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공익신탁 사례들
올해 3월 공익신탁법을 제정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영국 등 선진국의 공익신탁 역사는 100년을 훌쩍 넘어선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연보호 민간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 (National Trust)’는 1895년 영국 전역의 문화재 관리를 위해 설립된 국민 공익신탁이다. 3명으로 시작된 소규모 신탁은 현재 영국 국민 약 360만명이 가입할 정도로 확대됐다. 내셔널트러스트는 신탁으로 모인 재정을 활용해 자연 및 문화유산을 보전한다. 이 신탁의 핵심은 ‘시민 참여’에 있다. 시민들은 연간 60파운드(약 10만원)의 일반회원권 구입부터 고액 기부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신탁에 가입할 수 있고, 참여자는 지역 문화재 관리 및 보존활동·문화재 알리기 캠페인 등 폭넓은 활동을 펼친다. 내셔널트러스트는 신탁을 통해 확보한 문화재를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해, 시민들이 문화재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 존 레넌 저택, 포이스 성, 틴츠필드 저택 등 영국의 문화재 약 350개가 이에 포함되고, 연간 방문객 약 1700만명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 투자를 통해 사회적 기업을 돕고 수익을 내는 공익 신탁도 있다. 영국의 사회적 투자 단체 ‘FSE그룹(FSE Group)’과 ‘소셜 파이낸스(Social Finance Ltd)’는 사회적 성과 벤처 캐피털 신탁(Social Impact Venture Capital Trust)을 설립해 사회적기업들의 재정을 지원한다. 신탁 가입자들은 투자를 통해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고 배당금을 통해 수익을 낼 수도 있다. 또한 영국 정부의 사회적 투자 지원 정책을 통해 신탁 가입자는 소득세, 양도소득세 등의 세금을 감면받는다. 투자자들은 투자 과정과 투자비 사용 현황을 살펴볼 수 있어 자신이 낸 기금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 볼 수 있다. 매년 약 2000만파운드(약 360억원) 규모의 금액이 사회적 투자를 위해 쓰이고 있다.
개인 공익 신탁이 대규모 자선단체로 발전한 사례도 있다. 1953년 미국의 석유 부호 진 폴게티는 자신의 이름을 딴 ‘폴게티 신탁(J Paul Getty Trust)’을 설립했다. 미술관 설립, 미술품 보존 활동으로 시작된 개인 신탁은 시간이 흐르면서 공익신탁으로 거듭났다. 진 폴게티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신탁 관리자(Trustee)들은 ‘세계 미술계의 발전’을 목표로 미술가 후원, 교육 프로그램, 미술품 복구, 무료 전시 등 다양한 자선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많은 고액 기부자가 이러한 활동에 감명을 받아 거액을 투자해, 폴게티 신탁은 자산 규모 약 110억달러(약 13조원)에 이르는 자선단체로 성장했다. 현재 폴게티 신탁은 재단, 연구기관, 문화재 복구센터 등 다양한 산하기관을 운영하고 있고, 기부금 및 자선활동비로 매년 약 56억달러(6조5천억원)를 지출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1986년, 자산가들이 신탁을 통해 고액기부 및 사회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자선잔여신탁(Charitable Remainder Trust), 자선수익신탁(Charitable Lead Trust) 등의 다양한 공익 신탁제도를 도입했다. 고액 기부자들은 재산을 신탁기관에 이전하고 매년 연금 형태로 수익을 받거나, 보유 재산에서 창출되는 모든 수익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신탁을 통해 기부한 금액에 비례해 소득세 및 상속세를 감면해주는 파격적인 혜택을 주고 있다. 제도 도입 이후, 재정적 어려움을 겪던 많은 비영리기관이 재원 확보를 할 수 있게 되어, 비영리 섹터의 폭발적 성장도 이끌었다. 특히 폴게티 신탁(J Paul Getty Trust), 뉴욕 커뮤니티 신탁(The New York Community Trust) 등의 신탁 기구는 자산 규모 1조원 이상의 대규모 공익 신탁으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