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6일(수)

알코올중독 이겨내고… 세상 위한 광고장이로 다시 태어났어요

美사회적기업협회 케빈 린치 의장

美사회적기업협회 케빈 린치 의장
美사회적기업협회 케빈 린치 의장

잘나가는 ‘광고장이’로 21년을 살았다. 광고를 만드니 부와 명성이 따라왔다. 사회적 영향력?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 그가 두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대표가 됐다. 미국 사회적기업협회(Social Enterprise Alliance) 의장이자 CEO인 케빈 린치(Kevin Lynch·사진) 이야기다. 미국 사회적기업협회는 현재 15개 주, 17개 지부, 1100여명의 사회적기업 멤버가 소속되어 있는 네트워크의 중심이다. 지난 16일 사회적기업 월드포럼에서 만난 그는 “개인적 삶의 변화를 겪으면서 사회적인 가치에 눈뜨게 됐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어떻게 하면 마진을 많이 남길 수 있을지’ 돈 버는 일이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1980년 대학 졸업 직후 들어간 광고 회사에서 9년간 일하다 나와 내 광고 회사를 차렸는데, 약물 의존도가 점차 심해졌죠. 90년대 중반, 알코올과 마약중독이 바닥을 찍었어요. 동업했던 파트너들과도 깨졌고요. 우연한 계기로 미국에서 유명한 ‘알코올중독자를 위한 12가지 단계 원칙(Twelve Steps of Alcoholics Anonymous)’ 프로그램을 접하게 됐습니다. 제 삶을 바꾼 계기가 됐죠.”

알코올과 마약 중독에서 회복하는 과정은 그에게 ‘내면적으로 일깨워지는 시간’었다고 한다. 산다는 게 뭔지,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뭔지, 삶의 의미에 대해 되짚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딜레마에 봉착했다. “광고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자, 그 무엇보다 ‘해로운’ 산업으로 여겨졌어요. 사람들에게 광적으로 소비하라고 부추기고, 지구 환경을 파괴하고…. 당시 내가 할 줄 아는 건 광고가 유일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광고 마케팅을, 뭔가 좋은 일을 하는 데 쓸 수 없을까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사회적벤처 네트워크 등을 통해 사회적기업가들을 여럿 알게 됐다. ‘사회적 목적’을 위해서도 비즈니스가 가능하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1995년, 그의 광고 회사 ‘린치자비스존스(Lynch Jarvis Jones)’는 사회적기업으로 거듭났다. ‘광고와 마케팅의 힘을 이용해 긍정적인 사회 변화를 만든다’는 미션에 따라 공익재단의 가정 폭력 예방 캠페인, 비영리 연구 단체의 알코올중독 위험성 연구결과, 유기농 음식 협동조합 홍보 등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다.

‘광고는 사회에 덜 해로워야 하고 더 긍정적이어야 할 것’ ‘수익의 25%는 임직원, 25%는 사회 기부, 25%는 기업 재투자, 25%는 주주 배당’…. 사회적기업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켜야 할 다양한 원칙도 스스로 수립했다.

2001년 광고업계를 완전히 떠난 그가 선택한 건 ‘리빌드 리소스(Rebuild Resources)’라는 사회적기업이다. 알코올·마약중독자들을 고용해 기업이나 단체의 의류를 제작하면서, 이들의 사회 재적응을 돕는 단체다. 감옥에서 막 나온 알코올중독자들이 최대 6개월간 일하면서, 다른 곳에서 풀타임 직장을 찾을 수 있게 다리를 놓아준다. 그 자신이 알코올·약물중독과 치료 과정을 경험하면서, “알코올중독자가 감옥에 가게 되는 과정에서 미국 내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 문제를 발견했다”고 했다.

“저같이 평범한 백인 남성이 알코올 문제로 잡히면 그렇게 심한 처벌을 받지는 않아요. ‘실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똑같은 일을 흑인 소년이 저질렀다면 감옥에 갈 확률이 훨씬 높아요. 그렇게 감옥에 갔다 다시 사회로 나오면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고 사회적 편견도 심해서, 다시 감옥에 가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그들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는 일을 하는 게 제 소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7년에 걸쳐 소명을 다하고, 2011년부터 미국 사회적기업협회 의장으로 자리 잡은 그는 “사회적기업가야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 메릴랜드 볼티모어에는 ‘휴매닌(Humanin)’이란 사회적기업이 있어요. 감옥에서 출소한 이들을 고용해, 폐허가 된 집의 목재나 벽돌 같은 자재를 잘 분리해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가공해 판매하는 일을 합니다. 그간 정부에선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끝이었다면, 여기선 고용 기회도 창출하면서 환경도 생각하는 방식으로 폐가(廢家)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한편, 실리콘 밸리에는 ‘기술로 세상을 좋게 바꾸겠다’는 미션의 ‘베네테크(Benetech)’라는 IT 사회적기업도 있어요. 겉으로 보기엔 다른 IT 기업과 다를 바가 없지만, 비전과 미션이 ‘사회적 목적’에 있다는 데서 이들도 사회적기업입니다. 여기선 소프트웨어 기술 및 지식재산권법을 활용해 시각장애인이 볼 수 있는 디지털화 된 책을 만들었는데, 보유하고 있는 전자책 DB가 전 세계 어느 도서관보다도 많아요. 최근엔 인권이나 언론의 자유가 침해된 국가에서 필요한 정보를 녹취해 증거로 제출할 수 있도록 한 기술도 발명해, 실제로 과테말라, 미얀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등에서 증거로 사용되기도 했고요. 사회적기업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고 하는 일은 ‘혁신’ 그 자체입니다. 기존 정부, 기업, 비영리단체에서 풀지 못했던 ‘사각지대’를 풀 수 있는 건 바로 사회적기업인 것이죠.”

오랫동안의 사기업 근무, 두 번의 사회적기업과 1100여개의 사회적기업 네트워크 중심에 선 그는 사회적기업가로서, 후배 사회적기업가들에게 어떤 조언을 전하고 싶을까.

“지금 워싱턴은 끊임없이 비판만 던지는 ‘무책임한 진보주의자’들과, 다른 사람들, 특히 소외된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무심한 보수주의자’들로 가득 차 있어요. 하지만 정작 그 사이에서 혁신과 변화를 이뤄내는 건 유연한 사회적기업들입니다. 아마도 자기 이해(Self-Interest)가 아닌, 사람과 목적에 대한 ‘애정’과 ‘사랑’으로 움직인다는 게 가장 큰 원동력이지 않을까요. 실수를 절대 두려워 마세요. 사회적기업이 맞닥뜨리는 건, 항상 새로운 문제들이에요. 이전에 그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없었던 만큼, 여러 실수가 필요한 게 당연합니다. 그리고 해온 것들은 정확하게 측정하세요. 효과와 임팩트를 측정하지 않으면, ‘자기 위안’에 그칠 수 있어요. 끝으로 무조건 협력하세요. 애정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한데 모이면, 훨씬 더 큰 시너지와 변화의 에너지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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