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준비청년이 직접 말하는 보호대상아동 지원 방향
늘어나는 학대 경험 아동, 특수 지원 필요해
“아동에게 성장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녹아들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보호대상아동들이 성장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이유는 올바른 길잡이가 없거나, 길잡이가 있더라도 스스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본아이에프 와이피센터에서 열린 ‘보호대상아동의 온전한 성장과 자립을 위한 아이들의 골든타임’ 포럼에서 배홍범 자립준비청년이 이렇게 말했다. 이번 포럼은 희망친구 기아대책이 주최하고 아동권리보장원이 후원한 행사로, 보호대상아동이 정서·사회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보호대상아동은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가 아동을 키우기에 적당하지 않은 경우, 부모가 양육 능력이 없는 상황에 놓인 아동을 뜻한다.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지내는 보호대상아동은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되면 홀로서야 하는 자립준비청년이 된다.
◇ “특수 욕구 아동에 맞춘 전문 지원 시급”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로서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마이리얼멘토단으로 활동하는 배홍범 청년은 자신의 청소년기 경험을 바탕으로 보호대상아동이 제때 정서·심리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지원 방향을 제안했다.
배 청년은 “어릴 적 주변 상황과 어른들에 의해 좌절했던 축구선수와 가수의 꿈을 대학생이 돼서야 비로소 실현할 수 있었다”며 “무대를 망치는 등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도 있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좌절을 극복하는 법과 집단에 스며드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사회적 성장의 경험이 보호대상아동들에게도 주어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같은 멘토단의 윤도현 청년은 경계선 지능, ADHD, 발달장애 등 특수 욕구를 가진 보호대상아동들에게 전문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아동생활시설에 머무는 아동 중 41.9%가 ADHD, 경계선 지능, 지적장애 등을 판정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윤 청년은 “학대 경험으로 특수 욕구를 가진 아동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들에게 자립에 필요한 생활 기술을 이론적으로 교육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계선 지능을 가진 한 자립준비청년이 명의도용이 불법임을 알지 못하고 지인에게 명의를 빌려줬다가 범죄에 연루돼 경제적 손해를 본 사례가 있다”며 “아동기에 맞춤형 지원이 있었다면 이러한 어려움을 더 잘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수 욕구를 가진 보호대상아동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심리적 지원과 타인과 소통하는 기술을 익힐 기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문해력 격차, 생애 전반에 영향 미친다
이날 포럼에서는 보호대상아동의 문해력 교육 필요성도 논의됐다. 2022년 수도권 6개 아동양육시설의 초등학생 118명을 대상으로 기초 문해력 수준을 조사한 결과, 71%가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를 수행한 김중훈 다양한학습자를위한 대표는 “문해력은 소득과 직결되며, 생애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조기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OECD에 따르면 문해력이 높은 성인은 그렇지 않은 성인보다 시급은 60%, 취업 가능성은 2배 이상 높다. 김 대표는 실제로 한 보호대상아동 중학생이 한글을 거의 읽지 못하던 상태에서 1년 만에 문장 단위로 글을 읽는 수준까지 발전한 사례를 언급하며, 꾸준한 문해력 교육이 아동들의 자존감과 학습 태도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이힘찬 순천SOS어린이마을 사회복지사는 기아대책의 보호대상아동 기초문해력사업에 참여한 후기를 나눴다. 이 사회복지사는 “한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한글을 제대로 익히지 못해 스스로를 ‘바보’라고 표현하며 자존감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글을 읽거나 써야 하는 단체활동이 있으면 자리를 피하곤 했지만, 꾸준한 문해력 수업을 통해 지금은 서툴지만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며 변화를 전했다.
또한 그는 “문해력 수업이 단순히 학습 성과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이 자기주도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창남 희망친구 기아대책 회장은 “학대, 유기, 가정해체로 보호시설에 입소한 아동들에게 초기 개입이 필수적이지만, 현재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아이들의 성장 격차를 줄이기 위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전방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