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월)

[희망 허브] “환경·사람·공동체… 행복의 답, 여기 있습니다”

[스테디셀러 ‘오래된 미래’ 집필한 스웨덴 출신 인류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여사]

인간 자체를 중시하는 인도 라다크의 정신
10~15명의 가족이 모여 안정적인 관계 형성
행복 키우며 정체성 확립
어린 아이들도 ‘나는 누구?’ 정확히 알아
협력을 막는 경쟁은 인간의 본성 아냐

문상호 기자
문상호 기자

6825t의 배가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5000만 국민의 마음도 무겁게 내려앉았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 성장을 무엇보다 최우선시하던 대한민국 사회에 큰 경종을 울렸다. 이후 국민은 ‘어디서부터 사회가 잘못된 것일까’ ‘우리의 삶은 진정으로 행복한 것일까’를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49재 추모 행사가 열리던 지난 3일, ‘오래된 미래’를 집필한 세계적 석학 헬레나 노르베리-호지(Helena Norberg-Hodge·68) 여사를 만나 행복한 사회가 갖춰야 할 조건과 세계의 대안적 움직임에 대해 들어봤다. 노르베리-호지 여사는 오는 12일 환경재단이 주최하는 ‘행복한 나, 행복한 우리’ 토크 콘서트(롯데백화점 영등포점 문화홀, 오후 2시)에 참석해 강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6·25 전쟁 이후 최빈국이었던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으로 그것이 무너졌다.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많은 분들이 정부에 대해 불만과 분노를 느끼고 있지만, 한국 사람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한국 문화가 무책임해서’ 혹은 ‘한국 사람들이 부패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이 말한다. 이제 이런 일이 발생한 ‘구조적 이유’를 뜯어봐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회적·환경적 활동은 무시한 채 경제적·상업적 활동에만 너무 큰 초점을 뒀다.”

―16년간 인도의 라다크(Ladakh)에 머무르며 근대화의 한계와 대안적 삶을 연구했다. 한국은 세월호 사건 이후 물질만능주의, 초고속 경제성장에 대한 반성이 나오고 국가를 개조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나온다. 우리가 라다크로부터 배워야 할 정신이 있다면 무엇일까.

“라다크 그 자체보다는 라다크와 서구 사회의 차이를 잘 봐야 한다. 서구 사회는 돈과 에너지, 기술,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데 반해, 라다크는 환경과 사람, 공동체에 기반을 둔 문화와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 남편과 6년간 라다크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갈등을 한 차례도 겪지 않았는데 업무차 델리에 방문하자 몇 시간 만에 부부 싸움을 하게 되더라(웃음). 여러 가지를 단시간에 하려다 보니, 시간적 압박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빨리 행동하는 건 인간에게 부자연스러운 행위다. 인간 그 자체를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게 라다크의 정신이다. 라다크에서 만난 사람들은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행복했다. 라다크에선 어린 아이들도 ‘내가 누구’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라다크에선 10~15명이 가족으로 구성돼있고 언제나 관계속에서 생활한다. 이런 휴먼스케일 그룹(human scale group)이 클수록 안정된 정체성을 형성하고 이것이 ‘행복감’을 결정하는 굉장히 큰 요소다.”

―한국에서도 최근 도시 재생, 마을기업 등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흐름이 있다. 사실 한국 사회의 성장을 이끈 원동력은 공동체였는데, 도시화와 경제성장 속에서 공동체가 많이 무너졌다. 공동체 복원을 위해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이고, 여기서 비영리단체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우선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볼 때와 아는 사람들과 모여 함께 요리하고 노래부를 때 느끼는 감정 중 어떤 게 행복할까. 실제로 쇼핑몰에 많이 가면 더 많이 우울증을 느끼고, 숲에 많이 가면 증상이 완화된다는 학술연구도 있다. 폭력적이고 삐딱한 10대 청소년들을 그룹으로 짜서 산에 데려가 함께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드는 등 서로를 배우게 하면, 굉장히 많이 달라진다. 경쟁은 인간의 본능이 아니다. 지금의 경제 시스템은 사람들을 협력하게 만들기보다 서로 거리를 두게 한다. 사람과 자연을 결합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여기서 비영리단체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정부는 알게 모르게 세계화를 추진해오며 사람들을 경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글로벌 자본주의’를 추구하지만, 사실 이것은 현지의 일자리를 파괴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더 좋은 기술을 사용하거나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면서 현지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환경·평화·공동체 등의 사회적 가치를 알리기 위한 비영리단체들의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노르베리-호지 여사가 16년간 머물렀던 라다크의 전경. /조선일보DB
노르베리-호지 여사가 16년간 머물렀던 라다크의 전경. /조선일보DB

―하지만 이상과 현실에는 큰 괴리가 있다. 한 발짝만 나서면 대형 쇼핑몰이 있는 대도시 서울에서 이런 대안적 삶을 개인이 추구하기란 매우 힘들다. 국제생태문화협회(ISEC·현 로컬 퓨처스)를 설립하고 전 세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혹시 당신이 목격한 이상적인 사회가 있는가.

“이상적인 사회는 목격하지 못했지만, 소규모로 이뤄지는 프로젝트에서 희망을 보고 있다. 특히 농업에 중점을 둔 지역사회 프로젝트가 많다. 법이나 정치, MBA를 전공하던 청년들이 농업에 관심을 갖는 사례가 매우 많아지고 있다. ‘비아 캄페시나(La Via Campesina·농민의 길)’라는 단체를 아는가. 중소 농부들이 참여하는 네트워크인데, 전 세계에서 2억명이 함께한다. 여기서는 대규모 농업 생산 과정에서 유전자 조작, 비료·농약의 과다 사용, 유통 체계의 문제, 환경오염 등의 많은 부작용을 우려하며, 농업 무역(Food Trade)에 대해 경고하고 소규모 농장의 중요성을 알린다. 이탈리아의 ‘5성 운동(Five star movement·이탈리아의 전직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가 물·환경·교통·개발·인터넷 등 5개 분야의 개혁을 통해 시민의 삶을 개선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진행 중인 정치 캠페인)’도 있다. 2006년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단 몇 사람의 운동으로 시작했으나 2012년에는 무려 900만명이 참여하는 거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나 또한 사람들에게 만화나 노래, 영화, 책 등을 통해 행복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려고 노력해오고 있다. 사람들이 직접 인도 라다크 현지를 방문하도록 돕는 활동도 한다.”

―개인들의 노력과 함께 정책적 변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이 시급히 요청되는가.

“지난 40년간 수많은 사람이 숲 생태계 보호, 지구온난화 등 환경과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반면 경제성장 시스템에 주목하고 있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정치적 이념을 떠나 대안적인 경제 모델을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지역화(Localization) 개념의 확산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물이나 기타 자원을 한국 국민이 스스로 생산·활용할 수 있는 경제 시스템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다국적 기업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정부를 고소하기도 한다. 스웨덴의 바텐폴(Vattenfall) 원자력발전소는 자신들의 사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독일 정부를 37조원 규모로 고소한 적도 있다. 이제부터라도 각 지역에 기반을 둔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통해 환경 문제, 에너지 문제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박란희 편집장

정리=문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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