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학대 신고만큼 상담·치료도 중요… 통합 매뉴얼 확산돼야

굿네이버스 ‘아동보호 통합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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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아동학대 사례의 80%는 가정에서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부모가 학대 행위자이기 때문에 신고 및 판정 이후 체계적인 프로그램이나 개입이 있어야 재학대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굿네이버스 제공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갈 때는 ‘아동학대 유형 중 어디에 속할까’ ‘학대 강도는 어느 정도일까’ ‘목격자는 없을까’ 이런 마음으로 가야 해요. 그런데 현장 조치가 끝난 후 학대 아동과 그 가정을 대할 때는 전혀 달라요. ‘이 가정의 강점은 무엇일까’ ‘이 가정을 되살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를 생각해야 하죠. 마치 ‘두 얼굴’을 가지고 일하는 느낌이에요.”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A씨가 복잡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혼란스러운 것은 상담원뿐만이 아니다. A씨는 “아동학대는 신고 접수 후 현장조사를 하기 때문에 부모 등 학대행위자들의 거부감이 심하다”며 “재학대 방지와 궁극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학대행위자와 상담원 간에 친밀한 관계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데, 관계를 형성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쉽지 않다”고 했다.

◇인력난 시달리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사례관리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아동학대보호체계 최전선인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총 55개. 지역별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촘촘하게 설치되어 있지 않고, 인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아동학대 특례법’ 시행 이후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크게 늘었다. ‘2015 아동학대현황(속보치)’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1만9209건. 전년도(1만7791건)에 비해 1000건 이상 증가했다. 접수 경로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55.7%로, 절반 이상을 웃돌았다.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현장출동 업무가 관련 법령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사례관리가 상대적으로 우선순위가 되지 못했다”고 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지침을 내렸다. 팀 운영체제를 현장조사팀과 사례관리팀으로 분리해 운영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10명 내외로 구성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팀 분리가 쉬운 일은 아니다.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인력이 충원되면서 그나마 안정적으로 팀을 분리해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팀 분리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쏟아지는 업무량과 더불어 어려움은 또 있다. 상담원을 위한 구체적인 지침과 서비스 프로그램이 체계화되지 않았다는 것. 4년 6개월째 상담원으로 일하는 B씨는 “신입으로 들어왔을 때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매뉴얼이 구체적이지 않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려움이 많았다”며 “보다 효과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는 아동학대에 특화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굿네이버스, ‘아동보호 통합지원 전문서비스 모형’ 개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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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네이버스는 아동보호 전문기관 상담원을 위한 ‘아동보호 통합사례관리 전문서비스 모형’을 개발했다. /굿네이버스 제공

학대피해아동을 위한 사례관리는 어떤 점이 달라야 할까. 전문가들은 학대 행위자의 상당수가 부모이기 때문에, 체계적인 가족 치료프로그램이나 개입이 없으면 재학대가 반복되는 걸 막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달 27일, 굿네이버스는 ‘아동보호 통합지원 전문서비스 모형’ 개발에 대한 연구결과를 보고하는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했다. 연구 책임을 맡은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들이 가정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아동보호 통합사례관리 매뉴얼 및 상담원들이 학대 아동을 사례관리할 때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서비스 모듈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심리 상담 및 트라우마 치료 ▲원가정 보호 서비스 ▲가족 재결합 서비스 등 3가지 모듈로 이뤄져 있다. 이순기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연구소 부장은 “아동학대 특례법 이후 민간과 공공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아동보호체계 개선방안을 찾기 위해 2014년 10월부터 이듬해까지 진행한 연구의 후속단계”라며 “시범사업을 통해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재도출하려 한다”고 말했다.

◇시범 사업 결과, “현장 전문성 높아져” 긍정적 반응

이번에 개발된 모형의 효과성을 검증하기 위해 굿네이버스는 지난 4월부터 경기북부아동보호전문기관, 경기용인아동보호전문기관 등 4곳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상담원들이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전미선 서울동남권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상담원들이 가정방문을 한번 하더라도 단순히 이야기만 하다가 끝나는 게 아니라, ‘분노가 어떨 때 일어나세요?’ ‘몇 번 정도 화가 나셨어요?’ ‘이번 주 과제는 이렇게 해볼까요?’ 등 개발된 서비스 프로그램을 적용하면서 콘텐츠가 있는 상담이 가능해졌다”며 “전문적인 도구와 척도를 가지고 가니 전문가로서의 신뢰도가 올라간다”고 했다.

임광묵 전남중부권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기존에는 이미 발생한 학대 현장과 사례 판정이 1차 업무였다면, 지금은 이 가정과 가족구성원들이 가진 강점은 무엇인지, 응집력을 어떻게 발휘할지 등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협의점을 찾아갈 수 있게 됐다”며 “상담원과 가정의 동반자적인 관점이 생긴 게 가장 크다”고 했다.

◇제대로 된 적용 위해선 기반 갖춰져야

굿네이버스는 위탁운영 중인 아동보호전문기관뿐 아니라,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에도 이 모형을 추가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내년 4월까지 1년간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이후 1년 6개월 동안 추적기간을 거친다. 시범사업을 진행한 4개 기관과 시범사업을 진행하지 않은 3개 기관 등 총 7개 기관의 재학대율, 부모와 아동의 관계, 가족기능, 양육 스트레스, 분노 조절, 서비스 만족도 등 다양한 지표를 기준으로 효과성을 평가한다. 이순기 부장은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상담원의 경우 15가정(약 25 사례)씩 담당하기로 정했는데, 4개 기관 평균이 1인당 80~100사례 정도 됐다”며 “연구를 통해 상담원 1인당 적정 사례 양이나 집중도 역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진옥 굿네이버스 사무총장은 “전국 55개 아동보호전문기관 중에서 절반 이상인 27개를 담당하고 있는 굿네이버스를 시작으로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며 “정부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성공모델을 제안하고, 아이들이 학대받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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