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일(금)

산업도시 울산서 나오는 폐플라스틱, 현장용 안전 제품이 되다

[인터뷰] 변의현 우시산 대표

 “울산 앞바다는 조선시대에 고래의 바다, 그러니까 ‘경해(鯨海)’라고 불릴 정도로 고래가 많았어요. 그러다 해양오염으로 생태계가 무너지면서 지금은 개체 수가 크게 줄었죠. 인간이 버린 폐기물을 잘 활용하면 고래를 살릴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기업 ‘우시산’은 울산에서 폐플라스틱 업사이클링 제품을 제작한다. 변의현(45) 우시산 대표는 “바다 생물들이 다시 울산 바다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찾은 울산 남구의 ‘울산박물관 뮤지엄샵’에는 우시산에서 만든 인형, 양말, 에코백, 재활용품 수거함 등 다양한 상품이 진열돼 있었다. 언뜻 보면 큰 특징이 없어 보이지만 모두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었다. 변 대표는 지역 상징물인 고래가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으로 인해 숨을 거둔 채 발견된 것을 보고 2019년 업사이클링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이어 “우시산은 ‘우리의 시작은 작았지만, 산처럼 큰 꿈을 꾸는 기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언젠가는 울산의 해양생태계를 이전과 같이 되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변의현 우시산 대표는 “바다와 해양생물을 구하는 일은 결국 미래 세대를 구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울산=김어진 청년기자
변의현 우시산 대표는 “바다와 해양생물을 구하는 일은 결국 미래 세대를 구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울산=김어진 청년기자

 새로운 이름을 얻은 폐플라스틱

세계자연기금(WWF)이 지난해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해양생물의 88%가 플라스틱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 아래 있다. 플라스틱을 먹은 해양생물은 장기가 손상되거나 면역, 생식 능력이 감소한다. 몸속에 미세플라스틱이 남은 해양생물을 인간이 섭취하면 암 유발, 세포 사멸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변 대표는 “우시산의 구호는 ‘세이브 더 오션, 세이브 더 웨일, 세이브 더 칠드런’”이라며 “바다와 해양생물을 구하는 일은 자라나는 미래 세대를 구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우시산 제품마다 바다생물 캐릭터가 있다.

“우시산에서는 환경오염으로 고통받는 해양생물들을 캐릭터로 만들고 있다. 우시산의 첫 번째 업사이클링 제품인 ‘별까루 고래’ 인형은 울산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귀신고래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몸에 따개비가 많이 붙어 있는 귀신고래 모습이 마치 별가루를 뿌린 것 같아 이름을 별까루로 지었다. ‘별들포’라는 해마도 있다. 해마가 많이 사는 울릉도에 정들포라는 아름다운 항구가 있는데 한 번 정이 들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의미가 담긴 이름이다. 여기서 착안해 해마 캐릭터 이름은 별들포라고 지었다. 이 외에도 ‘별바다’ ‘별무리’ 등 모든 캐릭터의 성은 ‘별’이다. 지구온난화로 삶의 터전을 잃어 별별 걱정이 많은 북극곰 ‘별곰’도 곧 출시한다.”

-업사이클링 제품은 어떤 과정을 통해 제작되나.

“해양수산부와 해양환경공단이 선박에서 나오는 폐로프 등 해양쓰레기를 수거한다. 어민이 모은 페트병은 수협 등에서 관리한다. 이 기관들과 협약을 맺고 해양폐기물을 확보해 새활용 제품을 제작한다. 폐페트병은 파쇄, 세척 과정을 거쳐 작은 플레이크 입자가 된다. 이 플레이크로 제조한 단섬유는 인형과 이불의 충전재로 사용된다. 플레이크를 더 작게 분쇄하면 펠릿이 되는데, 이를 녹여 만든 장섬유 원사로 티셔츠, 에코백 등 다양한 섬유제품을 만들 수 있다. 우시산은 현재 수집과 운반, 소재 연구, 원료생산을 담당하는 여러 기업 및 기관과 자원순환 네트워크를 구축해 제품을 제작하고 있다.”

