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살해범에 징역형 집행유예
양형 기준 없어 판결 들쑥날쑥
美 최대 징역 7년, 佛선 벌금 1억원
잔혹한 동물학대 범죄에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면서 국내 양형 기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최대 7년, 벌금 1억원까지 선고될법한 사건에 우리나라 법원에서는 집행유예에 그치는 판결이 반복된다.
부산지방법원 형사5단독 재판부는 23일 고양이를 잔인하게 살해한 피고인 조모씨에게 집행유예 2년, 징역 8개월, 벌금 200만원,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했다. 동물학대 행위를 조장하는 채팅방을 개설하고 운영해온 백모씨에게는 벌금 200만원을 부과했다. 같은 사건이 미국에서 벌어졌다면 피고인은 최대 징역 7년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동물권 단체들은 “해외에 비해 국내 처벌 수위가 약해 잔혹한 동물학대 범죄가 계속되고 있다”며 “양형 기준을 마련해 형량 선고에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학대 사건은 세간에서 ‘제2의 고어전문방’으로 불렸다. ‘요원M’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백씨는 작년부터 고양이 학대 과정을 촬영해 공유하는 오픈채팅방을 직접 개설해 운영했다. 채팅방 참여자들이 학대 영상물을 공유하도록 부추긴 것은 물론, 디스코드·텔레그램 등 익명성이 높은 채팅방을 활용해 학대 행위를 이어가도록 권유했다. 이 채팅방에 있었던 조씨는 ’고양이를 목졸라 죽인다‘는 뜻의 약자인 ‘고목죽’ 닉네임을 사용했으며, 실제 맨손으로 고양이를 목 졸라 살해한 뒤 그 과정을 촬영해 채팅방에 공유했다.
최민경 카라 정책변화팀장은 “국내에서는 무고한 동물을 살해해도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 선고를 받는다”며 “온라인을 통해 동물학대 영상이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으나 플랫폼 운영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선 동물학대를 중범죄로 규정한다. 미국에선 ‘형법’과 ‘동물복지법’을 근간으로 동물학대 행위를 금한다. 형법 제48조는 포유류·조류·파충류·양서류를 죽이거나 상처 입히는 등 고의로 동물을 학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학대 행위에는 동물학대 영상을 제작하거나 배포하는 행위가 포함된다. 이를 위반하는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한다. 법원은 징역과 벌금을 병과할 수도 있다.
프랑스는 지난 2021년 ‘동물학대 방지 및 동물과 인간의 관계 강화를 위한 법률’을 제정해 동물을 학대한 자에게 징역 3년 혹은 벌금 4만5000유로(약 6400만원)를 선고한다. 동물을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 최대 징역 5년 혹은 벌금 7만5000유로(약 1억원)가 부과된다. 또 이 법에 따라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동물 소유를 금지하는 부가형을 받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동물보호법’에 따라 동물학대 행위자에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문제는 양형 기준의 부재로 형량이 들쑥날쑥하다는 점이다. 법관은 형사재판에서 형을 정할 때 양형 기준을 참고하는데, 동물학대의 경우 양형 기준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수사기관과 법원의 재량에 따라 형량의 편차가 크다.
지난해 1월 카카오톡 오픈채팅에 다수의 동물을 살해하고 참수하는 사진과 영상을 게재한 이씨에게 1심은 집행유예 2년, 징역 4개월,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이번에 발생한 ‘제2의 고어전문방’ 사건과 내용은 동일하지만, 형량과 처벌 수위는 차이를 보였다. 윤성모 카라 정책행동팀 활동가는 “결국 판사가 동물학대 사건에 얼마나 관심이 있느냐가 형량을 좌우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영국·미국 등에서는 양형 기준을 마련해 동물학대범죄 형량 선고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한다. 지난 2021년 영국은 동물 대상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 조정안을 마련하고, ‘동물복지법(Animal Welfare Act)’을 위반할 경우 최대 5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처벌 수위를 높였다. ▲범죄 죄질과 유형 ▲감경·가중 요인 ▲보조 명령 ▲법률 점검 등을 고려해 양형을 결정한다.
미국은 각 주(州)마다 양형 기준을 설정해 범죄 심각도와 전과 여부 등에 따라 형량을 정한다.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