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Cover story] 강원도 평창 ‘감자꽃 마을축제’

“바람이 노랩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이 음악입니다.”

김창완밴드의 보컬 김창완이 외치자 관객들은 환호성으로 답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시간의 공연 동안 김창완밴드는 17곡의 노래를 쉬지 않고 불렀다. 교복을 입고 팔짝팔짝 뛰는 고등학생들 사이로 김창완밴드를 응원하는 플래카드가 드문드문 보인다. 여느 콘서트장과 다를 바가 없는 뜨거운 열기지만 이색적인 무대다.

‘감자꽃 마을축제: 분교로 가는 봄 소풍’을 찾은 관객들이 가수 김창완과 지역 고등학교 밴드인 대일밴드의 합주공연에 환호성을 보내고 있다.
‘감자꽃 마을축제: 분교로 가는 봄 소풍’을 찾은 관객들이 가수 김창완과 지역 고등학교 밴드인 대일밴드의 합주공연에 환호성을 보내고 있다.

고등학생들 사이로 하얀 한복 바지에 검정 저고리를 입은 할아버지가 덩실 춤을 춘다. 무대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학교 운동장에 마련되었고 학교 담장 밖으로는 마을버스가 지나갔다. 운동장 한쪽에선 가마솥에서 곤드레 된장국과 쌀밥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고 있다.

무대 왼쪽의 천막에선 동네에서 마실 나온 것 같은 차림의 어르신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지역 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메밀부침이 3개에 3000원이고 막걸리는 한 잔에 1000원이다. 이 공연의 무대는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감자꽃 스튜디오다. 서울에서 평창읍까지 버스로 3시간, 그리고 다시 택시를 타고 10분을 들어가면 폐교를 개조한 감자꽃 스튜디오가 있다.

지난 5월 28일과 29일, 감자꽃스튜디오는 이틀에 걸쳐 인근의 마을 주민들과 힘을 모아 ‘감자꽃 마을축제: 분교로 가는 봄 소풍’을 개최했다.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축제는 이름 그대로 마을축제였다. 지역주민들이 준비한 음식과 공연, 감자꽃스튜디오의 기획이 만나 지역주민이 80명에 불과한 마을에 1000명의 외지인이 찾아왔다.

평창아라리 보존회 공연 모습.
평창아라리 보존회 공연 모습.

평창중리농악보존회의 길놀이로 시작된 공연은 감자꽃스튜디오 관계자들이 결성한 밴드 ‘The Trout’의 공연에 바통을 넘겼고, 무대는 동네 주민들이 결성한 기타합주반 ‘Jesus People’의 기타연주와 노래로 이어졌다. 감자꽃스튜디오 예술강사에게 플루트 강습을 받은 플루트 합주팀과 평창아라리 보존회의 평창아라리 열창은 지역사회에 있는 열정적인 문화예술의 거점이 지역민들의 삶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

이 축제가 지역민들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감자꽃스튜디오를 통해 지역과 인연을 맺은 예술인들이 하나 둘 도와 더욱 풍성한 축제를 만들었다. 인근 고등학교 밴드 ‘대일밴드’와 즉석 합주를 한 김창완밴드를 필두로 공간연출과 홍보물의 디자인을 도와준 작가 안데스, 스마트폰 다양체 지도를 만들어 축제를 통해 시연한 미디어 아티스트 김태윤과 이미지, 일러스트레이터 김도형과 디자이너 김장우, 피아니스트 하쥬리, 사진작가 이영훈 등이 힘을 보태 축제는 더욱 풍성해졌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김창완밴드의 김창완은 “우리 주위엔 잘 지어지긴 했지만 텅텅 비어 있는 공연장이 너무나 많다”며 “이번 축제를 통해 진정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축제를 주최한 감자꽃스튜디오의 이선철 대표는 “주민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고 국악을 하고, 이런 것들이 모여 축제의 콘텐츠를 메웠다”며 “농촌에는 예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관들이 있지만 꾸준한 문화예술 활동이 지역에 문화예술의 체력을 길러주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고 축제의 의미를 설명했다.

