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건설업 탄소 감축, 낭비되는 에너지에 주목하라

[인터뷰] 정태랑 레디로버스트머신 대표

건설기계 연비 높여 탄소배출량 30% 감축
창업 1년 만에 30억원 규모 투자 유치

“자동차 산업은 내연기관에서 전기모터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습니다. 연료 사용으로 인한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죠. 그런데 건설기계로 분류되는 굴착기나 불도저, 지게차 등은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자동차처럼 경유를 사용하는 굴착기의 경우 낮은 연비로 에너지 낭비가 심한데도 에너지 전환 움직임이 거의 없어요. 버려지는 에너지를 잡으면 탄소배출량이 크게 줄텐데요. 저희가 주목한 지점도 바로 에너지 효율입니다.”

정태랑(36) 레디로버스트머신 대표는 “건설업의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건설기계의 에너지 효율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레디로버스트머신은 굴착기 등 건설기계의 연료사용량을 최대 30% 줄일 수 있는 연료 절감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굴착기가 움직일 때마다 버려지는 유압·위치에너지를 저장하고, 이를 다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기술이다.

20일 만난 정태랑 레디로버스트머신 대표는 "탄소 다배출 업종인 건설업이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선 에너지 영역에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해=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20일 만난 정태랑 레디로버스트머신 대표는 “탄소 다배출 업종인 건설업이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선 에너지 영역에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해=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건설업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에 속한다. 2020년 유엔환경계획(UNEP)의 ‘글로벌 현황 보고서(Global Status Report)’에 따르면, 건설·건축 분야의 연간 탄소배출량은 9.95GtCO2e로 전체 배출량의 약 38%에 달한다. 변화에 보수적인 건설·토목 분야에서 새로운 에너지 효율화 솔루션을 적용하기 위해 정태랑 대표는 지난 20일 경남 김해 본사에서 만났다. 지난 2021년 레디로버스트머신을 설립한 정 대표는 “전체 산업군 중에서 가장 탄소배출량이 큰 건설·토목 분야에서의 탄소저감 노력은 그만큼 더 큰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탄소배출량 줄이려면 낭비되는 에너지에 주목해야

-건설기계가 배출하는 탄소량은 어느 정도인가?

“무게 30t짜리 굴착기가 하루에 쓰는 경유량은 200~300L에 달한다. 연간 탄소배출량으로 환산하면 196t 정도되는데, 1만5000km를 주행하는 승용차 100대가 내뿜는 탄소배출량과 맞먹는다.”

-탄소감축은 세계적 흐름인데 건설업계도 노력하지 않나?

“물론 건설업계에서도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10년간 볼보에서 일하면서 에너지 효율화 분야에서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 다만 모든 노력이 신형 장비에만 집중돼 있다. 매년 새롭게 제작되는 건설기계는 120만대 정도지만 중고 시장에 나오는 건설기계는 신차보다 5배 정도 많다. 중고 건설기계까지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솔루션이 필요한 이유다.”

-유압·위치에너지 등 생소한 개념이 많다.

“건설기계의 탄소저감 핵심은 에너지다. 건설기계가 큰 힘을 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유압과 위치에너지에 있다. 유압은 기름에 압력을 가해 실린더, 피스톤 등을 작동해 기계가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원리다. 기름에 가해진 압력을 건설기계가 움직이는 힘으로 바꾼다고 생각하면 쉽다. 위치에너지는 굴착기의 흙을 파기 위해 움직이는 팔이 지면 위에 떠있을 때 발생하는 에너지다. 중력 때문에 공중에 떠있는 물체는 아래로 떨어지게 되는데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20일 경남 김해에서 정태랑 레디로버스트머신 대표가 굴착기 시연을 통해 발생하는 에너지를 설명하고 있다. 정태랑 대표는 "굴착기의 팔을 지탱하는 실린더에서 발생하는 유압에너지, 굴착기의 팔이 지면 위에 떠있다가 하강하면서 발생하는 위치에너지에서 낭비되는 에너지를 줄이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해=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20일 경남 김해에서 정태랑 레디로버스트머신 대표가 굴착기 시연을 통해 발생하는 에너지를 설명하고 있다. 정태랑 대표는 “굴착기의 팔을 지탱하는 실린더에서 발생하는 유압에너지, 굴착기의 팔이 지면 위에 떠있다가 하강하면서 발생하는 위치에너지에서 낭비되는 에너지를 줄이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해=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에너지 효율을 어떻게 높인다는 건가?

