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아이들은 정확한 위치에 생리대를 부착하는 것조차 어려워합니다.”
시작은 한 통의 편지였다. 발신인은 특수학교 교사. 그는 “장애 아동에게는 생리대를 교체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라고 했다. 수신인은 유한킴벌리. 유한킴벌리는 1970년대 국내에 처음으로 위생 생리대를 내놓고 초경 교육과 생리건강 교육도 지속적으로 해왔지만, 장애인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제품 생산은 해 본 적이 없었다. 편지가 도착한 2019년 2월, 마케팅본부가 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장애 당사자들은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넘어 건강까지 위협할 수 있는 상황에 노출되고 있었다. 월경 시 보호자나 지도교사가 항상 곁에 있어야 했고, 기존의 생리 교육도 장애 유형별로 활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별도의 개별 훈련이 필요했다. 일부 발달장애 가정에서는 부득이 자궁 적출을 통한 조기 폐경도 고려하고 있다는 극단적인 사례도 조사됐다. 유한킴벌리는 누구나 안전하고 건강하게 월경할 수 있는 권리인 월경권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교육용 위생팬티 제작에 돌입했다.
팬티에 생리대 부착 순서 알기 쉽게 표기
프로젝트 출발은 순조로웠다. 여성용품 마케팅본부의 주도로 디자인팀, 학교월경교육지원팀 등 여러 부서 간 협조도 손쉽게 이뤄졌다. 아이디어도 쏟아졌다. 초기에는 학교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교재를 개발하는 게 목표였지만, 실물을 두고 교육할 수 있게 아예 제품을 만들자는 쪽으로 확장됐다. 디자인 특허를 내자는 의견, 이를 기술특허로 등록해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전양숙 유한킴벌리 여성용품 마케팅본부 수석부장은 “내부적으로 처음 이야기됐을 때 다들 흔쾌히 좋은 생각이라면서 아이디어를 더해줘서 사실 놀랐다”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작업을 한다니까 아이디어가 쏟아졌다”고 했다.
가장 큰 과제는 당사자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전양숙 부장은 “타깃을 발달장애 아동으로 좁혔는데 당사자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했다”면서 “그래서 전문가들을 투입했다”고 말했다. 장애아동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보건교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보건교사회를 통해 특수학교 보건교사들과 설문조사, 인터뷰, 간담회를 연달아 열었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지점들이 떠올랐다. 당시 보건교사들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였다. 집에서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하고, 부모들도 생리대 교체 방법을 교사와 같은 순서로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손 씻기 순서처럼 생리대 교체 순서를 쉽고 직관적으로 전달해야 반복 훈련이 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제품 디자인도 조금씩 진화했다. 개발 초기에는 생리대 부착 순서를 팬티 안쪽에 한글 문구로 표기하기로 했다가 한글 설명을 어려워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와 제품 안쪽에 ‘1, 2, 3’ 식으로 숫자로 표시해 순서를 알려주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바꿨다. 장애가 심한 경우에는 숫자도 어려울 수 있다는 보건교사들의 의견에 따라 최종 디자인은 팬티 안쪽에 패드 모양대로 그림을 새겨넣는 방식으로 결정됐다.
모두를 위한 유니버설디자인으로
개발팀은 전체적인 디자인 작업을 마무리한 뒤 현장 의견을 듣기 위해 전국 단위 설문조사를 했다. 발달장애 특수학교 51곳을 포함해 전국 495개 학교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디자인 적합도를 묻는 질문에 전체의 77.9%가 적합·매우 적합으로 응답했고, 부정 응답은 7%에 불과했다. 제품 사이즈에 대한 선호 조사도 함께 진행됐다. 프리사이즈로 제작 시 학생들에게 가장 적합한 크기를 알기 위해서다. 조사 결과 전체의 61%가 95 사이즈를 선택했고, 특수학교의 경우 89%가 95 사이즈를 선호했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설문 당시 교육용 위생팬티 신청 접수를 따로 했는데, 학교에 장애아동이 있는 302곳 모두가 제품을 보내달라고 연락 왔다”고 했다.
유한킴벌리는 장애 아동을 위해 개발한 위생팬티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디자인(universal design)으로 명명해 상품을 출시하기로 했다. 배철용 유한킴벌리 커뮤니케이션&CSR본부 부장은 “장애인용이라고 한정하기보다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설계했다”면서 “프로젝트 초기에 설정했던 월경권 확대라는 목적에도 유니버설디자인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시작된 프로젝트는 해를 넘겨 최근 마무리됐다.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토론하고 제품을 개발하고, 양산하고, 시범학교 교재로 활용하기까지 1년 8개월이 걸렸다. 참여 인원도 마케팅, 디자인, 교육 담당자 4명에서 디자인 대행사, 커뮤니케이션 대행사 등이 합류하면서 10여 명으로 늘었다. 간담회와 인터뷰에 참여한 인원을 포함하면 100명이 넘는다. 배철용 부장은 “최근 네이버 해피빈을 통해 발달장애 아동 1000명에게 이번에 개발한 ‘처음생리팬티’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면서 “보건교사회의 자문과 감수를 거친 교육 영상도 제작해 생리를 시작한 아동과 반복적으로 연습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보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