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고, 걷고, 탐방하고”…몸으로 하는 기부가 뜬다 [2025 기부트렌드]

경험하는 기부, 움직이는 기부자
스스로 참여하는 ‘체험형 기부’ 인기

기부 문화가 변하고 있다. 단순히 돈을 내는 것을 넘어, 몸을 움직이며 기부를 ‘체험’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마라톤, 하이킹, 봉사활동 등 기부자가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이제 기부는 매달 자동이체되는 기부금을 넘어, 오감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활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지난 6일,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연세대학교에서 연 ‘기부트렌드 2025 컨퍼런스’에서도 이런 흐름이 강조됐다. 박미희 사랑의열매 나눔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기부 마라톤이 급증하면서, 사람들이 직접 몸을 움직이며 기부를 체험하고 있다”며 “함께 뛰는 기부자들과 현장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이 기부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직접 체험하는 기부가 뜬다

나눔문화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이런 흐름이 뚜렷했다. 기부트렌드 조사에 참여한 시민 패널 18명에게 앞으로 해보고 싶은 기부 방식을 물었더니, 응답자의 68.8%가 ‘참여형 기부’를 꼽았다.

‘기부런’(기부+마라톤) 열풍이 대표적이다. 최근 2년간 인스타그램에서 ‘기부’ 관련 해시태그와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한 키워드도 ‘기부런’과 ‘기부하이킹’이었다. 특히 기부마라톤은 기부단체의 전통적 모금행사를 넘어 사회적 유행으로 확산했다. 한국해비타트의 815런, 월드비전의 글로벌 6K, 굿피플의 에너지 히어로 레이스 등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기부 참여 모델로 주목을 받은 소규모 비영리 단체도 있다. 사단법인 ‘계단뿌셔클럽’은 이동 약자를 위한 배리어프리 정보를 제공하는 ‘계단정복지도’ 앱을 운영한다. 시민들이 직접 계단과 경사로 정보를 수집해 등록하는 방식이다. 매주 주말마다 2시간씩 산책하며 데이터를 모으는 이 활동에 지금까지 2500여 명이 참여했고, 수집된 장소 정보는 5만 8000곳에 달한다.

이대호 계단뿌셔클럽 대표는 “인지도가 낮은 단체가 대중을 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참여의 문턱을 낮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말에 봉사활동이나 공익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이 100명이라면, 재미있는 활동을 찾는 사람은 10만 명”이라며 “공익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골목탐방·맛집 찾기·사람들과 느슨하게 어울리기 같은 요소를 접목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계단뿌셔클럽은 정보수집을 봉사활동 대신 ‘정복활동’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 임직원 봉사활동, 강제 아닌 선택이 대세

참여형 기부가 확산하면서 기업 임직원들의 봉사활동 문화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처럼 일률적으로 동원되던 방식에서 벗어나, 개개인이 원하는 활동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형태가 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소셜액션 플랫폼 ‘베이크’와 세이브더칠드런과 협업해 임직원 사회공헌 플랫폼 ‘나눔&’을 운영 중이다. 직원들은 이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봉사활동과 기부 프로그램을 직접 선택하고, 심지어 새로운 활동을 제안할 수도 있다.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회사 차원의 사회공헌을 넘어 임직원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구조다.

박미희 사랑의열매 나눔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 2월 6일 진행된 ‘기부트렌드 2025 컨퍼런스’에서 올해의 기부트렌드를 설명하고 있다. /사랑의열매

게임 요소를 활용한 사례도 있다. 스마일게이트 희망스튜디오는 봉사활동을 레벨업 방식으로 운영한다. 박재희 희망스튜디오 CSR컨텐츠팀 팀장은 “임직원의 자발적 봉사 참여가 늘어나면서, 기부와 봉사를 보다 재미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개편했다”며 “참여할수록 경험치를 쌓고 레벨을 올릴 수 있도록 설계해 동기부여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한편, 현장에서는 정기 기부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은 기부 굿즈, 즉 ‘굿 굿즈(Good Goods)’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도 나왔다. 현재 많은 기부단체는 키링부터 자체 제작 팔찌, 주얼리 브랜드와 콜라보한 반지까지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런 굿즈는 기부의 문턱을 낮추고, 참여자에게 기부의 의미를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기부 굿즈가 본래 취지를 흐리고, 단순한 ‘소비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일부 캠페인에서는 아이돌이 홍보대사로 참여한 굿즈가 중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등, 기부보다 ‘수집’에 초점이 맞춰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박미희 연구위원은 “기부 굿즈가 기부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기부의 취지를 왜곡할 수 있다”며 “기부의 본래 취지가 퇴색되지 않도록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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