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구환 그리드위즈 대표
“전력 시장의 핵심은 수요와 공급의 오차를 줄이는 데 있습니다. 전력 수요와 공급 원리는 저수지로 설명할 수 있어요. 저수지 수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물이 언제 얼마나 들어오는지, 또 나가지는지 정교하게 측정해야 합니다. 수위를 365일 24시간 일정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죠. 국내 전력 표준주파수가 60Hz(헤르츠)인데, 여기서 0.2Hz만 높거나 낮아도 화재나 정전이 발생할 수 있거든요.”
김구환(52) 그리드위즈 대표는 전력 시장에서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전력 수요반응(DR·Demand Response)’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력 수요반응은 전력 소비가 집중되는 시간에 전기사용을 줄이거나, 다른 시간대에 사용하도록 조정하는 방식을 뜻한다. 불안정하고 조절이 어려운 재생에너지와 기존 전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가상발전소(VPP) 핵심 솔루션 중 하나다.
그리드위즈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생태계를 만든다는 목표로 스타트업 불모지로 여겨지는 에너지 시장에 지난 2013년 뛰어들었다. 창업 10년차였던 지난해 매출은 1300억원 수준이다. DR을 포함한 에너지저장시스템(ESS·Energy Storage System), 전기자동차(EV·Electric Vehicle), 재생에너지 등 그리드위즈의 솔루션은 가상발전소의 핵심 기술이다. 특히 국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약 90%를 그리드위즈가 보급했고, 미국·유럽·말레이시아 등 해외 보급률도 약 30%에 달한다.
‘스타트업 불모지’ 에너지 시장에서 살아남기
-에너지 관리의 중요성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은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자원을 자체적으로 수급할 수 없는 나라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으로 약 240조원 규모의 석유·가스를 수입해 필요한 만큼 사용한 뒤 다시 100조원 정도를 수출했다. 한해 140조원 규모를 사용하는 셈이다. 석유와 가스를 자체적으로 얻지 못하기 때문에 100년이 지나도 이 정도 수준으로 수출입이 이뤄질 거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가진 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공급하고 사용하는지에 대한 분석과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창업 당시인 10년 전 시장 상황은 어땠나.
“그리드위즈 설립할 때만 해도 전력 수요반응이나 ESS, 전기차 등 관련 기술 시장은 거의 ‘제로(0)’에 가까웠다. 기술과 관련된 정교한 개념도 정리되지 않았고, 기술 자체가 없기도 했다. 사업을 벌였는데 투자 유치가 어려웠다. 알고 보니 에너지 분야 벤처캐피털(VC) 업계에 세 가지 불문율이 있다고 하더라. 태양광, 전기차, IT 기술을 활용해 전력망을 고도화하는 스마트그리드에 투자했다가 된통 당한다는 이야기다. 그 세 가지를 다하는 회사는 처음 봤다는 소리도 들었다.”
-투자 유치는 어떻게 이뤄졌나?
“첫 투자를 받기까지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당시 전력거래소를 찾았을 때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업체가 아무 데도 없어서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말도 들었다. 이후 2013년부터 관련 분야의 해외 전문가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세미나를 열어 저변을 확대하려고 노력했다. 이후 에너지 절약, 재생에너지 등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다 보니 2015년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 첫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현재는 대기업들도 관련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차별점이 있다면?
“10년 간의 업력이다. 전력 수요반응 분야는 에너지 사용량, 사용패턴 등의 정보를 장기간 모아 분석해 솔루션을 제공하는 영역이다. 또 예측 불가능한 변수로 인해 시행착오를 무조건 겪게 된다. 그렇다 보니 오랜시간 해당 분야를 해오면서 쌓인 엄청난 양의 데이터는 그리드위즈만의 자산이자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
“에너지 분야서 성공하려면 기술과 철학 모두 있어야”
-현재 고객사는 어느 정도 되나?
“국내외 1000여 곳 정도다. 삼성, 포스코 등 대기업들부터 ESG에 관심이 있지만 막상 실천하기 어려운 중소기업까지 다양하다. 그리드위즈의 전력 수요반응 서비스를 통해 기업과 기관 등 고객사가 절감한 비용은 총 2700억원에 달한다. 또 고객사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력도 늘었다. 현재 함께하고 있는 구성원은 100명이 넘는다.”
-에너지 분야에서 스타트업은 생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늘고, 이에 대한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이전보다 많이 늘었다. 발생원이 이곳 저곳에 생기니 중앙집중형으로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있다. 분산된 전원들을 효율적으로 통합 관리하는 영역은 충분히 잠재력이 있다. 지난주 미국에서 열린 한 스타트업 행사에 참석했다. 2022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포트폴리오는 재생에너지, 에너지대응 등 클린테크 분야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다. 올해도 이 부분에 중점적으로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에너지 분야 진출을 준비하는 스타트업에게 조언하자면?
“에너지 산업은 장기적인 호흡을 유지해야 하는 산업군이다. 에너지에 기술을 적용해 데이터를 얻고, 오차를 줄여나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RE10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등 탄소 중립 요구가 높아지면서 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효율화 분야는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관련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술도 물론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호흡을 이끌어갈 수 있는 철학이 확고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기업의 비전과 목표가 구성원들과 공유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앞으로의 목표는?
“에너지 분야에서도 스타트업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코로나19로 인해 하늘길이 막혀 해외 시장에 자주 가지 못했지만, 올해는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기술 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또 2050 탄소중립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 유일한 기업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업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전달해, 국가와 기업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성남=황원규 기자 wonq@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