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형근 현대차정몽구재단 부이사장
H-온드림, 연평균 매출 28% 성장… 일자리 4519개 창출
기업 네트워킹 활성 집중… 환경문제 해결 파트 신설
“사회적기업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면 가치가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기업에 대한 ‘착한 일을 한다’ ‘큰 수익을 내기 어렵다’ 식의 시각에 동의할 수 없어요. 사회적기업은 조직의 대소(大小)에 상관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게 본질이니까요. 고용노동부에서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건 제도적인 절차일 뿐이죠. 인증받지 않은 소셜벤처들도 사회적기업의 역할을 하는 겁니다.”
이형근(69) 현대차정몽구재단 부이사장의 사회적기업 사랑은 남다르다. 지난 2010년부터 8년간 기아차 부회장직을 맡았던 그는 2018년 11월 재단의 이사가 되면서 사회적기업 육성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지난 13일 서울 중구 페이지명동에서 만난 이형근 부이사장은 “사회혁신가 육성은 재단의 자랑”이라며 사회적경제 영역의 스타 기업들을 하나씩 소개했다. H-온드림은 매년 23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지원 사업으로 두손컴퍼니, 모어댄, 녹색친구들, 테스트웍스 등 스타 기업을 배출했다. 이 기업들의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28%, 일자리 창출 규모는 4519개에 이른다. 올해 10년째를 맞은 H-온드림은 ‘사회적기업 창업오디션’에서 ‘스타트업 그라운드’로 새 이름을 달고 변화를 준비 중이다.
성장 단계별 지원 세분화… 네트워킹 위한 공간 마련도
“지원 사업이 벌써 10년 차를 맞이하고 있는데, 다른 육성 프로그램과 차별화된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사회적경제 분야도 이제 성장기에서 성숙기로 넘어가고 있고요. 코로나19 같은 사회적 변화에도 발맞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1년간 준비했어요. 세분화된 구성으로 차별적 우위를 확보하자, 그거죠.”
올해 H-온드림은 기존 인큐베이팅과 액셀러레이팅으로 나뉘었던 구성을 H-온드림 A·B·C 등 성장 단계별 맞춤 지원 프로그램으로 세분화했다. H-온드림 A는 인큐베이팅, B는 액셀러레이팅, C는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로 국한해 지원한다.
이번 개편을 주도한 이 부이사장은 “그간 접수된 다양한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우선 지원 사업을 거쳐 간 펠로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현대차그룹과 재단이 지원하는 사업인데 기업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문을 왜 열지 않느냐는 불만이 있더군요. 또 사회적기업에 집중하면서 소셜벤처 등 사회 혁신을 꿈꾸는 청년들을 폭넓게 참여시키지 못한 부분도 있었어요. 올해부터는 이러한 펠로들의 여망(輿望)을 아우를 수 있는 구성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신규 기업 발굴 못지않게 펠로 기업의 네트워킹 활성화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그는 “사회 혁신 기업을 육성해왔지만 네트워킹은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고 자평했다. “지난 8기 때 펠로 중에 뜻 맞는 기업끼리 협업하도록 지원했어요. 그런데 네트워킹을 하려면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코로나 와중에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우선 코워킹 스페이스를 마련해 기업끼리 협업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지방에서 서울로 일 보러 온 팀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에요. 올 하반기가 목표입니다.”
당면 과제 넘어 미래 대비하는 사업 필요
지금까지 H-온드림을 거쳐 간 기업은 232개다. 이 부이사장은 다양한 소셜벤처를 만나면서 아이디어를 곱씹기도 한다고 했다. “고령화 시대가 늘 사회문제로 다가온다고 말하면서 뾰족한 방법은 못 찾은 거 같아요. 정부나 지자체에서 노인 일자리 만드는 걸 보면, 소득이 생기니까 좋긴 한데 일에 대한 보람은 없다고 봐요. 요즘은 조기 은퇴자들도 많은데, 꼭 노인들만의 문제는 아니거든요. ‘일은 하고 싶은데 일자리가 없다’는 명제는 청년이나 중·장년층이나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시니어들은 나름 사회생활하면서 주력 분야가 있을 텐데, 청년들이 시니어들의 전문 지식을 살려서 비즈니스를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이형근 부이사장은 소셜섹터의 지난 10년을 평가하면서 다가올 10년에 대한 조언도 했다.
“소셜벤처들은 취약 계층 고용난이나 플라스틱 문제 등 당면 과제를 해결하면서 성장해왔습니다. 이제는 다가올 문제에 대응하는 조직들도 나왔으면 합니다. 이를테면 현재 급속하게 보급되는 산업에서 발생할 폐기물에 대비하는 사업이 있죠. 현재 글로벌 자동차 제조 기업들이 앞다퉈 전기차 생산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10년 후 폐차했을 때 발생하는 배터리는 어떻게 할 건가 하는 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하지요.”
전기차 시장조사 기관 EV볼륨즈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글로벌 전기차 생산 규모는 1270만대로 전망된다. 산업계에서는 전기차 폐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재활용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쏟아지는 물량을 소화하지 못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올해 H-온드림은 지원 분야를 확대 개편하면서 환경문제 해결 파트를 H-온드림 C로 별도 신설했다. 이 부이사장은 “깨끗한 에너지로 불리는 태양광 분야에서도 해마다 수명을 다한 폐패널이 수만 톤씩 발생한다”며 “이를 처리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했다.
“요즘 2030 세대들의 취업 문이 좁아지고 있죠. 기업들의 채용 방식도 정기 공채에서 수시 모집으로 바뀌는 추세고요. 이런 취업난을 돌파하는 방안 중 하나가 창업 생태계 활성화라고 생각해요. 중국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개의 스타트업이 생긴다잖아요? 국가, 기업, 비영리재단 등이 청년들이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고요. 물론 100%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겠죠. 실패 비용이라는 것도 있겠지만 청년들의 실패를 용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재단에서도 지금껏 소셜 생태계에서 활동하는 조직들을 도왔다면, 앞으로는 아이디어 차원의 창업팀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겠습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