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재단 이사장부부가 말하는 고액기부 비법
2003년 개인재산 30억원 출연해
민간독립재단인’중부재단’ 설립한 부부
중부도시가스 영업이익 5%
기부금으로 쓰여
“우리의 진짜 비결은 끈기 ‘중부재단처럼 해라’라는말 듣고 싶어요”
최근 고액기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기자는 지난 5일 중부재단의 이혜원 이사장, 중부도시가스의 김항덕 회장 부부를 자택에서 만났다. 2003년 김항덕 회장과 이혜원 이사장은 개인재산 30억원을 출연해 중부재단을 설립했다. ‘개인이 재단을 설립한다’는 개념 자체가 지금처럼 알려져 있지 않았던 시절이다.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입니다. 그 속성상 경쟁에서 도태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요. 나라에서 이 사람들을 다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사회 전체가 같이 고민하고 부담해야 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우리 부부는 이런 일에 대해 오래전부터 고민을 나눴습니다.” 김항덕 회장의 말에 이혜원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단을 만들기 전부터 YWCA나 대한적십자사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보람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니 기부나 봉사를 넘어선 재단 설립이 생각났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사회복지대학원에 다녔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과 공부도 하고 교수님들과 고민도 나눴지요.” 이혜원 이사장이 대학원 문을 두드렸을 때 그녀의 나이는 쉰두 살이었다. 늦깎이 대학원생이 꼼꼼하게 준비해 설립한 중부재단은 민간독립재단임을 강조한다. “기업재단은 기업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제시하면 재단은 그 방향성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의 경영 환경이 안 좋아지면 재단의 사업비가 줄어들기도 하고 때로는 조세회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민간독립재단은 재단의 고유 사명에 따라 일을 하고, 재단이사장이 생각하는 방향성 속에서 지속 가능하게 일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현재 재단의 사업은 출연금의 이자와 중부도시가스의 기부금을 재원으로 진행한다. 중부도시가스가 해마다 영업이익의 5%를 기부하고 있다. 요즘 김항덕 회장과 이혜원 이사장은 중부재단의 기본재산을 더 늘리기 위해 고민을 하고 있다. 재단이 재단의 목적에 충실하게 지속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재산 확충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부부가 기부와 재단활동에 열심인 이유가 무엇일까.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에는 뭔가 불편함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마음의 불편함에 귀 기울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것이겠죠. 사회를 위해 고귀한 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이 마음의 불편함입니다.” 두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회사의 경영진이나 직원들, 가족들과 자주 나눈다고 한다. 두 사람의 기부가 지속가능하도록 응원해주고 이해해주는 핵심 이해관계자들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걸어오지 않았던 뜻에 길을 내가며 걷고 있기에 어려움도 많았을 것이다. 이혜원 이사장은 재단 설립 즈음에 어느 인터뷰에서 ‘사회공헌은 강물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했었다. “자원봉사를 할 때는 몰랐는데 내 재원으로 일을 해보니 정말 도도한 강물에 돌을 던지는 것 같았습니다. 파문이 일어나는 순간은 잠시이고 곧 강물은 돌을 삼켜버리지요. 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과연 보람이 있을까요? 허무해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사회공헌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허무감이 밀려올 때 이혜원 이사장을 일으켜 세운 것은 장기적인 시각이었다. “우리 재단은 늘 성과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 성과를 나 자신의 보람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더라도 제가 던진 돌이 강물의 어딘가에서 바위들, 모래들과 함께 강바닥의 생태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있을 겁니다.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돌을 던지면, 열심히 꾸준하게 돌을 던지면 가랑비에 옷 젖듯 세상이 좋아지는 것이겠죠. 저에게 보람이 없다고 이 일을 중지해서는 안 되지요. 8년 정도 일을 하니 이제 주위에서 우리 사업의 성과들을 먼저 얘기해주십니다.” 장기적인 시야를 갖는다고 해서 재단 사업의 성과가 무엇인지, 이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불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중부재단은 사회복지 실무자들의 역량이 강화될 때에 우리 사회가 양질의 복지를 누릴 수 있다는 판단하에 다양한 사회복지사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회복지사의 역량, 휴식, 자긍심을 아우르는 입체적인 지원이다. 복지의 수준을 올리는 데에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주요 기부자인 중부도시가스와 함께 지역의 복지사업도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런 재단의 뜻에 동감한 사람의 기부로 ‘재단 속의 재단’도 만들었다. “어떤 분이 큰돈을 흔쾌히 기부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을 빌려 사업을 만들었습니다. 기부해주신 돈에서 나오는 이자와 같은 금액을 재단이 재원을 매칭해 펀드를 만들고, 이 돈으로 탈북하신 분 중 사회복지 대학원에 가시려는 분들의 학비를 내드릴 생각입니다.” 이제 부부는 선배 고액기부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고액기부를 원하시지만 방법을 모르는 분들이 오시면 노하우도 알려 드리고 함께 고민을 해 드릴 생각입니다. 저희 재단에 기부를 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잘 사용할 생각이고요.” 고액기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이다. 기자는 부부에게 고액기부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부부는 “지속가능성”을 강조했다. “봉사를 하는 것과 고액기부를 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선한 마음만으로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김항덕 회장의 얘기에 이혜원 이사장이 덧붙였다.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가능하려면 우선 재원을 확보할 계획이 필요하고 확실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목표를 현실화할 실행력도 필요하죠. 실행력이 있으려면 재단의 뜻을 이해하는 뛰어난 직원도 있어야 합니다.” 설명을 듣던 김항덕 회장이 마지막으로 성공하는 고액기부의 비결을 웃으며 농담하듯 털어놓았다. “사실 우리의 전략은 그저 끈기입니다. 오래 걸리겠지만 가긴 갈 거라는 자세로 하는 거죠.” 동기는 거창하지 않았지만 목적은 분명하다. 선의로 시작한다고 해서 대충하지는 않는다. 8년 전 부부의 자택에 있는 방 하나를 사무실 삼아 시작했던 중부재단이 성장한 비결이다. 지난 5일은 중부재단의 여덟 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앞으로 중부재단이 어떤 재단이 되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이혜원 이사장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모범적으로 운영해서 ‘재단을 만들려면 중부재단처럼 만들어라’라는 얘기를 듣는 것입니다. 재단을 처음 세울 때 가졌던 ‘욕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