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책임 경영 잘하는 기업에 전세계 투자자 몰리는 이유

헤르메스자산운용 한스 허트 이사 인터뷰

헤르메스자산운용(이하 헤르메스)은 1983년 설립된 영국 최대 연기금인 브리티시텔레콤 연금(BTPS)의 자회사다. 301억파운드(약 54조5000억원)를 운용하는 초대형 펀드다. 삼성전자·현대차·한국전력·삼성정밀화학 등 국내 기업 주식도 약 1조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투자 대상을 정할 때 기업의 경영 상태뿐만 아니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분야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스 허트(Dr. Hans-Christoph Hirt) 이사는 헤르메스 내부의 ‘지배구조 개선 스페셜그룹 EOS(Equity Ownership Services)팀’의 글로벌 기업지배구조 및 주주관여 총책임자다. 세계지배구조개선네트워크(ICGN)·UN PRI(책임투자원칙) 위원으로 10년 넘게 사회책임투자 분야에서 활약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최근 방한한 그를 만나,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자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준칙) 도입을 둘러싼 글로벌 트렌드에 대해 들었다.

헤르메스자산운용 한스 허트 이사
헤르메스자산운용 한스 허트 이사

 

-최근 한국에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다. 영국, 일본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있다고 들었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주인의식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와 자기 소유 집을 비교해보라. 내 집이라면 그만큼 소중히, 깨끗하게 관리하지 않겠나. 투자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지분 없이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오너들이 상당수다. 그런 만큼 해당 기업의 주식을 가진 투자자라면, 주인의식을 가지고 관심있게 지배구조를 들여다보고,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렇게 중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기관투자자들이 많아질 때 기업의 책임의식이 강화되고 지속 가능한 시장 구조가 만들어진다. 책임투자에 대한 관심이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는 것도 그 이유다. 현재 태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대만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위해 자문 역할을 하고 있는데, 대만에선 3월 내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시행될 예정이다. 홍콩 역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최소 아시아 5개국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정될 것으로 기대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야만 효력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선 500조원을 운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에 소극적이고, 기업들의 반발도 높다. 2010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최초로 시행한 영국엔 이러한 어려움이 없었는가.

“영국에선 반대가 없었다. 말레이시아 역시 투자자들의 논의가 성숙된 단계에서 도입됐기 때문에 사회적 반감이나 별다른 마찰이 없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재벌가 오너의 판단이 투자에 큰 영향을 미치고 기업의 방향성을 좌우하는 리스크가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업 경영 상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오해도 있더라. 기업이 장기적으로 투자를 많이 받고 지속 가능하려면, ESG를 고려한 공급망(Supply chain)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2013년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공장 붕괴로 1300여명의 노동자가 사망하자, 해당 공장으로부터 대량의 옷을 납품받던 월마트가 지탄을 받았다. 이에 헤르메스 EOS는 월마트와 만나 공급망 및 지배구조 개선을 제안했고, 이듬해 월마트는 방글라데시의 공장 직원 및 이해관계자들을 직접 만나는 등 지속적인 공급망 관리와 환경 개선을 시작했다. 이러한 월마트의 노력은 기관투자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사회책임지수가 높은 기업에 투자하면 실제로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가.

“기업의 ESG를 장기적으로 고려한 투자가 좋은 성과를 기록한다는 건, 이미 수많은 연구 자료나 통계 데이터를 통해 증명됐다. 폴크스바겐의 경우 2006년부터 오너에 의해 경영이 좌지우지되고 감독이사회가 경영이사회를 전혀 견제하지 못해, 지배구조에 빨간불이 켜진 기업 리스트에 항상 이름을 올렸다. 이에 헤르메스도 폴크스바겐 주주총회에 참석해 문제 제기와 경고를 한 바 있다. 알만한 투자자들은 이러한 리스크가 수익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견해 일찍부터 자금을 뺐다. 반대로 세계적인 당뇨 치료제 전문회사인 덴마크 노보노디스크와 유니레버는 CEO가 장기적으로 ESG를 중요한 요소로 보고 이를 비즈니스에 적용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SRI(사회책임투자) 수익률 리서치만 봐도 두 기업의 재무 건전성과 수익률이 좋은 걸 알 수 있다. ESG가 좋은 기업에 투자자들이 장기 투자를 한다.”

-폴크스바겐 연비 조작 사건과 관련, 미국(-24.7%), 영국(-20%), 일본(-32%)과 비교했을 때 한국에서는 오히려 판매량이 60%나 늘었다. 기업의 책임경영을 높이려면 소비자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다.

“일단 매달 내는 국민연금에 관심을 더 가져보라. 은퇴 후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연금을 받으려면, 국민연금이 40년 후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기업에 투자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시민들은 국민연금이 기업의 눈치를 보거나, 눈앞의 성과만 좇지 않도록 감시하고 영향을 미쳐야 한다. 2010년 세계 1위 아이폰 위탁 제조업체인 대만의 폭스콘 직원들이 연이어 자살하자 소비자들이 애플에 문제 제기를 했고, 이에 애플이 폭스콘의 근로자 환경 개선과 공급망 관리에 들어간 바 있다. A사 제품과 B사 제품 중 어떤 걸 살지 고민할 때, 어떤 기업이 더 인권과 환경을 생각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지를 고민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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