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해법] 스토킹처벌법 시행 3년
직장 내 젠더폭력 감소 방안
오늘(10월 21일)은 스토킹처벌법(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3주년이 된 날이다. 스토킹처벌법이 2021년부터 시행됐음에도 직장 내 스토킹을 경험한 직장인 비율은 오히려 작년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가 올해 2분기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4년 직장 내 스토킹 경험률은 10.6%로 작년(8%)보다 높았다. 첫 조사를 시작한 2022년과도 크게 차이가 없는 수치다. 여성의 68.5%, 남성의 48%는 “스토킹처벌법 이후 직장에서 스토킹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답했다. 법이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021년에 스토킹처벌법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스토킹은 경범죄인 ‘지속적 괴롭힘’으로 분류됐다. 처벌도 10만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과료에 불과했다. 법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스토킹범죄자에게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판결을 내릴 수 있게 됐다.
2022년 한 여성이 일터에서 스토킹 행위자인 전 직장동료에게 목숨을 잃은 전주환 사건(신당역 사건) 이후 2023년 7월부터 스토킹방지법(스토킹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도 시행됐다. 지자체에 피해자 법률구조와 주거 지원 등을 제공할 책임이 생겼다. 피해자가 합의하면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반의사불벌죄’ 조항 또한 함께 폐지됐다. 숱한 제도적 변화가 있었음에도 직장 내 여성들은 여전히 스토킹을 비롯한 젠더폭력 속에 놓여있다는 지적이다.
◇ 10명 중 1명 스토킹 피해 경험 有, 스토킹처벌법 ‘유명무실’
직장갑질119와 아름다운 재단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올해 5월 31일부터 6월10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성범죄 피해 경험을 조사한 결과 10.6%가 직장 내 스토킹을 경험했다. 피해자 중 1년 이내에 스토킹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작년 15%에서 올해 16%로 큰 변화는 없었다.
직장인 10명 중 4명 꼴로 ‘법의 존재를 모른다’고 응답했다. 스토킹처벌법 시행을 아는 직장인은 62.8%, 후속법인 스토킹방지법을 아는 직장인은 절반(51.6%)에 그쳤다. 스토킹처벌법의 효과를 체감하는 직장인은 더욱 적었다. 직장인 중 ‘법이 시행된 이후 직장에서 스토킹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41.8%였다. 노동자가 사회적 약자일수록 법의 체감효과는 더욱 낮아진다. 남자 상용직은 53.7%가 법의 효과를 체감하지만, 여성 비상용직은 30.2%만이 시행 이후 변화가 있다고 응답했다.
법이 유명무실하다 보니 ‘직장 내 스토킹 사건’은 되풀이되고 있다. 올해 원주에서는 직장 여성동료의 차량을 담뱃불로 지지고 발신자표시번호제한으로 전화를 걸며 스토킹한 남성이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사업장에서 스토킹 범죄가 일어났을 때 피해자가 요청하는 경우에 근무 장소 변경, 배치 전환 등 조치를 할 수 있다. 다만,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것은 사용자의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것이 한계로 지적된다.
◇ 직장 내 성폭력 신고 7.6%에 불과…일터에서 밀려나는 여성들
스토킹 이외의 젠더폭력도 심각하다. 직장에서 성희롱을 경험한 비율은 22.6%다. 성추행·성폭행 경험률은 15.1%인데, 남성(10.6%)과 여성(19.7%)의 경험률이 2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가해 성별은 남성 피해자의 경우 동성이 38.5%, 여성 피해자는 이성이 80.8%일 정도로, 남성 가해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이다. 이를 두고 김세정 노무법인 돌꽃 노무사는 “직장 내 젠더폭력은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를 기반으로 한다”며 “여성이 비정규직일 경우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중 회사나 기관에 신고한 비율은 7.6%에 불과했다. 회사를 그만둔 남성 비율은 6.3%였지만, 여성은 19.2%로 세 배 이상 높았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 중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가 절반 이상(53.6%)을 차지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성희롱 피해자나 신고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인사 등 불이익을 당할까 봐 신고하지 못했다는 응답은 26.6%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제도를 실효성 있게 정비해 직장 내 젠더폭력을 예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일터에서 여성들이 사라진다’ 토론회에서 김세정 노무사는 “(젠더폭력) 제도 시행에 대한 관리 감독과 위반 시 제재를 강하게 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비롯한 법정 의무교육을 강화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며 정부 부처 인력 충원과 예산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안전휴가법’ 제정을 건의했다. 젠더 폭력 피해자가 상담, 재판 출석 등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선 해고의 불안 없이 직장을 잠시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허민숙 조사관은 “젠더폭력이 여성의 업무 생산성을 떨어뜨려 능력 상실, 해고 등으로 이어져 피해자의 빈곤을 초래할 수 있다”며 “직장 내 젠더폭력이 근로자에게 어떤 부정적 효과를 주는지 데이터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은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고용상 성차별 신고나 시정신청을 처리하는 고용노동부와 노동위원회 근로감독관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기관 모두 접수된 사건을 인정하는 비율이 10건 중 1건 안팎인데, 이는 근로감독관의 성 인지 감수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정숙 고용노동부 여성고용정책과장은 “직장 내 성희롱을 할 경우 과태료를 물리는 대상을 사업주에서 법인 대표자까지 넓히는 법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법안은 고용노동부가 작년에 정부 입법으로 추진됐지만 21대 국회가 종료되며 폐기됐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yevi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