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루트릭스 안정록 대표, 김유겸 이사
“앞마당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고 가정해 볼게요.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나무 가격이나 품질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수목 데이터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은 탓이 커요. 그러다보니 진입장벽도 높아지는 거죠. 수목 정보를 대량으로 수집하고 공개해 더 많은 사람이 쉽게 나무를 접할 수 있는 수목 거래 환경을 만들고 있어요.”
지난달 13일 만난 루트릭스의 안정록(32) 대표는 “지난 1년 동안 직원들과 전국을 돌며 나무 농가를 방문했다”고 말했다. 직접 나무의 규격, 높이를 입력하고 루트릭스만의 기술로 이미지를 촬영해 데이터베이스에 업로드했다. 기존에는 수목 공급자가 수기로 나무에 대한 정보를 일일이 기입해야 했다. 정보를 취합할 때 통일된 기준이 없다 보니 이렇게 모은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기도 어려웠다.
루트릭스는 1만평 기준으로 평균 4.4일이 걸리던 수목 데이터 수집 기간을 무려 16분으로 단축했다. 수목 구매를 원하는 소비자는 검색 필터를 활용해 빠르고 정확하게 원하는 조건의 나무를 찾을 수 있다. 루트릭스는 2021년 창업 이후 2개월 만에 퓨처플레이·소풍벤처스로부터 시드 투자를 받았다. 안정록 대표와 김유겸 이사(30)를 서울 강남구 루트릭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안 대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궁극적으로 기후위기 해결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20대 시절 중장년층 문화로 여겨지는 조경 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김유겸=조경은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조경을 통해 도심에서도 자연공간을 향유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 조경에 대한 정보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대중에게 수목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해서 조경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자연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싶었다.
안정록=미국이나 유럽은 조경 선진국이다. 비결은 ‘유지관리’에 있다. 미국에서는 조경 작업 후에 식물 데이터를 활용해 꾸준히 관리한다. 한국은 구축된 수목 데이터가 없어서 나무가 오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거나 체계적으로 관리하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왜 수목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나.
안정록=예를 하나 들겠다. 과거에는 브랜드 청바지가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웠다. 동대문에 가도 원단이나 가격에 대해 잘 모르니까 바가지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원하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면서 국내 의류 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다. 수목 데이터가 구축되면 정보를 비교하면서 소비자가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조경 시장이 성장하려면 더 많은 사람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에는 공개된 조경 정보가 별로 없다.
김유겸=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보가 없으니 선뜻 수목 거래를 할 마음이 안 든다. 왠지 비싸게 파는 것 같고, 판매자를 신뢰할 수가 없는 거다. 소비자가 없으니 수목 시장 규모는 자꾸 작아진다. 이런 문제 때문에 팔리지 않고 죽는 나무가 엄청 많다. 좋은 나무가 쑥쑥 자라지 못하고 방치되면 결국 손해 보는 건 대중이다. 정보 공개만으로 더 많은 사람이 자연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본다.
-루트릭스에서 개발한 기술은 어떤 건가.
김유겸=미국, 유럽 등 조경 선진국에서는 라이다(LiDAR) 처리 기술과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해 산림 조사를 한다. 드론이나 비행기로 산림을 촬영해 어떤 나무가, 얼마큼 있는지 파악하는 기술이다. 그런데 이 기술만으로는 나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얻을 수 없다. 자연에서는 나무가 빽빽하고 불규칙한 간격으로 자라기 때문이다. 루트릭스에서는 두 기술을 국내 수목환경에 맞게 개발했다. 같은 종류 나무를 일정한 간격으로 심는 나무 농가에 적용하니 나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수목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김유겸=나무를 구매한 경험이 없던 사람들이 루트릭스를 통해 수목 시장에 많이 유입된다. 루트릭스에서는 고객 눈높이에 맞춰 나무를 추천해주고, 나무 거래 후 유지관리까지 도와준다. 나무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던 사람도 ‘나무를 키울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안정록=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나무를 키우면 결국 나무가 죽는 경우가 많다. 나무가 잘 자라는 데 필요한 기후, 토질 정보와 5년 후 10년 뒤의 생장 예측 정보도 알려 드린다. 고객들이 나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더 커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수목 데이터는 기후위기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고.
안정록=도심에 있는 나무의 지름 등을 측정해 기록해두면 그 나무가 탄소를 얼마나 흡수하는지 알 수 있다. 도심 조경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은 이미 도심에 있는 나무 지름을 측정해서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한다. 지름이 두꺼운 나무가 탄소를 더 많이 흡수한다. 수목 데이터를 구축하면 산림연구나 기후위기 대응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김유겸=나무 가치를 미적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게 아니라, 실제 효용가치에 따라 평가할 수 있게 된다. 그럼 도심지로 환경에 도움이 되는, 더 좋은 나무를 가져올 수 있다. 잎의 상태, 흉고직경(사람의 가슴 높이 부근에서 잰 나무 지름) 등에 따라 건강한 나무를 구분할 수 있는데, 이때 나무의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려면 수목 정보가 꼭 필요하다. 에너지 보존, 탄소흡수 등 나무 한 그루가 미치는 경제적, 환경적 영향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김유겸=아름다운 자연 공간을 만드는 서비스를 계속 개발할 것이다. 지금은 루트릭스 직원이 직접 방문해 수목 데이터를 수집하지만 앞으로는 수목농가들이 각자 키우는 나무 데이터를 직접 입력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수목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고, 조경 시장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주희 청년기자(청세담14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