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지능 아이들 위한 ‘이루다학교’ ‘예룸예술학교’
다문화 2세 위한 ‘한국다문화학교’ ‘자이언국제학교’
‘딩동’ 벨이 울리자 아이들의 눈이 화면으로 쏠렸다. 대기 번호표와 화면 속 숫자를 비교하느라 아이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64번 고객님, 이쪽으로 오세요.” 은행 직원의 말에 동호(15)군이 창구 앞으로 뛰어나갔다. “저금하려고요.” 동호군이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일산. 경계선 지능 아이들을 위한 국내 최초 대안학교 ‘이루다학교’ 학생들이 은행 현장 학습에 나섰다.
◇경계선 지능 아이들의 새로운 배움터… ‘이루다학교’·’예룸예술학교’
경계선 지능이란 지적장애 등급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정상 범주보다 지능이 조금 낮은(지능지수 71 이상 84 이하) 경우를 말한다. 장애로 인정받기도 어렵고 사회 적응도 쉽지 않다. 전체 인구의 약 6~7%가 경계선 지능을 가졌지만, 이들만을 위한 맞춤형 교육과 지원은 전무한 수준. 15년간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기주현(42) 이루다학교 대표가 이들을 위한 대안학교를 설립한 이유다. 자녀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부모들이 온라인 카페에서 정보를 나누던 것이 점차 몸집이 커졌다. 14가족이 주말학교를 운영하면서, 5년 동안 경계선 아이들을 위한 지도 방법을 함께 연구했다.
아이들의 변화를 몸소 체험한 부모들은 자발적으로 가족당 500만원씩 초기 투자금 7000만원을 모아 지난해 3월 ‘이루다학교’의 문을 열었다. 11세 이상 경계선 아동들이 이곳에서 9년간 생활 밀착형 교육을 받는다. 요리 수업을 할 땐 원하는 재료를 마트에서 장 보고, 모형 화폐로 환전·계산 연습을 한 뒤 은행에서 실습한다.
매주 금요일엔 공공기관·우체국·도서관 등 지역으로 나가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소통한다. 교사 1명당 학생 6명을 담당하고, 과목마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춰 분반 수업을 진행한다. 그럼에도 매월 수업료는 60만원(입학금 500만원). 여타 사설기관 수업료의 60%에 불과하다. 첫해 8명이었던 학생이 1년 새 21명으로 늘고, 주말학교는 대기자가 넘칠 정도로 입소문이 퍼졌다. 기 대표는 “이루다학교 교사는 특수 교사와 교사자격증을 가진 경계선 아동의 부모로 구성되고, 입학 설명회 땐 이루다학교 학부모들이 모두 나와 달라진 자녀들의 사례를 공유한다”며 “이루다학교는 교사와 부모가 함께 만들어가는 대안학교”라고 강조했다.
올해 3월엔 경계선 지능 청소년(중학교 1~3학년)을 위한 국내 최초 예술대안학교가 서울 노원구에 둥지를 틀었다. 2015년 서울시 주민참여 예산사업에 선정돼 설립된 ‘예룸예술학교(이하 예룸학교)’는 음악·미술·무용·연극 등 순수예술 중심의 교과 수업으로 경계선 청소년들의 소질과 적성을 개발하는 대안학교다. 댄스시어터샤하르(DTS)의 예술감독이자 20년 넘게 무용계에서 활약해온 지우영(47) 대표가 학교장을 맡았다. 지 대표는 “아들이 7세 때 자폐 진단을 받은 후부터 관심이 많았다”며 “경계선 아이들이 ‘예술가’란 칭호를 받으면서 자존감이 높아진 사례들을 대안학교에 접목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독일 국립 오페라단 출신의 대학교수가 합창·합주 수업을, 세계디자인대회 금상 출신의 디자인학과 교수가 ‘창의적 표현’ 수업을 맡는 등 예술학교답게 쟁쟁한 예술 전문가들이 모였다. 재능을 보이는 경계선 청소년들은 방과 후 전문가에게 일대일 전문 레슨을 받는다. 실제로 수업 중 절대음감을 발견한 형찬(15)군은 전문 작곡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3월 문을 열자마자 20명 정원이 꽉 찼고, 대기자도 수십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다문화 2세들의 강점 찾기… ‘한국다문화학교’·’자이언국제학교’
다문화 대안학교 모델도 눈길을 끈다. 2013년 스리랑카 한국인 가정의 2세가 백상예술대상 최연소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영화 ‘리틀 마이 히어로’에서 활약한 아역배우 지대한(14)군 이야기다. 지군이 배우의 꿈을 키울 수 있었던 건 그의 강점을 키워준 한국다문화학교의 특별한 교육 덕분이었다. 한국다문화학교는 다문화 2세를 위한 문화예술·다문화 창조성·다중언어 등 맞춤형 교육을 진행하는 대안학교다.
20년간 이주노동자들 인권을 위해 뛰어온 박천응(54) 안산이주민센터 대표가 다문화 2세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 2011년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대안학교를 설립한 것. 박 대표는 “국내에 다문화 미취학 아동 시설은 많지만 초·중학교 학생들을 위한 대안 교육 현장이 부족했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한국다문화학교에선 개별 상담과 생활 케어는 물론, 모든 과목을 7~8명씩 모둠 수업으로 진행해 학생 35명 강점을 키우는 맞춤형 교육이 진행된다. 3년 전엔 청소년 합창단도 꾸렸다. 남대문 재건 행사 등 공식 공연에 초청받을 정도로 활약 중이다.
2012년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에 문을 연 자이언국제학교는 필리핀·인도·남아공·네팔 등 다양한 국적의 아동 20명이 교육받고 있다. 학교를 중도에 포기하거나, 타의에 의해 입학을 거부당한 아이가 대다수다. 최혁수 자이언국제학교 교장은 “한국어도 가르치지만 언어 장벽에서 오는 학업 스트레스를 줄이고, 학교를 다니는 도중 본국에 가더라도 학업이 끊기지 않도록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된다”면서 “미국 교육 커리큘럼을 수료한 학생으로 인증돼 추후 해외 대학 진학에도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인도, 아프리카 등 해외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외국인 교사들이 이곳의 선생님이다. 모든 수업은 토론 중심으로 이뤄진다. 매주 금·토요일엔 안산 지역에 살고 있는 10개국 다문화 2세 58명이 모여 축구 경기도 한다. 특히 자이언국제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학비를 내지 않는다. 일반 국제학교가 수천만원 학비를 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운영비는 모두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최 교장은 “외모, 국적에 상관없이 공평하게 행복하게 교육받는 내일을 꿈꾼다”며 미소를 지었다.
정유진 기자
오민아 인턴기자
송선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