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학교 밖에서, 청소년 누구나…문화예술의 진입 장벽 허물다

진화하는 문화예술교육

코로나19 장기화로 문화예술교육이 전환점을 맞았다. 현재 비대면 교육이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교육 현장에서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국내 문화예술교육은 2005년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이 마련된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5년 전 89억원에 불과했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산은 올해 기준 1296억원으로 확대됐고, 전국 학교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예술 강사는 5158명, 복지 기관 예술 강사는 491명이 됐다. 전문가들은 양적 성장을 이뤘지만, 전체 문화예술교육의 90% 이상이 학교에서 이뤄지고 전국적으로 동일한 프로그램을 적용하면서 질적 성장은 이루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사회공헌 차원으로 문화예술교육에 집중하는 기업들은 최근 실험에 나서고 있다. 기존에 학교와 사회로 분리됐던 문화예술교육의 경계를 허물고, 아동·청소년부터 청년까지 성장 단계별 체계적인 지원을 하기 위한 시도다.

김병필(맨 오른쪽) 총괄셰프가 ‘청소년 문화동아리’ 참가 학생들에게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CJ나눔재단

문화 예술 분야 전문 멘토 대거 투입

“여러분은 어떤 음식을 만들고 싶나요? 요리의 조건은 모두 같습니다. 식재료·불·사람. 그렇지만 그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결과는 다릅니다. 먼저 제철에 맞춰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을 첫째로 고려하고, 그다음 불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유념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스킬을 사용해 음식을 요리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청소년들 앞에서 요리 시연을 하던 김병필 CJ나인브릿지 총괄 셰프가 노하우를 하나씩 꺼냈다. 지난해 11월 문화예술교육 차원에서 마련된 청소년 문화 동아리 특강 자리에서다. CJ나눔재단은 지난해 시범 사업으로 ‘문화 꿈지기’를 진행하면서 ▲방송 ▲영화 ▲음악 ▲뮤지컬 ▲요리 ▲패션·뷰티 등 여섯 분야 문화 동아리를 조직했다. 선발된 동아리는 5개월간 각 분야에서 다양한 체험을 통해 스스로 문화 창작물을 만들어 보는 기회를 얻었다. 결과물은 쇼케이스를 통해 무대에 올렸다. 이를 위해 CJ는 그룹 내 보유하고 있는 문화 자원을 기반으로 업계 대표 전문가로 구성된 ‘마스터 멘토’와 대학생 봉사단 172명, 임직원 멘토 등을 동원했다. 지난해 마스터 멘토로는 프로듀서 나영석, 영화감독 윤제균, 가수 신승훈, 음악감독 김문정, 총괄 셰프 김병필, 스타일리스트 한혜연 등이 참여했다. 특히 대학생 봉사단은 청소년 대상 멘토링을 진행할 수 있는 전공자를 포함해 커리큘럼 자체의 질을 높였다.

올해 문화 꿈지기 사업은 온·오프라인 혼합 방식으로 진행된다. 기존 오프라인 활동을 불가피하게 온라인으로 대체하기보다 기회의 확장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이를테면 지난해 가장 주목도가 높았던 마스터 멘토 특강은 수도권 청소년 위주로 진행됐지만, 올해는 온라인 특강으로 개최해 거주지 상관없이 더 많은 청소년이 참가하도록 문을 열었다. CJ나눔재단 관계자는 “문화 창작 활동은 릴레이 방식을 택하거나 온라인 합주 형태로 진행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한다”면서 “멘토링 역시 온·오프라인을 병행해 많은 시간 피드백이 오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시범사업으로 진행된 ‘청소년 문화동아리’ 음악 부문 참가 학생들이 쇼케이스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 /CJ나눔재단

문화예술교육으로 ‘기회의 불평등’ 해소

최근 문화예술교육의 트렌드 중 하나는 ‘소외 계층’이라는 표현의 소멸이다. 소외 계층의 참여를 독려하면서도 굳이 명시하진 않는 것이다. CJ나눔재단 관계자는 “감성적으로 섬세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다 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면서 “소외 계층, 교육 격차 등을 강조하는 것은 배려라기보다 오히려 낙인 효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문화에 관심 많은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J 등 여러 기업이 문화예술교육에 집중하는 이유는 ‘기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문화 예술은 진입 장벽이 높아 소득 격차에 따른 기회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대표 분야로 꼽힌다. 소득 격차가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교육 격차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소년 시절에는 작은 교육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면서 “틀에 박히지 않은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창의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희경 CJ사회공헌추진단장은 “미래 사회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꼽히는 창의력, 융·복합적 사고력, 인성 등을 키우기 위해서는 청소년 시절 다양한 문화 체험과 창작 교육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달라진 사회에 맞게 더 다양한 꿈을 꾸고, 또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재단 설립자의 의지이자 재단의 역할”이라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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