“기존 유압에너지나 위치에너지는 모두 버려진다. 건설기계 제조사들이 이를 저장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중력에 의한 위치에너지를 회수하는 기술을 상용화 한 회사는 손에 꼽는다. 안전이 최우선인 건설업에서 엄청나게 무거운 기계가 가진 위치에너지를 회수하면서 섬세한 조작성까지 확보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 특정 제조사가 다른 제조사 장비나 중고 장비까지 솔루션을 개발한다는 것은 회사 차원에서 비효율적이라 개발을 꺼리기도 한다.”

-국내에도 건설기계 탄소 저감 관련 노력이 있나?

“환경부에서 시행하는 배출가스 저감사업이 있다. 건설기계에 미립자 저감장치(DPF·Diesel particulate filter)를 부착해 배출되는 탄소를 줄이려는 조치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부착만 해두고 기능은 꺼 놓는다. 기계 효율이 급속도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DPF를 켜놓으면 정해진 작업량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경유량이 증가하게 된다. 자기 돈을 더 들여서 작업을 하고 싶은 기사는 없을 거다.”

에너지 회수부터 진단까지… 똑똑한 건설 현장을 만들다

-레디로버스트머신이 보유한 기술은 뭔가?

“스마트 연료 저감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사 스마트 연료 저감 시스템인 ‘레디(READi)’는 굴착기의 무거운 팔을 내릴 때 발생하는 위치에너지와 유압에너지를 저장하는 축압기, 건설기계의 섬세한 조작을 위한 ‘스마트 밸브 제어 기술’, 고객이 손쉽게 에너지 저장량 등을 확인하고 이를 클라우드에 데이터화 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READi는 신형이나 중고에 상관없이 모두 부착이 가능하다. 건설기계 제조사도 가리지 않는다.”

정태랑 대표는 "똑똑한 건설현장을 만들기 위해선 전통적인 방식들을 벗어나 소프트웨어 도입 등 새로운 기술들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남 김해=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정태랑 대표는 “똑똑한 건설 현장을 만들기 위해선 전통적인 방식들을 벗어나 소프트웨어 도입 등 새로운 기술들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해=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어느 정도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나?

“수십 차례 자사 연비시험 데이터를 통해 평균 20~30%에 달하는 연료비를 저감하는 결과를 얻었다. 재미있는 점은 오래된 건설 기계일수록 효율이 더욱 올라갔다. 평균 200L의 경유를 사용하는 30t 굴착기에 시스템을 적용했더니 40~60L의 경유를 절약할 수 있었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한 달에 200만원에서 300만원 정도의 기름 값을 아낄 수 있다.”

-현재 기술을 적용한 기업이 있나?

“현재까지 총 31억원의 투자를 받아 READi 제품을 개발하고 효율 개선을 완료했다. 작년 12월 네덜란드 건설기계를 다루는 딜러 사에 샘플을 납품한 후 정식으로 발주하기로 계약을 완료했다. 국내는 올 상반기 본격적인 론칭을 앞두고 있어 개인고객부터 대기업까지 계약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는?

“똑똑한 건설 현장을 만드는 거다. 앞으로 모든 분야에서 기계가 스스로 일하게 될 거다. 전통적인 방식들을 고수해온 건설 현장에도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READi는 로봇공학(Robotics), 에너지 변환(Energy Conversion), 자동화(Automation), 진단(Diagnostics)을 통해 지능형 건설 현장(intelligent construction site)을 만들자는 의미를 담았다. 다른 한가지는 지역에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거다. 요즘 청년들 대부분은 수도권에서 지낸다. 수도권이 좋아서라기보다 일할만한 곳이 모두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경남 지역에도 청년들이 일할 수 있도록 꾸준히 성장해 나가겠다.”

김해= 황원규 기자 wonq@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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