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마을 개선 프로젝트] 부산 감천마을·물만골,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

부산 감천마을, 아파트로 재개발 대신 아름다운 문화마을로 탄생

부산 사하구 감천마을은 1950년대 태극도를 믿던 사람들이 집단을 이룬 마을이다. 각양각색의 집들이 일정한 규칙이 없이 개별적인 개보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주거환경의 개선이 필요하지만 재개발이나 뉴타운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일단 1만 명 남짓한 주민들이 좁은 산비탈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이곳에 아파트를 지어서 수익을 남길 수 있는 건설사가 있을지 의문이다.

재개발 대신, 감천마을은 지난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마을미술프로젝트’에 선정되었다. 마을 본래의 풍경에 아기자기한 예술작품이 더해져 전국적으로 유명한 ‘감천문화마을’이 되었다. 감천동이 지니고 있던 맥락은 유지되면서 조금씩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감천마을은 ‘문화예술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의 산토리니’라 불리는 관광지역이 됐다.
감천마을은 ‘문화예술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의 산토리니’라 불리는 관광지역이 됐다.

감천마을을 둘러보고 부산시 연제구의 연제공동체 김이수 대표를 만나 ‘마을만들기’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김이수 대표는 얼마 전까지 연제구 물만골 공동체의 마을주민위원장이었다. “물만골은 연제구 연산2동 산183번지 외 5개 지번에 걸친 마을입니다. 횡령산 중턱에 자리잡은 자연마을이죠. 지금의 마을이 형성된 것은 한국전쟁 당시 군사기지를 닦는 도로를 개설하면서였습니다. 78년에 전기가 들어왔고, 83년에 전화가 들어왔습니다.”

물만골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것은 91년도에 시작되었던 강제철거다. 92년 마을 주민들은 10여 일에 걸쳐 동래구의 강제철거시도를 막았다. 90년대에 전국 곳곳에서 흔하게 진행되었던 재개발과 강제철거였지만 물만골의 주민들에게는 마을과 동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구와 시의 방치 속에서 자체적으로 가로수를 심고 꽃길을 조성하고 마을회관을 설치하며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기 위해 애쓰던 물만골 주민들은 99년부터 실험을 시작했다.

“99년에 물만골 공동체가 출범했습니다. 그리고 3차에 걸쳐 주민들이 4만9500㎡(1만5000평)의 부지를 공동매입했습니다. 금융위기가 생겼던 2008년도까지 합치면 4차까지 해서 3만5000평 가까운 땅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매입한 셈입니다.”

공동부지매입에 참여한 사람들이 함께 마을의 땅을 사서 철거지역이라는 오명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났다. “이제 우리에겐 새로운 숙제가 남았습니다. 철거의 위협에서 벗어났지만 앞으로 물만골이 어떤 마을이 될 것인지에 대해 우리의 힘으로 결정을 해야 합니다. 아파트로 대변되는 한국식의 전형적인 개발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일단 아파트로 하지는 말자는 합의가 어느 정도 있습니다. 주민들의 의견이 100% 같을 수는 없지만 설문조사나 마을회의를 해보면 지금 각자가 살아가는 곳을 중심으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추진해보자는 의견이 많습니다.”

김이수 대표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강조했다. 재개발과 뉴타운, 아파트 건설만이 사람들이 모여 사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을은 단순히 건물, 도로, 시설이 아닙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마을입니다. 마을 주민들 사이의 유대감을 얼마나 잘 보존하는가가 다음 세대의 우리 마을을 좌우할 것입니다.”

작년엔 마을에 공판장이 들어섰다. 주민들이 함께 오솔길도 만들고 마을 방송을 만들었다. 마을 병원과 마을 학교, 도서관이 필요하다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다.

요즘은 한국 곳곳에서 마을 만들기와 연계된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김이수 대표는 토론과 고민 그리고 자치를 강조했다. “모든 마을마다 다 상황이 다를 겁니다. 마을 주민들이 많이 토론하고 배려하며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서울에도 마을 만들기와 대안 개발을 통해 지역 재생을 이루어내려는 실험이 있다. 성북구의 삼선4구역에서 ‘장수마을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박항룡씨를 만났다.

