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 편집장, 미국 비영리를 해부하다] (1) 기부 패러다임이 바뀐다
유나이티드웨이 – 기부금 어떻게 쓰였는지 수치·사진 등으로 소통
평생 파트너로 생각하고 핵심 사업에 참여시켜
미국월드비전 – 아이들 변화 동영상 보여줘 기부참여율 30% 증가
고액기부자 담당 직원 31명이 단계별로 관리
머시콥 – 방문자센터 안은 체험교육장 등으로 시각화
300개 기업과 파트너십… 봉사·캠페인 기회 늘려
미국 전체의 기부금 총액은 약 335조로, 미국인들은 수입의 2% 정도를 기부한다(2013년). 우리나라의 한 해 예산(357조)과 맞먹는 액수다. 비영리단체 수는 160만개나 된다. 비영리(Nonprofit) 부문은 영리기관 못지않게 경쟁이 치열한 만큼, 혁신을 거듭한다. 기자는 지난 6월 17일부터 26일까지 한국NPO공동회의가 주관하고 한국국제교류재단이 후원한 ‘2014 미국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 16개 국내 NPO 실무자들과 함께 워싱턴DC·뉴욕·시애틀 등의 비영리기관 9곳을 방문했다. 이를 토대로 미국 비영리 현장을 해부하는 기획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첫 회는 유나이티드웨이, 미국월드비전, 머시콥 등 3곳이다. 편집자 주
“전 세계적으로 기부자 수는 1250만명에서 930만명으로 감소하고 있어요. 특히 미국에서 매년 5000만명 이상에게 기부 요청을 하는데, 이 중 실제 기부하는 비율이 2005년 이전엔 30%가량이었어요. 지금은 17.8%밖에 안 돼요. 악몽이죠.”
지난달 18일, 유나이티드웨이(United Way) 본부에서 만난 숀 개릿(Sean Garrett) 후원개발부 부대표의 말이다. 워싱턴을 관통하는 포토맥 강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건물 뒷마당은 100명이 족히 야외 모금 파티를 열어도 될 만큼 널찍한 곳에 위치한 이곳은 미국 최대의 자선·기부 단체다. 지난해 미국에서만 39억달러(약 3조9000억원), 해외에서 13억달러(약 1조3000억원)를 모금해 전체 모금액만 5조원이 넘는 공룡 단체다. 한국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난해 모금액 5000억원을 넘겼으니, 딱 10배 규모다. 역사는 127년이요, 기부자 수는 1100만명, 자원봉사자 수는 300만명이다.
우리 일행을 맞은 곳은 본부 건물 1층에 위치한 ‘메리 M 게이츠’ 러닝센터. 빌 게이츠 회장이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1000만달러(약 100억원)를 기부, 그 이름을 따서 지은 건물이다(빌 게이츠의 어머니는 평생 자원봉사 활동에 전력, 유나이티드웨이 지역 회장까지 지냈다고 한다). 유나이티드웨이 관계자들은 과연 어떻게 ‘악몽’을 헤쳐나가고 있을까.
리사 프라이(Lisa Frye) 커뮤니티 임팩트&상품개발팀 매니저는 “기부자를 우리의 고객이자 투자자로 생각하는데, 우리 팀의 역할은 고객이 투자할 만한 상품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상품이 바로 ‘공동체 임팩트(Community Impact) 전략'”이라고 말했다.
“마케팅 방법이 변했어요. 예전에는 ‘사회문제가 뭔지’에 맞춰 마케팅했다면, 이제는 ‘이런 해결방법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오랜 연구 끝에 5년 전, 3가지 핵심 어젠다를 정했습니다. 삶의 질을 개선하는 기초가 되는 교육(Education)·소득(Income)·건강(Health) 분야죠. 예전엔 각 지역 유나이티드웨이를 평가할 때 모금액을 기준으로 했지만, 이제는 얼마를 투입해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임팩트를 측정합니다.”
프라이씨는 이어 각각의 어젠다별로 목표 달성률 그래프 3개를 보여줬다. 교육 분야 목표(‘고교 졸업률을 높이자’)를 보니, 1998년 71%였던 고교 졸업률은 2010년 78%까지 높아졌고, 2018년에는 87%까지 높일 계획이라고 한다. 프라이씨는 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전략인 ▲초등 3학년까지 읽기 능력 향상시키기 ▲가족 구성원을 교육에 참여시키기 ▲학습 부진아를 위한 서포터스 시스템 마련하기 등이 구체화돼있다고 설명했다.
◇피라미드식 맞춤형 기부자 관리
이런 수치와 데이터는 기부자를 위한 마케팅에 그대로 활용된다. 개릿 부대표는 피라미드식 기부자 관리 시스템을 보여주며, “기부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통계 수치와 사진, 스토리텔링 등을 통해 기부자들과 소통한다”며 “기부자들을 평생 우리의 파트너로 생각하고, 모든 핵심 사업에 계속 참여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간 400달러(약 40만원) 이하 기부자에게는 감사 이메일이나 문자 등 표준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액 기부자로 갈수록 일대일 미팅과 NPO 사업 참여 기회를 늘린다고 한다.
