤처다. 정성환 토도웍스 본부장은 “스마트폰 앱으로 조이스틱을 무선 조종하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며 궁극적으로 자율주행까지 나아가려 한다”고 했다. 무의협동조합은 교통 약자를 위한 서울 지하철 환승 지도 제작 프로젝트로 잘 알려진 장애 인식 개선 콘텐츠 제작 회사다.

사운드플렉스 스튜디오는 시·청각 장애인을 위해 화면 해설, 자막 등이 탑재된 ‘배리어 프리(barrier-free)’ 콘텐츠를 기획·제작한다. 위에이블은 접근 가능한 여행지를 지도화하고,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미디어 스타트업을 준비 중이다. 벙어리장갑을 ‘엄지장갑’으로 바꿔 부르자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설리번은 수화통역사와 시각 장애인을 매칭하는 O2O 앱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 12일, 에이블테크 디파티에서 발표 중인 AUD사회적협동조합의 박원진 이사장. 옆 스크린으로 문자통역사의 실시간 문자통역 자막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디캠프

 

◇아직은 제도·환경적 걸림돌 존재해

 

야심 찬 포부로 시작했지만 창업 생태계는 에이블테크 기업들에도 만만치 않았다. 실제 제품 또는 서비스를 판매해 수익을 내는 토도웍스와 AUD사회적협동조합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한 상태다. 박힘찬 설리번 대표는 “설립한 지 1년이 됐는데 수익 모델이 없어 지난 프로젝트 때 받은 후원금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홍윤희 이사장도 “환승 지도는 결국 서울교통공사가 가져갈 ‘공공 데이터’라 수익 모델이 없다”며 “공사가 우리 데이터를 참고해 직접 교통 약자 환승 지도를 만들도록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장애인 보조 용품 구매를 지원하지만, 에이블테크처럼 신기술과 융합한 경우에 대해서는 제도적으로 미비한 것도 애로 사항이다. 정성환 본부장은 “토도드라이브는 국내에서 의료기기에 해당하지 않아 지금껏 장애 가정이 100% 자부담해 구입해왔다”고 설명했다. 정 본부장은 “(같은 제품이) 미국·독일 등 해외에서는 명확하게 의료기기에 해당하고 의사들도 적극 처방해 대중적으로 사용된다”며 “독일의 한 장애 관련 행사에 참석했을 때 현장에 있는 휠체어 이용자의 3분의 1이 6000달러가 넘는 고가의 유사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을 정도”라고 했다.

이베이코리아의 이사직도 겸하고 있는 홍윤희 이사장은 “장애인이 휠체어 등 고가 용품을 사려면 서류를 들고 구청이나 관련 기관 등 오프라인을 서너 번씩 전전해야 한다”며 “장애인들이 허비하는 시간을 줄여주고자 옥션 ‘케어플러스(장애인 보조 용품 전문 쇼핑 페이지)’를 만들었지만, 민간 기업이 장애 식별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구조라 보장구 지원 제도 등과 연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홍 이사장은 “민간과 연계해 원격으로 서류를 제출하게 하는 등 정부가 장애 관련 용품의 유통과 판매, 구매에 대한 공공 서비스를 지원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심재신 토도웍스 대표가 수동 휠체어에 직접 자사 제품 ‘토도드라이브’를 설치하고 있다. ⓒ토도웍스
 
 

◇에이블테크 날개 돋으려면…대중 인식도 바뀌어야

 

에이블테크 산업에 대한 대중의 편견도 6인 창업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고충이다. 박힘찬 대표는 “우리를 자원봉사팀으로 보거나 ‘수익을 어디 기부할 거냐’고 묻기도 한다”며 “장애를 다루는 아이템도 사업성을 추구할 수 있는데 그렇게 보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원진 이사장도 “에이블테크 개발을 한다고 하면 ‘돈이 돼?’ ‘공짜로 한번 해봐’ 하는 이들이 많다”며 “에이블테크가 공짜가 아님을 알아달라”고 덧붙였다. 홍윤희 이사장은 “한류 스타를 좋아한다는 일본의 장애인 한 분이 ‘왜 한국은 외국인이 와서 즐길 수 없게 돼 있느냐’고 묻더라”며 “특장 리무진 버스, 저상 버스 등 휠체어가 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외국의 장애인 분들도 많이 찾아와 시장성이 확보될 것”이라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장애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풀어야 할 과제다. 송덕진 위에이블 대표는 “제주도에서 무장애 관광 코스를 개발할 때 한 맛집에 ‘이곳을 소개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장애인 관광객이 와도 우리가 문을 열어주거나 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며 “다들 경험이 없기에 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저시력 장애를 가진 강내영 사운드플렉스 스튜디오 대표는 “직업훈련 교육을 받아 취업도 해봤지만, 업체가 장애인 고용 혜택이 끝나자마자 월급을 안줬다”며 “장애를 가진 이들도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의협동조합의 시작이 됐던 홍윤희 이사장과 딸 지민양의 ‘지민이의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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