김창완과 이선철이 지역과 문화예술의 역할에 대해 더 할 말이 있을 것 같아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눴다. 공연이 끝난 후 김창완과 이선철을 만났다. 설명이 필요 없는 국보급 로커 김창완과 창의적인 기획으로 한국 곳곳에 문화예술을 심고 있는 국가대표급 기획자 이선철과의 인터뷰는 감자꽃 스튜디오의 ‘숙직실’에서 진행되었다. 고대권기자_사진_감자꽃마을축제_이선철_2011

둘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4년에 감자꽃 스튜디오를 개관할 때 당시 김창완 선생님이 진행하던 라디오방송의 공개방송을 여기에서 해주셨어요. 그 후로도 가끔은 자전거를 타고 오시고 가끔은 그냥 놀러 오시듯 감자꽃 스튜디오를 찾아주셨죠.”

그런 김창완씨가 고마웠다는 말에 김창완씨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은 이선철 대표를 보고 희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여긴 폐교였고, 사람도 별로 없는 산골짜기인데 이곳에 문화 동산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으니 믿기지도 않았죠. 이게 될까 싶기도 했고요.”

2004년 개관 때부터 감자꽃스튜디오를 지켜본 김창완씨는 감자꽃스튜디오에 보낸 관심이 단순한 도움의 차원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적지 않은 분들이 마을의 발전이라고 하면 우선 돈벌이가 잘 되거나 마을의 경제상황이 나아지는 것에 관심을 가지잖아요. 물론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이선철 대표는 그런 것보다 더 큰 위로와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생각해요. 마을에 진짜로 필요한 건 이게 내 마을이라는 자각이 아닐까요. 오늘 여기에서 만난 청년들이나 학생들이 품고 있는 자발적인 활동이나 교류, 이런 것들을 보고 저도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그도 그럴 것이 축제의 공연 무대에 오른 출연진들은 모두 마을과 인근 지역의 주민들로 구성된 ‘마을 음악인’들이었다. 무대는 록과 대중가요, 전통 민요, 클래식이 뒤섞여 하나가 되어 진행되었고 초등학생부터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마을 주민들은 이런 음악들을 가리지 않고 즐겼다. 김창완씨는 “축제의 콘텐츠를 돈 주고 외부에서 끌어오겠다는 생각을 안 하고 마을 주민들로 구성한 건 놀라운 시도”라며 감탄했다. “이런 풀뿌리 문화운동이 문화운동의 본질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선철 대표에겐 이런 풀뿌리 문화운동이 마을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이다. “이 마을을 상상해보면, 이런 축제가 없다면 결국 이 마을이 외부와 교류할 수 있는 통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축제를 통해 농촌이 외부와 소통할 수 있게 되고, 그 매개가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번 축제는 “예술을 매개로 지역과 외부의 교류, 지역 사람들끼리의 소통이 이루어진 것이고, 축제라는 공간이 하나의 일터가 되고 외부의 관광을 유도해 지역사회의 경제여건도 개선시킬 수 있는 실험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한 판의 축제를 마친 후, 두 사람은 커뮤니티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창완씨는 “요즘은 점점 나와 집단 간의 괴리를 느낀다”고 말문을 열었다. “자신을 바라볼 때 나의 눈으로 나를 보지 못하고 집단의 눈으로 나를 보게 돼요. 그럼 자기 자신이 왜소하게 느껴지거나 요즘 말로 루저처럼 보이기도 하죠.”그래서 김창완씨는 “이런 문제들이 해소되고 자기 발견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이 생겨나길 바라고 있다. 그런 그에게 이번 축제는 ‘커뮤니티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사람들이 커뮤니티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의 내·외부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고 새로운 커뮤니티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 가능성의 중심엔 “나를 누구보다 사고가 자유롭고, 자유롭고 싶어 하고, 자유를 배고파하는 어른으로 만들었던 예술이 있다”고 말했다.

이선철 대표의 고민은 ‘축제 이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감자꽃 스튜디오가 장기적으로 지역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요. 유럽이나 미국에선 지역 축제를 통해 농촌이 뚜렷한 전망을 가지게 된 사례들이 있는데 우리도 그런 고민들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지역의 아이들에게 이 공간이 폭넓게 잘 활용되었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동네에 소문도 나고 이런 게 소통이고 교류잖아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팬이라는 두 사람의 만남은 그 자체가 예술과 커뮤니티 사이를 연결하는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이 인연이 더 큰 기회로 발전하기를, 기자 역시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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