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돌 맞은 현대자동차 ‘H―점프스쿨’
지역아동센터·복지관 등 공부방 활용
기초와 공부 습관 다지는 데 주력
직장인 멘토·대학생 봉사자 간 교류도
2018년까지 학생 2000명에게 배움 제공
아이들은 냉랭했다.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지난해 9월, ‘H-점프스쿨(H-JUMP SCHOOL)’ 활동을 위해 서울시 번동의 한 종합사회복지관을 찾은 이경택(23·서울과기대 전자IT미디어 공학과3년)씨가 본 공부방 풍경이다.
“많은 자원봉사 선생님이 다녀갔지만, 금방 사라져버리니 아이들 반감이 큰 것 같았어요. ‘언제 관둬요?’라며 대놓고 묻는 아이들도 있었죠.”
한 달짜리 공부방 봉사 경험이 있었던 이씨는 애써 정 주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이해했다고 한다. 제대로 말 트는 데만 한 달 넘게 걸렸다. 저녁부터 같이 먹고 밤 10시를 넘겨가며 공부도 하고, 중학생 5명과 매주 3번씩, 한 번 가면 족히 서너 시간을 함께 보냈다. 자연스레 편한 형·동생이 되어 갔다. 3개월 정도가 지나자 공부에도 흥미를 보였다. 평소에는 수학·과학을, 시험 때가 되면 암기과목부터 제2외국어까지 도왔다. 기초가 부족했던 아이들은 쑥쑥 성장했다.
“1학기 중간고사에서 수학 20점을 맞은 아이가, 2학기 기말고사에선 90점을 받아왔더라고요. 4개월 만의 변화죠.” 그렇게 1년이 지속됐다. 이씨가 1년 동안 받은 ‘과외비’는 연 250만원으로 시세에 비해 낮았지만, 그는 돈보다 더 좋은 걸 얻을 수 있었다. 바로 H-점프스쿨의 ‘전문직 멘토단’을 통해서다. 현대자동차 연구소의 연구원들과 서너 차례 만나며, 대학 생활과 진로 설정에 대한 고민을 쏟아냈다. 이씨는 H-점프스쿨을 “모두의 꿈이 소중해지는 곳”이라고 했다.
“제가 만난 중학생들은 대부분 한부모 가정이거나, 할머니가 키우는 애들이었어요. 처한 상황 때문에 꿈조차 못 꾸던 아이들이 공부에 재미를 붙이며 건축가도, 스튜어디스도 되고 싶어 했죠. 저 역시 공학도지만 마케팅을 좋아해 혼란스러웠는데, 직장인 멘토들과 만나면서 중국 시장의 기술영업 파트로 진로의 가닥을 잡았어요. 요즘은 중국어를 배우며 차근차근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등학교 성적 상위 10%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26만7000원으로, 하위 20%의 2.34배(11만4000원)다. 2010년(2.1배)부터 매년 조금씩 차이가 벌어지는 추세다. 배움의 기회가 부모의 경제력으로 인해 차별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3년 7월, 현대자동차 그룹이 서울장학재단, 교육 비영리단체 ‘점프’와 함께 ‘H-점프스쿨’을 출범한 이유다. 최재호 현대자동차그룹 사회문화팀 차장은 “기업의 힘만이 아닌, 민관의 적절한 협력을 통해 우울한 시대를 살고 있는 청소년들을 응원하고자 기획한 것”이라며 “이를 통해 청년들 또한 ‘가슴이 따뜻한 창의인재’로 성장하도록 돕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교육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오는 2018년까지 5년간 약 2000명의 소외계층 중학생·초등학교 고학년생들에게 배움의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작년 9월부터 1년간 활동했던 1기 대학생 교사 50명은 전국 15곳의 복지기관에서 200여명의 소외계층 청소년들을 만났는데, 지난 7월의 2기 대학생 교사 모집엔 1800명(75명 선발)이 넘는 지원자가 몰리기도 했다.
기존 교육 지원 프로그램의 단점을 최소화한 것이 대학생들의 인기 비결이다. 이의헌 점프 대표는 “일회성이자 공급자 중심으로, 또 봉사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기존 프로그램들의 문제점을 역으로 생각해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고 한다.
H-점프스쿨은 별도의 교육장소를 운영하지 않고 지역아동센터, 복지관 등 공부방을 활용한다.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기존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려는 시도다. 주12시간, 1년간의 학습 기간도 수요자를 먼저 생각해 나온 결과다. 지난해 봉사자로 참여했던 김재원(24·서강대 경영학과4)씨는 “공부를 놓아버린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조급함은 독이 된다”며 “어찌 됐든 1년간 끌어줘야 할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면, 성적에 일희일비하기보단 기초와 공부 습관을 쌓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세 축인 청소년과 대학생 봉사자, 전문직 멘토단에게 모두 적절한 동기부여를 한다는 것도 큰 강점이다. 김재원씨는 “경영학과생으로서 시야에 ‘돈 버는 일’밖에 안 보였는데, 김정현 딜라이트 대표 등 다른 영역의 멘토들을 만나며 진로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고 했다. 김씨는 현재 비영리단체(점프)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있다. 점프에는 대기업, 사회적기업, 비영리단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멘토 150여명이 포진해 있는데, 대학생들은 멘토 정보를 보고 원하는 사람을 3지망까지 고를 수 있다. 그렇다면 전문가 멘토들이 얻는 건 뭘까? 스타트업의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기업 ‘비소사이어티(B society)’의 장연실(33) 기획팀장은 “직장생활 10년차로 젊은 친구들의 생각과 문화를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는데, 2년간 멘토로서 그들을 만나며 감동과 즐거움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장 팀장은 이어 “일대일 멘토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직장인 멘토들끼리 교류할 기회도 많고, 대학생 봉사자들이 소그룹을 만들기도 하는 등 구성원들 간의 확장성이 크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1년간 학생들을 가르쳐온 대학생 이경택씨는 “중학생들이 대학생 봉사자들을 보며 닮고 싶어 하는 걸 많이 느꼈다”며 “나 또한 언젠가 직장인 멘토가 되어 내 경험을 더 값지게 쓰고 싶다”고 했다. 창의인재를 향한 ‘교육나눔’의 선순환 고리는 그렇게 더욱더 견고해진다.
‘H-점프스쿨’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차 그룹의 창의인재 육성 활동은 최근에는 더욱 다양한 영역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와 함께 진행 중인 대학 공연예술 경연대회 ‘H-스타 페스티벌’은 문화예술 분야의 미래 창의인재를 키우기 위한 활동이다. ‘해피무브글로벌청년봉사단’을 통해서는 매년 1000명의 대학생들이 해외봉사활동 기회를 갖고,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안목을 키워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