“60년대에 주로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2004년에 서울시 기본계획에 재개발 예정구역으로 지정이 되었지만, 사실은 재개발이 너무 힘든 지역입니다.”

장수마을에는 서울 성곽이 있고 삼군부 총무당과 같은 문화재가 있다. 지리적으로도 경사가 심하고 지반이 약해 용적률을 감안하면 재개발의 사업성이 거의 없다. 재개발 계획이 애매해지면서 집주인과 투자자, 지역의 세입자들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모두가 고통을 받게 됐다.

장수마을의 야경.
장수마을의 야경.

“이곳은 70% 이상이 국·공유지이거나 구청의 땅입니다. 마을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무허가로 건물을 지었기 때문에 지금 이곳의 집주인들은 일년에 적게는 150만원, 많게는 400만원에 이르는 변상금을 내야 합니다. 이 비용은 집주인에게도 부담이지만 세입자에게 전가되기도 합니다. 또한 집이 노후되어 월세가 나가지 않아 텅 빈 채로 방치되고 동네가 슬럼화됩니다.”

지금 장수마을에서는 ‘지역 재생’사업이 진행 중이다. 핵심은 마을 내의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합의를 만들어내 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지역재생사업은 천천히 이루어진다. 우선은 전면적인 재개발이 아니라 지역 재생을 한다는 마을 이해관계자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이 합의는 현재 마을 주민들의 주거 확보가 최우선이라는 합의다. 이후 공공에서는 도시가스 인입, 계단 보수, 난간 설치와 같은 작업을 진행한다. 집주인들은 전반적으로 마을의 환경이 좋아져 집의 가격이 올라가는 효과가 생기지만 갑자기 세를 올리거나 세입자를 쫓아내지 않기로 약속을 한다. 세입자들은 이런 기반 위에 마을 기업을 통해 마을의 주거환경 개선사업에 참여해 일하고 보수를 받는다. 마을 기업은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얻은 수익 등을 이용해 마을의 빈집을 수리해 마을의 공동체 공간으로 조성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든다.

“물론 여전히 집주인들과 투자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이 지역의 집을 정리하고 싶은 생각도 있을 겁니다. 이 모든 것을 존중하며 일을 해야 합니다. 집 한 채에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니 일의 속도가 더딥니다.”

성과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마을의 빈집이 16채에서 12채로 줄었다. 지난가을에 빈집 두 채를 크게 고쳐서 한 채는 세입자를 유치했다. 지금은 주거용으로 불리한 집을 수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카페로 만들어서 할머니들의 쉼터로 삼고 마을 여성들의 일자리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마을 기업을 통해 복잡한 이해관계들이 조금씩 맞춰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처음에는 흉물이었던 빈집은 이제 수리를 통해 세입자의 집을 수리하는 동안 세입자가 임시로 머물 수 있는 숙소가 되었다. 원주민들이 마을 안에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순환구조가 생긴 것이다.

“점차 전체적으로 마을의 주택의 질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마을 기업의 집 수리사업에 참여해 새로운 수익을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지관이나 복지시설이 없는 이 지역에서 마을 기업을 통해 복지서비스와의 연계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박항룡씨는 지역 재생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정주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가 살아갈 동네라는 생각을 갖는 게 먼저입니다. 사이가 좋든 나쁘든 편하든 불편하든 이 이웃들과 부대끼며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을이 나아지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겁니다.”

행정 당국의 역할도 중요하다.

“행정 당국이 실적에 급급해 지원을 큰 폭으로 늘리면 오히려 공동체가 와해됩니다. 공동체가 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중심으로 차분히 진행될 수 있도록 지지해주면 좋을 것입니다.”

공공과 시장이 주도하던 지역 개발에 주민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손으로 마을을 만들어가는 시도에 응원을 보내본다.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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