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민명준 리하베스트 대표
전 세계 탄소배출의 약 10%는 식품 쓰레기에서 발생한다. 이는 미국과 유럽 지역의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두 배에 달하는 양이다.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매년 생산되는 식품의 40%는 소비되지 않고 버려지며 이를 규모로 따지면 약 25억t에 이른다.
식품 쓰레기는 최종 소비 단계보다 중간 제조 단계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가정과 식당에서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 일부만 파악하고 있을 뿐, 식품 제조공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소셜벤처 리하베스트는 ‘푸드업사이클’ 방식으로 식품 부산물을 새로운 식품으로 만들고 있다. 민명준(37) 리하베스트 대표는 “푸드업사이클은 폐기물로 처리되는 식품 제조 부산물에 기술과 아이디어를 더해 새로운 식품을 만들어내는 비즈니스 모델”이라며 “맥주, 식혜 등을 제조할 때 발생하는 보리 부산물을 다양한 제품과 대체원료로 재탄생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출장 차 미국에 머물고 있는 민명준 대표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식품 부산물로 만든 식품
-푸드업사이클 개념은 생소하다.
“와인 찌꺼기를 활용한 화장품, 커피 찌꺼기로 만드는 텀블러 등 식품 부산물로 비식품을 만드는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식품 부산물로 식품을 만드는 건 최초다. 리하베스트는 맥주와 식혜를 만드는 과정에서 버려지던 보리 찌꺼기에 기술을 더해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한 대체 제분가루를 만들고 있다.”
-식품 부산물을 식품으로 만드는 게 어려운 일인가?
“아무래도 사람이 섭취할 수 있는 안전한 제품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비식품업사이클’에 비해 까다로운 지점이 많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기준을 충족하는 안전성과 높은 품질을 갖춰야 한다. 식품 부산물은 이미 한 번 제조 공정을 거쳤기 때문에 대부분 뜨겁게 젖은 상태다. 이렇게 생산된 부산물의 품질과 규격을 맞추고 영양가도 유지하며 높은 부가가치를 이끌어내는 게 핵심이다.”
-국내에서 활성화되지 않은 이유가 높은 진입장벽 때문인가?
“국내 식품 제조사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은 대부분 폐기되거나 퇴비와 사료로 쓰인다. 특히 한국은 농업이 활성화되지 않아 퇴비나 사료로 쓰이는 부분이 한정적이며, 생산된 제품 중 상당량을 수출하고 있다. 또 식혜 부산물의 경우 정말 많은 양이 발생하고 있지만, 식혜 제조 공장 근처에 농가가 부족해 퇴비나 사료로 공급하는 게 어렵다. 식품 수출 강대국이지만 부산물 재활용이 어려운 우리나라 산업 구조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푸드업사이클식품협회(UFA)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식품을 식품으로 업사이클하는 기업이 급증하고 있다. 협회 회원사 수로 따지면 2020년 100곳에서 현재 180곳으로 늘었다. 리하베스트는 아시아 최초 UFA 회원이기도 하다.
-식품 부산물로 뭘 만드는 건가?
“맥주박과 식혜박 등 보리부산물(BSG, Barley Saved Grain)을 활용해 밀가루를 대체하는 ‘리너지 가루’를 만들어 식품 제조 대기업을 중심으로 판매한다. B2C 제품으로는 리너지 가루를 활용한 그래놀라와 단백질 셰이크 등 간편대체식품을 내놓고 있다. 리너지 가루는 밀가루보다 단백질 함량이 두 배 많고, 식이섬유는 20배 많다. 칼로리는 30% 낮다.”
-품질이 좋다고 판로가 개척되는 건 아닐 텐데.
“식품 제조업에서는 제조원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푸드업사이클 제품을 활용하면 골칫거리인 부산물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원가의 상당한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 게다가 대기업의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보탬이 된다. 현재까지 OB맥주, 미스터피자, 뚜레쥬르, CJ 등과 협력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제조업을 넘어 식품 산업 구조 바꿀 것”
-회계학 전공자로 알고 있다.
“미국에서 회계학을 전공했고 서울대에서 MBA를 취득한 후 회계법인 컨설턴트로 일했다. 여러 식품 대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레 식음료(F&B) 산업에 관심이 갔다. 그렇게 10년 넘게 일하니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퇴사 후 삶의 의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해야 하는 일’보다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어떻게 푸드업사이클에 관심을 갖게 됐나?
“개발도상국으로 출장을 다니면서 ‘선진국은 음식이 넘쳐나서 문제인데, 개도국은 음식이 없어서 사람이 배고픔으로 죽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또 식품 대기업의 가장 골칫거리는 부산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버려지는 음식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 푸드업사이클을 통해 우리나라의 F&B 산업에 새로운 선순환 구조를 제안하고자 했다.”
-F&B 산업의 선순환 구조는 무엇인가?
“국내 F&B 산업은 식품 부산물을 폐기물로 여겨왔다. 폐기 과정에서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여러 환경 문제의 원인이 된다. 폐기되는 부산물이 없도록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 지속가능한 식품을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인류가 직면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식품 부산물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 발생해왔다. 사과를 예로 들어 보자. 산업화 전에는 사과 하나를 통째로 먹었다면 지금은 사과에서 제일 맛있는 부분인 ‘당’과 ‘탄수화물’만을 추출해 사과주스를 만들고 찌꺼기는 버린다. 산업이 활성화되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산업에서 발생하는 부산물 문제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추후 계획과 앞으로의 목표는?
“현재 공장 설립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9월이면 경기 화성에 대규모 푸드업사이클 전문 공장이 완공된다. 아시아 최초 사례다. 기존 파일럿 공장 대비 40배 더 큰 규모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 제당회사에서 오래 근무한 전문가를 공장장으로 모셨다. 이를 기반으로 주력 사업인 B2B 원료사업의 매출을 극대화하고 안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B2C 제품의 경우 오프라인 매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해외 사업으로는 캐나다투자청, 인도네시아 빈땅맥주, 베트남 하노이맥주 등과 협업을 진행 중이다. 내년 1분기 말에 시리즈B 투자를 오픈할 예정이기도 하다. 앞으로 단순 제조업을 넘어 식품 산업 구조에 ‘ESG 솔루션’을 도입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이현조 청년기자(청세담1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