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발달 장애 학생의 ‘학교 가는 길’을 위한 ‘길동무’가 돼주세요”

[인터뷰] 영화 ‘학교 가는 길’ 김정인 감독

특수학교 설립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어려운 과제다. 2017년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서울시 모든 자치구에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2021년 현재 7개 자치구에는 아직도 특수학교가 없다. 설립 논의 중인 동진학교를 제외하면 서울엔 2017년 이후 단 한 곳의 특수학교도 추가로 만들어지지 못했다. 부지 확보의 어려움, 지역 주민의 반대 때문이다.

지난 5월 서울 강서구 서진학교 건립 과정의 갈등을 다룬 영화 ‘학교 가는 길’이 개봉했다. 서진학교는 2017년 장애아동 학부모들이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주목받은 곳이다. ‘학교 가는 길’의 김정인 감독을 18일 만났다.

김정인 감독은 지난 지난해 3월 서울 강서구에 문을 연 특수학교 ‘서진학교’가 설립되기까지 약 3년간의 우여곡절을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에 담았다. /김정인 감독 제공

아빠의 책임감으로 만든 ‘학교 가는 길’

“영화는 ‘마로와 마로의 친구들에게’라는 자막으로 시작해요. 마로는 제 딸이에요. 제가 아빠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을 안 했을 겁니다. 기성세대로서의 반성과 아이들이 자랄 세상은 다르기를 바라는 기대를 담았어요. 딸에게 보내는 ‘영상편지’라는 생각으로 만들었죠.”

영화는 발달 장애인 학생과 부모의 일상부터 보여준다. 그들의 일상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그리고서 서진학교 토론회 등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갈등을 보여준다.

김 감독이 처음부터 장애인 학교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니다. 그는 자신도 원래 장애인 인권에 무지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이번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도 우연에 가깝다.

“강서구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토론회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제대로 시작도 못 하고 무산됐다는 기사를 봤어요. 제가 아이 교육에 한창 관심이 있을 때여서 인상 깊게 읽었죠. 기사 끝에 2차 토론회가 다시 열릴 거라고 적혀 있었어요. 날짜에 맞춰 토론회 현장에 직접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장애인 부모님이 혼란한 상황에도 조목조목 반박하는 모습에 이끌려 영화를 만들게 됐어요.”

영화는 촬영부터 개봉까지 5년이 걸렸다. 찍는 데만 3년이 걸렸다. 생각보다 촬영이 길어져 포기할 위기도 있었지만, 그를 끝까지 버티게 한 원동력은 학부모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어느 쪽도 악마가 아니다

김 감독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균형 감각’이었다. 그는 서진학교 설립을 둘러싸고 나타난 갈등이 ‘선악의 대결’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어느 한 쪽도 무조건 틀리거나 나쁜 게 아니었다. 김 감독은 주민들이 반대하는 현상 이면에는 ‘주거 정책의 실패’가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서진학교 부지 주변에 있던 공진초등학교, 공진중학교 폐교 현상에 주목했다.

“대단지 아파트 가운데 있는 학교가 학생이 없어 폐교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알고 보니 임대아파트에 대한 차별과 배제 때문이었어요.” 공진초·공진중 주변 분양 아파트 주민들은 자녀를 임대아파트에 사는 학생과 같은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아 했다. 자녀를 인근 다른 학교에 입학시켰다. 공진초·공진중 학생 수는 점점 부족해졌고, 결국 폐교했다. 김 감독은 “서진학교 사태와 공진초·중학교 현상이 쌍둥이처럼 닮아 반복되는 인상을 받았다”며 “이 부분을 담지 않으면 반쪽짜리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수학교 만능론’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무조건 특수학교를 늘리는 것이 장애아동 교육 문제의 대책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오히려 자신은 ‘내실형 통합교육 지지자’라고 말했다.

“독일의 사례를 찾아보니 체육·음악·미술 등 장애, 비장애 아동이 한 교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같이 합니다. 수학과 같이 수준별 교육이 필요한 부분은 나눠서 하고요. 그렇게 하면 비장애 학생도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더라고요. 장애 학생을 마주하면서 장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오해와 편견을 허물 수도 있고요.”

끝으로 김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장애 학생들이 더 많은 ‘길동무’를 얻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길’에는 여러 의미가 있잖아요. 도로뿐 아니라 ‘여정’을 뜻하기도 하죠. 장애 학생의 ‘학교 가는 길’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아봐 주시고 ‘길동무’가 돼주면 좋겠습니다.”

권성진 청년기자(청세담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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