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업계가 ‘비행기 무게 줄이기’ 전쟁에 뛰어들었다. 기체 무게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어 연료 사용량을 줄이고 탄소배출량 감축 효과도 얻기 위해서다.
기체를 경량화하려는 항공업계의 노력은 과거에도 있었다. 다만 가벼운 부품이나 소재를 사용하는 제조사 중심의 기술적인 접근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에는 항공업계를 향한 탄소배출량 감축 요구가 증가하면서 ‘승객 참여형’ 기체 경량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승객의 짐을 줄이는 의류 대여 서비스부터 기내 조리실을 없애는 시도까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실현되고 있다.
지난 5일 일본항공(JAL)은 ‘어디서나 입을 수 있는 옷(Any Wear, Anywhere)’ 서비스를 도입했다. 일본에 도착하는 관광객에게 여행하는 동안 입을 옷을 빌려주는 서비스다. 옷을 따로 챙겨오지 않도록 해 수하물 무게를 줄이게 한다는 취지다. 일본항공은 “뉴욕-도쿄 비행에서 수하물 무게를 10kg 줄이면 탄소배출량을 7.5kg 저감할 수 있다”며 “이는 하루에 헤어드라이기를 10분씩 사용한다고 했을 때 78일 동안 쓰지 않는 것과 동일한 효과”라고 밝혔다.
서비스 이용을 원하는 승객은 일본 방문 최소 한 달 전에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된다. 항공편, 체류 예정인 호텔, 체류 기간 등 정보를 입력한 뒤 원하는 옷을 고르면 호텔로 배달된다. 옷 종류는 니트, 티셔츠, 재킷, 반바지, 치마 등 다양하다. 가격은 4000~7000엔 선이다. 여름옷 기준 상의 3벌, 하의 2벌을 대여하는 데 4000엔(약 3만6000원)이 든다. 최대 2주까지 빌릴 수 있다. 옷은 의류 유통 업체 ‘스마셀’이 제공한다. 스마셀은 의류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각 브랜드의 재고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온라인 의류 플랫폼이다. 일본항공은 내년 8월까지 서비스를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기내 배식 방식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6일(현지 시각) 에어버스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항공기 인테리어 엑스포 2023(Aircraft Interiors Expo 2023)’에서 ‘에어스페이스 캐빈 비전 2035+(Airspace Cabin Vision 2035+)’를 공개하고 지속가능한 객실 인테리어를 선보였다. 가장 큰 특징은 조리실을 없앤 것이다. 승객은 비행 전 기내식을 미리 주문하고, 비행기 입구 옆 자판기에서 수령할 수 있다. 기내에 싣는 음식을 최소화해 비행기 무게를 줄이고 음식물 쓰레기도 없앤다는 구상이다. 조리실 설비가 따로 필요 없으며, 기내에서 음식을 나를 때 쓰는 카트를 싣지 않아도 된다. 에어버스는 “음식물 쓰레기와 음식 무게를 각각 약 15%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항공기 좌석을 더 가벼운 소재로 바꾸기도 한다. 쿠웨이트의 자지라항공은 지난달 에어버스 A320 모델에 티타늄 소재 좌석 ‘티싯(TiSeat)’을 설치했다. 자지라 항공은 “이 의자 무게는 6.8kg에 불과해 같은 크기의 다른 제품보다 약 35% 가볍다”며 “기체 무게를 약 1200kg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티싯을 개발한 익스플리싯(Expliseat)은 “TiSeat 제품군은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5%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익스플리싯은 자지라 항공에만 총 2000개 좌석을 공급할 계획이다.
항공사들이 비행기 경량화에 뛰어드는 이유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지난 2021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회원사들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로 합의했다. 비행기 운행으로 발생하는 탄소량은 전 세계 연간 탄소배출량의 2.5%를 차지한다. 비행기는 탄소를 높은 고도에서 내뿜기 때문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
이에 항공사들은 지속가능한 연료(SAF)를 개발, 사용하는 등 탄소 저감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캠퍼스 연구진이 지난 1월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2050년까지 항공업계의 탄소중립에 필요한 SAF 연료 수요를 충족하려면, 연료 생산에 드는 작물 재배에만 300만㎢의 땅이 필요하다. 미국 국토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프루덴스 라이 유럽모니터 인터내셔널 애널리스트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SAF에 대한 투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며 “당장 항공사로서는 기체 무게를 줄이는 것이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