-안전 제품도 개발한다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을 제작하다 보니 산업 현장에서 쓰이는 업사이클링 제품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야 더 많은 폐기물을 새활용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울산이 산업 중심 도시이다 보니 플라스틱이 굉장히 많이 생산된다. 산업체들이 플라스틱 상품을 제작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를 활용한 업사이클링 제품이라도 꾸준히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속가능한 쓰임을 추구하는 안전ESG 제품을 만든 이유다. 현재 국내 최초로 폐안전모를 새활용한 경량 작업모, 버려진 페트병으로 만든 안전 조끼와 장갑, 불량 자동차 부품을 새활용한 안전 콘 등을 제작한다.”

해양플라스틱 새활용 사업에 쓸 페트병을 수거하는 모습. /우시산 제공
해양플라스틱 새활용 사업에 쓸 페트병을 수거하는 모습. /우시산 제공

-취약계층도 직원으로 채용한다던데.

“맞는다. 이분들이 주로 매장 관리나 페트병 분류, 포장 등 작업을 한다. 어르신 근로자가 많고 최근에는 발달장애인 디자이너들도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발달장애인 7명은 훈련생으로 함께하고 있다. 이들 역량이 올라오면 한 명씩 채용할 생각이다. 최근에 발달장애인 디자이너가 만든 바다생물 이불은 홍보도 하지 않았는데 완판 되기도 했다.”

“모든 폐자원을 새활용하고 싶어요”

-현재 준비 중인 다른 업사이클링 소재도 있나?

“해마다 국내에서 나오는 폐의류가 30만 톤(t)이나 된다. 이런 헌 옷을 새활용하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작년까지 개발과 테스트를 진행했고 올해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기업체의 폐작업복 등을 모아 해섬(원단 혹은 의류를 찢고 갈아서 섬유의 원료로 되돌리는 작업)해 장갑과 양말, 티셔츠 등을 만들고 있다. 우시산에서 후원하는 장애인 복지관의 발달장애인들이 작업 과정에 참여한다. 일을 하는 발달장애인들 표정이 밝아졌다면서 이들 부모님도 좋아하신다. 현재 울산에만 작업장이 있지만 전국적으로 사업 모델을 확대하고 싶다.”

-옷은 혼합물이라 업사이클링이 어렵다던데.

“헌옷을 모아 재질별로 분류하고 기계에 넣으려면 단추, 지퍼, 프린트를 다 제거해야 한다. 여러 공정을 거쳐 실을 뽑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계속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헌옷을 새활용하려는 기업이 많이 없다. 하지만 헌옷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사람들은 빠르게 변하는 유행에 따라 싼 가격에 쉽게 옷을 사고 몇 번 입고 버린다. 이런 옷들은 아프리카로 수출돼 ‘헌옷 산’을 이룬다. 여기서 나온 유독한 화학 성분은 주변 환경을 오염시킨다.”

-업사이클링 사업을 하며 가격에 대한 고민도 많을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어도 가격이 비싸면 사람들이 사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업사이클링 제품에 쉽게 다가오게 하려면 가격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중간 유통 단계와 이윤을 줄여 가격 경쟁력을 갖추려고 한다. 공장과 협업해 우리가 직접 만들어 판매하면 중간 유통 과정을 줄일 수 있다. 수작업으로는 비용을 맞출 수 없어 대량 생산도 필요하다.”

-우시산의 최종 목표는.

“처음에는 페트병 한 가지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버려지는 거의 모든 폐자원을 활용해 제품을 만드는 데 도전하고 있다. 여러 자원이 버려지지 않고 새활용되면 좋겠다. 물론 시도되지 않은 것들을 주로 하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고, 기술 개발에 비용도 많이 든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가 하는 일이 빛날 거라고 생각한다.”

울산=김어진 청년기자(청세담1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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