“워런 버핏은 억만장자이지만, 우리와 가까운 관계는 아닙니다. 자산으로 봤을 때 기부 잠재성은 높지만, 우리의 우선순위는 아니죠. 이렇듯 기부자를 성격에 맞게 카테고리별로 구분해 관리합니다. 우리는 직장인 캠페인을 통해 연간 모금액의 75%를 모금하는데, 기업 캠페인이라고 해서 기업만 참여한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기업에 속한 개별 임직원, 기업의 소비자인 고객 등 개인에게 참여 기회를 줘야 합니다.”
개릿 부대표는 “반드시 기부금을 받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며 “자원봉사나 캠페인 참여 등 애드보커시(Advocacy)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면, 이들이 추후 기부하게 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사업을 시각화하고, 기부자 분석하는 NPO들
‘기부를 투자로, 기부자를 파트너로’ 삼는 이런 전략은 유나티드웨이만의 것이 아니었다. 지난달 23일 방문한 국제 구호·개발 NPO인 미국월드비전과 머시콥(Mercy Corps) 1층은 약속이나 한 듯 ‘친절한’ 방문자센터가 우리 일행을 맞았다. 미국월드비전 방문자센터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근무한 밥 피어스 설립자가 “한국을 돕자”며 월드비전을 만들 당시 기록부터 지난 64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센터 한가운데에는 아예 아프리카 움막집을 지어놓아 체험 교육장을 만들었다.
1982년 댄 오닐(Dan O’Neill)이 설립한 머시콥 또한 혁신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 국제 개발 NGO답게, 시리아 내전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를 활용한 시각적인 교재를 센터 곳곳에 전시해뒀다.
이 기관들 모두 ‘사업을 시각화하고”기부자를 프로파일링하는’ 전략을 썼다. 미국월드비전 라나 리다(Lana Reda) 부대표는 “아동 결연 프로그램은 우리의 대표적 사업인데, 이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 ‘스폰서십 2.0’을 고안했다”고 “복잡한 사업을 4가지 카테고리(See it, Feel it, Believe it, Share it)로 분류하고 비디오나 사진, 데이터 등을 통해 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예를 들어, 기부자들이 홈페이지를 클릭하면 후원 아동의 12초짜리 동영상을 볼 수 있게 했더니 기부참여율이 30%나 높아졌다고 한다.
기부자 관리 또한 섬세했다. 미국월드비전은 2만5000달러(약 2500만원)부터 100만달러(약 10억원)까지의 메이저 기부자를 담당하는 직원이 24명, 100만달러(약 10억원) 이상 기부하는 메가 기부자를 담당하는 직원이 7명이다.
후원개발부 크리스 글린(Chris Glynn)씨는 “웰스 엔진(Wealth Engine) 프로그램을 통해 잠재 기부자들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해 이들을 고액 기부자로 끌어올리는 자체 시스템이 있다”며 “로열티를 높이고 NPO 참여 기회를 늘리기 위해 고액 기부자 105명으로 구성된 ‘내셔널 리더십 위원회(National Leadership Council)’를 운영한다”고 말했다.
머시콥은 모든 기부자 DB를 분석해, 기부자 평균치를 산출했다. ‘일레인’이라는 이름까지 붙인 이 기부자는 ▲60세 이상 여성 ▲석사 학위 이상을 가진 고학력자 ▲미 서부 혹은 동부 해안에 거주 ▲연 수입이 10만달러(약 1억원) 이상 ▲진보적 정치 성향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제러미 바니클(Jeremy Barnicle) 후원개발팀장은 “20대 중반으로 이뤄진 디지털마케팅팀 직원들이 비디오게임을 활용한 캠페인을 기획해오면 ‘일레인이 과연 좋아할까’라며 내부적으로 먼저 검증해본다”고 말했다.
300개 기업과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머시콥은 사업 시작에 앞서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전략 방향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고 한다. 브릿 로즈버그(Britt Roseberg) 기업파트너십 디렉터는 “마스터카드와 진행하는 캠페인 ‘엘리베이트(ELEVATE·빈곤국에서 쌀이나 식수를 현물로 받는 게 아니라 현지 상가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한 모바일 결제 사업)’ 프로그램은 머시콥에서만 직원 30~40명이 이 사업에 투입돼있다”고 했다.
데이비드 루빈(David Rubin) 머시콥 고액기부팀 디렉터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되고 부자들이 점점 더 기부할 수 있는 여력이 많아지기 때문에, 앞으로 고액 기부자들은 늘 수밖에 없다”며 “고액 기부자들은 비영리기관이 ‘청지기(Stewardship) 활동’을 잘하는지, 자신의 기부금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꼼꼼한 보고를 중시하기 때문에 NPO들의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략과 임팩트, 차별화…. 미국은 비영리 시장의 소리 없는 전쟁이 한창이었다.
워싱턴·시애틀·포틀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