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애인 이동 보조 기기 개발 오도영 ‘이지무브’ 대표
장애인 이동 보조 기기 개발·판매업은 일반적인 사업가들이 도전을 꺼리는 분야다. 시장 규모도 크지 않고 제품을 한번 산 고객은 최소 5년에서 10년은 사용하기 때문에 신규 구매도 많지 않은 편이다. 쉽지 않은 구조인 걸 알면서도 이 분야에 겁 없이 뛰어든 회사가 있다. 지난 2010년 설립된 사회적기업 ‘이지무브’다.
“설립 당시 이미 두어 개 업체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디자인과 품질은 30년 전 수준에 멈춰 있었죠. 소비자들은 제품에 문제가 있어도 A/S조차 제대로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이런 분야에 꼭 필요한 게 ‘사회적기업’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지난 9일 경기 안양 이지무브 사옥에서 만난 오도영(54) 대표는 “쉽지 않을 거란 예상은 했지만 정말 힘들어 때론 도망가고 싶었다”며 웃었다. “이 일이야말로 사회적기업 아니면 못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매달렸어요. 이윤이 크게 안 남는 일이라 사명감 없이는 하기 힘든 비즈니스죠. 10년을 했으니 이제는 도망가기에는 늦은 것 같고, 대신 더 멀리 나아가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웃음).”
소유와 경영의 분리, 대기업과 협력… 10년간의 실험
이지무브의 시작은 지난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밑그림은 ‘정부·지자체·기업·시민사회가 함께 만드는 사회적기업’이었다. 사회적기업이라는 개념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에 시작한 시도였지만 부침 속에서도 탄탄하게 사업을 설계해 갔다. 오 대표는 “사회적기업을 넘어 ‘완벽하게 공공성을 갖춘 기업’을 만들자는 게 목표였다”고 했다. 품질이 뛰어난 장애인 이동 보조 기기를 합리적 가격에 제공하면서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을 구상했다. 기업이나 지자체가 출자하더라도 경영권은 사회에 넘기는 사회적기업 설립을 목표로 정부, 지자체, 시민사회, 기업 관계자들이 모여 3년 동안 논의하고 계획을 세웠다.
2010년 현대자동차가 출자에 나서며 이지무브가 탄생했다. “현대차에서 단독 출자하면서도 원칙대로 함께하겠다며 손을 잡아줬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확보’는 현대차가 주력하는 사회적 가치 창출 모델과 잘 맞는다는 것이었죠.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위해 이지무브 설립 후 ‘뒤로 빠지겠다’는 약속도 지켜주기로 했습니다. 현대차에서 전액 출자하되 지분은 3년 전 계획할 때 약속한 30%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10개의 공익법인에 무상 증여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경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재활공학 박사학위를 가진 오 대표는 자문 역할로 참여했다가 대표직을 맡게 됐다. 그는 “현대차와 관련이 없는 데다 경영을 해본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회사를 맡게 됐다”면서 “원래는 한두 해 기틀을 닦고 떠날 생각이었는데 고비를 넘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합리적 가격에 좋은 제품 팔았더니 시장도 좋아져”
이지무브의 경영 철학은 첫 제품인 지체장애인용 피난 기기 ‘KE체어’에서부터 드러난다. 피난 기기는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는 물건이라 구매량이 적어 국내 기업에선 아예 생산하지 않고 있었다.
“화재가 나면 엘리베이터가 멈춰서 계단으로 피난해야 하는데, 일반 피난 기기는 장애인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장애인 단체 분들이 찾아와 이 사정을 말하면서 ‘겨우 직장을 구했는데, 매일 재난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산다’면서 꼭 피난 기기를 만들어달라고 하시기에, 그길로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개발에는 꼬박 1년이 걸렸다. 수십 번에 걸쳐 임상테스트를 하고, 거의 다 만든 제품을 다시 뜯어고치는 일만 여섯 차례 반복했다. 그렇게 한국인 체형과 건물 특성에 딱 맞는 피난 기기를 완성했다.
“지난 10년간 KE체어의 누적 판매량은 약 3000개입니다. 그동안 투자한 연구 비용을 계산하면 오히려 손해죠. 하지만 수익으로 표현할 수 없는 사회적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대형 요양기관이나 복지관, 특수학교 등에 비치됐다는 뜻이니 장애인들이 안심하고 지낼 공간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얘기죠.”
오 대표는 “판매량 자체보다 장애인 보조 기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피난 기기의 주요 거래처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계 기업이에요. 구글, 이케아, 이베이 등이 한국에 회사를 차리면 이 제품을 꼭 사 가요. ‘장애인 직원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아직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제든 이들이 와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피난 기기를 구매한다는 거죠. 우리나라는 공공기관이나 지자체 건물에도 설치되지 않은 곳이 태반입니다.”
이지무브의 경영 철학을 담은 피난 기기로 시작해, 지금은 20종이 넘는 이동 보조 기기를 개발했다. 지체장애를 가진 아동·청소년용 유모차, 어르신도 쓸 수 있는 전동 스쿠터형 휠체어, 자세보정기, 장애인 콜택시 등이 대표적이다. 합리적인 가격, 빠르고 정확한 A/S 등을 내세우며 순항 중이다. 창업 첫해 13억이었던 매출도 지난해 기준 100억원대로 성장했다.
오 대표는 “시장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우리가 낮은 가격에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기 시작하니 수입 경쟁사 제품의 소비자가가 30% 이상 떨어졌어요. 이동 보조 기기가 고장 나면 장애인들은 발이 묶이는데도 그동안은 A/S 받는 데만 3개월 가까이 걸렸습니다. 저희가 ‘원데이 서비스’를 내걸었더니 다른 곳도 3주로 기간을 확 줄였습니다. 시장 활성화와 경쟁을 통한 사회의 발전이란 이런 게 아닐까요? 물론 경쟁사 제품이 품질과 가격, 서비스까지 나아지니 저희도 긴장되긴 하지만요(웃음).”
다음 10년을 준비하는 이지무브의 목표는 ‘첨단 기술 개발’이다. “디자인도 기능도 세련된 장애인 제품을 만들 겁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장애인 제품은 여전히 아날로그 수준에 머물러 있어요. 10년간 ‘단순 기술’에서 ‘중간 기술’ 정도로 장애인 제품 수준을 올렸다고 자체적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이젠 ‘첨단 기술’로 나아가야죠. 장애인도 ‘최선의 제품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소비자’로 보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 겁니다.”
[안양=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