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기부 트렌드 전망 <5·끝>
비영리단체가 흩어지는 기부자들을 모으고, 기부 문화를 확산할 수 있는 열쇠는 무엇일까. 갈수록 개인화되고 있는 기부자의 취향을 만족시키고, 기부자들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의 활동을 어떻게 촉진할 것인지에 성패가 달려있다. 이 과정에서 블록체인, 암호화폐,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 토큰) 등 신기술이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블록체인, 암호화폐, NFT… 비영리단체가 신기술을 활용하는 방법
블록체인은 기부의 투명성을 높이는 핵심 기술로 꼽힌다. 블록체인에 저장된 정보는 변경할 수 없고, 열람이 가능한 장부에 사용내역이 기록돼 기부금의 모든 이동경로를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 블록체인 기반의 기부 플랫폼인 ‘체리’는 2019년 론칭한 이후 지금까지 누적 기부금이 120억원을 돌파하며 성장하고 있다.
미국 블록체인 기반 모금 플랫폼 더기빙블록(The giving Block)이 펴낸 2024 암호화폐 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비영리단체들은 암호화폐 기부를 통해 젊고 새로운 기부자를 참여시키며 다양한 모금을 시도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더기빙블록의 2022년 가상자산 기부액은 1억2500만달러(한화 약 1670억원)를 넘어섰고, 1000곳이 넘는 비영리단체가 참여했다.
국내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 3월,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두나무와 함께 진행한 튀르키예 지진 피해 복구 캠페인이다. 기부 캠페인 시작 일주일 만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이용자 276명이 참여해, 약 2억원의 성금이 모였다. 업비트 이용자가 기부한 금액에 두나무가 추가로 기부금을 더하는 방식으로 총 14비트코인(당시 기준 약 4억4000만원)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당시 구호 모금 현황을 두나무 메타버스 플랫폼 ‘세컨블록’을 통해 공유하며, 기부자들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업비트는 기부에 동참한 이용자에게 감사의 의미로 기부를 증명하는 NFT를 제공했다.
디지털자산기부연구회의 리더인 홍원준 한양대 필란트로피 커뮤니케이션 전공 박사는 “암호화폐 등에 익숙한 젊은 층을 새로운 기부자로 동참시키고 기부문화를 확산하기 위해서라도 비영리단체가 혁신 기술의 언어를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면서 “이들은 기부 이후의 변화 등 정보의 투명성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블록체인 기술 등이 유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각자가 관심 있는 사회문제에 대한 NFT를 발행하는 등의 방식으로 기부 커뮤니티를 만들면 젊은 기부자와의 지속적인 관계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도주의 지원의 속도를 높이고, 수수료 부담 줄일 수 있어
암호화폐 기부가 인도주의적 지원의 속도를 높이기도 한다. 1945년 미국에서 설립된 글로벌 인도주의 비영리단체인 CARE(Cooperative for Assistance and Relief Everywhere)는 “재난, 전염병, 분쟁 등 복잡하고 파괴적인 긴급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암호화폐 기부를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CARE는 2022년 디지털 자산 결제 솔루션 기업인 우모자 랩스(Umoja Labs)와 협력해 에콰도르의 포르토비에호(Portoviejo)와 만타(Manta) 지역에서 첫 블록체인 기반 인도주의적 원조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했는데, 성폭력 생존자, 여성 가장, 성노동자, 난민 등 취약한 상황에 있는 사람 1만여명을 대상으로 성 건강 서비스(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SRH)를 제공했다. 이들은 우모자(Umoja)를 통해 100달러에서 150달러 사이의 금액이 충전된 암호화폐를 받고, 이를 약국, 보건소 등 지역 서비스 제공업체에서 사용하는 구조다. 현지 서비스 제공업체는 받은 암호화폐를 현금화해 사용한다.
CARE는 “암호화폐 등 디지털 바우처를 사용하면 서비스 제공업체에게 지불 시간을 30일 이상에서 일주일 미만으로 대폭 줄일 수 있다”면서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는 업체들에게 자금을 긴급하게 수혈해 지역 경제의 회복까지 도울 수 있었다”고 성과를 설명했다.
국경 간 자금 이체 속도 증진과 수수료 절감도 가상자산 기부의 장점으로 언급된다. 전자지갑으로 직접 전송되는 블록체인 이전 방식은 기존 해외 송금보다 빠르며, 비싼 수수료에 대한 부담도 사라진다는 것. 국내 블록체인 행사 ‘업비트 D 컨퍼런스(UDC) 2023’에서 정호윤 월드비전 팀장은 “(모금 시장에서 발생하는) 환차손만 수십억”이라며 “이것만 줄여도 나라 하나를 살릴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국내는 가상 자산이 기부 수단으로 자리 잡으려면 적극적인 정책적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입을 모은다. 가상 자산 현금화에 대한 명확한 회계 기준이나 가이드가 없다는 것이다. 2025년부터 가상 자산에 대한 세금 부과가 예고된 만큼, 올해는 가상 자산에 대한 기부 정책 및 기준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김경하 더나은미래 기자 noa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