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월간 성수동] 너무 많아서, 너무 적어서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안에 들어가면 비 오는 소리가 쏴 하고 들릴 거예요.” 안내인의 설명과 함께 20평이 채 되지 않는 사육장에 들어섰다. 암실 안에서 서로 다른 조도 아래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는 데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들려오는 힘찬 빗소리. 식용으로 쓰이는 쌍별귀뚜라미 수백만 마리가 만들어내는 그 소리는 한여름 소나기같이 우렁차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청아했다.

곤충 수백만 마리를 한 방에서 마주하는 생경한 경험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바로 작년 여름, 곤충 스마트팜 설루션을 만드는 ‘반달소프트’라는 회사에 투자하면서다. 식용 곤충 산업은 새로운 단백질 영양원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 축산업 대비 토지와 물을 적게는 20배, 많게는 50배까지 절약할 수 있어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양질의 단백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성장세도 무섭다. 연평균 25% 이상 성장하고 있고, 만약 곤충 단백질을 축산(소·돼지·닭 등) 사료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된다면 더 큰 산업적 성장이 담보된다. 식용 곤충 산업이 환경적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는 우리 투자 회사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국내 임팩트투자를 이끌고 있는 성수동의 투자사들이 가장 집중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기후 위기’다. 태양광 등의 신재생에너지 산업이나 재활용 산업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투자처가 되었다. 원소재를 재활용품에서 뽑아내거나 심지어 연구실에서 배양해 패션 산업의 혁신을 꾀하는 기업들, 대체육·배양육 등을 통해 축산업이나 수산업의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푸드테크 기업들, 유통·판매 과정에서 버려지는 음식 폐기물을 줄이려는 기업들은 이미 임팩트투자사들의 포트폴리오에 가득하다.

사실 환경 관련 산업 자체는 금융계의 오래된 투자처다. 작년 여름 SK건설이 2000곳이 넘는 하수·폐수 처리 시설을 운영하는 국내 최대 폐기물 업체인 ‘EMC홀딩스’를 1조원에 인수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사모펀드들과 함께 각축을 벌인 끝에 따낸 투자였다. 이 거래는 기존 투자자에게 5년 만에 20배가 넘는 매각 차익을 안겨 준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시기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 중 하나인 KKR(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 역시 국내 산업·의료용 폐기물 업체인 ‘이에스지 그룹’을 인수하기도 했다.

최근 벤처캐피털들의 이목을 끄는 투자처는 조금 더 우리의 삶에 가까이 와 있는 일을 하는 곳이다. 먹고, 마시고, 입고, 이동하는 일상의 모든 것을 보다 더 친환경적으로 또한 지구를 덜 해롭게 하는 방식으로 바꿔나가는 일을 하는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이게 아주 나중의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벤처에 투자하는 펀드를 만든다거나, 투자 기준에 기후 시나리오나 기후 영향을 반영해야 하는 일들 말이다.

코로나로 우울했던 지난해 여름에는 장마가 40여 일이나 지속되며 모두를 지치게 만들었다. 비·눈·바람이 너무 많아서, 또는 너무 적어서 걱정할 그날을 떠올리며 우리는 ‘환경’과 ‘투자’의 관계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전기차 구입에는 보조금을 지급하면서도, 식탁 위에서 자동차만큼이나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고기 소비를 줄이는 데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다시 투자를 생각한다. ‘한발 앞서서 미래를 반영한다’고 하는 투자는 이제 어디로 향할 것인가? 어쩌면 그날 내가 들었던 식용 귀뚜라미들의 빗소리가 가뭄의 소나기와 같은 희망의 빗줄기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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